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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HAN Oct 11. 2021

사라짐에 대하여

문진영, 「두 개의 방」,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여행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념비들은 그 공간의 역사를 떠올리게끔 한다. 그곳에서 과거에 발생했던 무고한 희생이나 혁명 같은 것들, 즉 우리가 현재 이곳에 발 딛고 서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와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사건들 말이다. 더는 이곳에서 과거의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지만 우리는 그 공간의 역사를 떠올림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져 온 시간의 흐름을 감각한다. 이때 공간은 '장소'로 변모하는데, 공간을 장소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의 축적(역사)과 기억이다.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접하게 된 문진영의 단편 「두 개의 방」은 두 인물의 산책을 통해 사라져가는 장소들에 대한 탐색과 잃어버린 장소에 대한 슬픔을 보여준다. '나'(선영)은 편집자-저자로 만난 '그'와 '술산책'이라고 부르는 밤산책을 통해 종로 일대를 걸으며 옛 기억을 간직한 장소들을 지나간다. 오래된 도시에는 사람들의 기억에 잊혀지지 않고 각인된 피카디리 극장 같은 장소도 있지만, '산타바바라', '아비뇽' 같은 이국적 이름을 지닌 연립주택이나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세탁소 등 사람들의 기억에 인지되지 못한 수많은 장소들도 존재한다. 그런 장소들을 지나치며 '그'는 선영에게 묻는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나요? 뭐랄까, 내가 뭔가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 (p.18)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p.19)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물건이 있었던 곳에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그건 궁극적인 사라짐은 아닐 것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기억과 냄새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사라진다'는 것,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가능해진다. 그래서 결국 '사라짐'은 그 장소의 시간이 역사 속에서 지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를 상기시키기 위해 유리창 안에 흔적을 보존한다거나 기념비를 세운다거나 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지만,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장소들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두 인물은 그런 장소에 대한 기억을 각각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선영에게는 '은미의 방'이고, '그'에게는 어렸을 적 살던 집이다. 두 장소에는 그곳에 살던 인물들의 생활이 깃들어있다. 그곳은 고등학생 은미가 혼자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고단한 잠을 청하던 방이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삼십 년을 해장국을 끓이며 유지해 온 삶의 터전이다. 그곳에서 흐르는 그들의 시간은 곧 그들이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역사적 존재라는 것의 증명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과 같다.


액자 안의 해바라기가 햇볕 아래 무방비로 드러났을 때, 그때부터 내 강박이 시작된 것 같아요. 바로 그 순간에요. 그게 거기 있었다는 걸, 나는 정말 완전히 잊고 있었거든요. (p.30)


 아버지가 끝까지 철거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는 동안 "이길 수 없는 싸움"(p.29)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방관한 '그'가 집이 사라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거실에 걸려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쳐 온 해바라기 액자가 집 벽이 무너지면서 그 존재를 드러냈을 때다. 그는 그때 잊는다는 것이 곧 사라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아버지가 지키려고 한 것이 고작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구조물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자신과 가족의 삶이었음을, 결국 언젠가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면 이 장소에 깃든 자신의 존재 역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우연히 불려나온 자신이 잊었던 한 사물의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두 인물의 산책은 그래서 과거에 멈춰버린 시간들에 보내는 일별이며, 더 나아가 사라지는 것들을 잊지 않으려는, 그들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행위 같은 것이다. 그 존재들이 비록 너무 연약하여 "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p.30)해야 하는 것이더라도, 분명히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므로, 어둠 속에서라도 미약한 숨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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