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업무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필자가 하는 직업상담의 경우 그 정도는 더한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어떤 어머니가 아들의 취업을 위한 상담을 받으러 아들과 같이 필자가 근무하는 고용센터로 찾아오셨습니다.
처음에 그 아들은 “자기가 왜 여기서 취업상담을 받아야 되는가”라고 따져 물으며 어머니를 호통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취업을 하고자 하는 당사자가 상담을 받기를 완강히 거부하였기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것입니다. 잠시 아들을 진정시킨 후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우리 아들은 머리도 좋고 군대도 갔다 왔는데 도대체 스스로는 어떤 일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담 선생님이 이 아이에게 일을 좀 해라고 단단히 알아듣도록 따끔하게 말을 좀 해주세요."
여기서 상담자는 어떤 태도와 자세를 지녔어야 했을까요?
“일을 해라고 알아듣게 말을 해주십시오.”
이 말속에 담긴 아들과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상담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지, 사실 당장은 막막하였습니다.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감정들이 뒤섞여 그날의 상담은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는데요...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아들은 스스로 고용센터를 방문하게 되었고, 다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필자가 지니고 있었던 여러 가지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에는 가족으로부터 '무시'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과의 대화(상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등학교를 가고 이후 전문대학에 입학을 한 것, 나아가 군대에 입대하게 된 것 등... 이 모든 것들이 아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뜻’에 이끌려하게 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20여년을 살면서 스스로의 의지와 뜻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 것이 거의 전무한 구직자였던 것입니다. 혹시나 하여 실시한 직업선호도 검사 - 흥미검사 결과는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흥미검사에서 나타난 육각형 모형의 크기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작았던 것이지요.
이렇게 작게 나온 것은 본인에 대한 자신감 저하, 흥미 저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실망감 등이 복합적으로 나온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삶 자체에 대한 회의와 실존적 억압의 문제가 아들의 내면에 깔려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상담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를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데 있어서 일종의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구직자가 바로 그 아들이었던 것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직면 기법을 활용한 상담을 통해서 필자는 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다고 판단하였고 오히려 어머니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 이상 고용센터를 방문하지 않으셨습니다. 연락은 되었으나 당신께서는 방문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 마음이 불편하신 모양이었지요.
그 이후로도 아들은 가끔씩 고용센터로 방문을 하였습니다. 올 때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내용들을 이야기하곤 했었지요.
“구직자 분은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까? 친구들과 만나면 어떻게 지내십니까?”
“친구는 거의 없습니다. 1명이 있긴 한데 그 친구 집이 저희 집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잘 만나지 않습니다. 만나도 금방 헤어지는 걸요. 집에 혼자 있으면 답답한데 요즘엔 여기로 상담 선생님께서 자주 와도 된다고 하셔서 좋습니다.”
구직상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의 회피를 통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모습에서 더 이상 취업과 관련하여 상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였습니다. 우선은 구직자 본인이 지니고 있는 실존적 억압을 이겨내고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가지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제가알고 있는 복지관에 방문하여 심리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다른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니 이렇게 가끔 오지 다른 곳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필자는 갑자기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그 이후 아들과 연락은 끊겼습니다.
2~3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는어느 날이었습니다.필자가 일하는 센터에 한 명의 내담자가 숨이 찬 듯 헉헉거리며 필자 앞에 앉았습니다.
바로 그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 선생님 저 ooo입니다"
필자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찾아왔다고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구직자 집에서 여기까지가 어딘데... 족히 3시간은 넘어 걸릴 거리를...”
한 순간 너무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런 관계만 지속되는 것이 결코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하에 어머니와 통화하여 아들의 내용을 다시금 이야기하였습니다. 진심으로 아들의 장래를 위한다면 우선 심리상담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그날 이후로 아들은 더 이상 고용센터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필자도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다는 핑계 등으로 그 구직자를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예전의 자료를 뒤척이다가 그 아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아들도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대사회에서 가족이라는 틀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유일한 희망처이자 안식처입니다. 점점 물질화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틀 내에서만 개인들의 자존을 위안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가족이 구성원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다면 구성원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회에서도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앞서 아들의 경우처럼 가족 내에서의 불안정한 관계는 아주 심한 내성적인 성향, 대인관계의 기피증, 무기력함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직업상담이라는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그 아들을 치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가족 내에서부터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못하였지요. 가족 내 에서도 소외된 아들이 의지할 위안처가 어디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접근은 점점 소외되어가는 개인들을 치유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위에 소개된 아들의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들이 가족관계의 정상적 회복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필자는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직업상담에서도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직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