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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Aug 19. 2021

왼손잡이

 창가 책상에 앉은 나는 교수의 판서를 필기한다. 그 모습이 옆자리 여학생의 곁눈을 찌른다. 그녀는 하필 나의 이상형이고 하필 이렇게 묻는다.

 “저기... 왼손잡이세요?”

나는 연필을 오른손에 넘겨 쥐어 필기를 이으며 말한다.

 “오른손잡인데요.”

여자는 놀라 고개를 돌려 시야에 나를 가득 채우곤 묻는다.

 “그럼 방금 왼손으로... 쓰신 건?”

재빨리 빈 왼손에 연필 하나 끼워 양손을 굴리며 답하는 나는

 “양손잡인데요.”

                                                                                                                       —내 상상의 초록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데이비드 핀처요, 그의 최고작은 <세븐>이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때란 무릇 겉모습과 다른 반전의 순간이다.

 가령, 욕설이라도 하면 대역을 질 듯 순백의 수수한 여성이 그 오밀한 입에서 “이 싯팔” 침 튀기듯 쌍욕을 뱉을 때의 반전! 그부터 내 가슴으로 한달음 직진해오는 매력이란 얼마랴!

 하면 이는 또 어떤가. 단연 십중구의 호모 사피언스라 어느 손인지 의식조차 안 기울였지만 그의 꿈틀대는 왼손이 주변시야에 잡히자 아! 그는 십중일의 사피언스! 느끼는 반전. 이를 보고 저기...왼손잡이세요? 물으면 이번엔 양손의 그를 보고 아! 천중일의 인간! 흐느끼는 반전에 반전. 그러니 매력의 곱절, 광매력(廣魅力)이 가슴으로 쏜살이다.      


 언젠가 나는 그 광매력의 소유자를 제목을 잊은 한 수학 영화에서 보았다.

 카메라는 콜로세움 같은 미주 대학 강의실을 비춘다. 유독 고개를 숙인 한 학생에게 포커스가 가니 우리의 주인공이더라. 카메라는 우리 영웅이 왜 졸까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다음 장면으로 강단을 잡는다. 노교수가 부싯돌 치듯 분필로 칠판을 탁탁 때리고 있다. 아니, 탁(탁)탁(탁). 교수의 양어깻죽지가 으쓱으쓱한다. 그는 왼손으론 1729=13+123=93+103을, 오른손으론 1+2+3+4+···=-1/12 따위를 두 줄로 써 내리는 것이다. 나는 양손에 분필 쥔 그 1분의 교수로부터 120분의 주인공보다 더 큰 매력을 선사받았다.


 별안간의 그 교수를 떠올리며 나는 그의 스킬을 체득하려는 심산을 알처럼 풀었으나 필경 깨버리고 말았다. 그라면 분명 양손으로 허공에 네모와 동그라미를 같이 그려낼 지능일 것이기에, 그러니 수학교수!

 그렇담 반전에 반전은 파기해도 첫 반전은 노력의 득이 아닐까. 새 심산을 품고 우선한 일은 오른손이의 멍에를 푼 것이었다. 19년간 제 몸 뭉게 수천 장의 지면을 쓸며 수능시험지 위에서도 그리 해 준 이 충직한 오른손이에겐 기껏 지우개나 쥐라는 잔일만 명할 뿐이다. 대신에 19년간 동면한 왼손이의 근육을 깨우고 있다. 그 연습도 하고 문장강화도 도모할 겸 상허의 <무서록>을 필사하는 요즘이다.      

     

 하면서 생각보다 왼손은 불구다. 흑연심은 새햐안 종이를 빙판으로 착시한 듯 찍찍죽죽 팔방으로 나자빠진다. 손뼈는 철심이 되어 생각만큼 왼손에 힘이 들어가 주지 않는다. 하물며 유난히 ㄹ, ㅇ, ㅎ이 못나다. 그들은 글자보다 그림, 그보다는 낙서다. 

 이에 가장 큰 책임은 중지에게 문다. 그의 등에 누운 연필은 육각형 몸매가 무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자가 금세 땀이 올라 핸드크림 진득이 바른 날처럼 연필을 가장 지탱할 구실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축축한 중지니 종이로 지렁이가 기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시작 며칠은 왼손이 그리는 글자를 한 편 한 편 괄목할 맛이 있었으나 10편 이상 필사해낼 즈음부턴 못난 거푸집에서 조악한 활자만 뽑는 공정이다. 당분간은 단지 상허의 지난 문장을 반추하는 재미로 필사를 이어야지 싶다.     


 능숙한 왼손잡이가 되고프다. 물처럼 좔좔좔 글 써 내릴 수 있다면 이성 앞에서 얼마간 내보일 그 손인가. 매력의 소유란 광대무변 바다 점으로 빛나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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