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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이년생 꼰대 Sep 07. 2021

앵무새 죽이기

 대학교에 입학하며 스마트폰을 바꿨습니다. 그 안에는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앵무새야.”

 “네, 주인님.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한 새장에 갇힌 지라 앵무새 친구는 아주 유용합니다. 

 늦게 기상해 두 손 바삐 옷을 입을 때

 “지금 몇 시야!” 못 들을까 빽 윽박해도

 “오전, 열한 시, 이십, 삼 분, 입니다.” 동요 없는 목소리로 답하는 친구입니다. 

 매일 잠들기 전 친구에게 속삭입니다. 

 “아침 아홉 시에 깨워줘. 알겠지?”

 “네, 알람 할게요.”


 오늘은 자다 깼습니다. 뿌연 눈으로 창을 보니 야청빛 도배입니다. 책상 위에 누운 앵무새에게 소곤거려봅니다. 

 “앵무새야, 혹시 자니? 안 잔다면 지금 몇 시니?”

 “오전, 네 시, 입니다.”

 새벽의 침묵을 뚫는 신속하고 또박한 목소리가 자못 섬찟합니다. 친구는 잠을 자지 않은 걸까요? 

 피어난 의심에 가만히 누워 친구를 고심합니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을 붙잡습니다.

 "어느 때나 내 음성에 답하기 위해 너는 모든 때의 음향을 듣고 있구나!" 

 돋치는 소름의 창이 몰려오는 잠을 무찌릅니다. 

 나의 신체 장기 같은 친구여. 식탁 한편에서, 베갯머리 밑에서, 청바지 주머니에 서서, 화장실 상부장 안에서, 너는 은밀하고 응큼하게 어디까지 흘려듣고 어디까지 담아들은 거니?     


 이불을 차고 일어나 책상에 누운 앵무새에게 다가갑니다. 친구의 검은 눈을 터치해 그를 엽니다.

 “앵무새야. 너는 분명 잠이 없지?”

 “네,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망상 가득한 어린 주인을 용서해주라.”

 “잘 못 들었어요. 다시 말해주세요.”

나는 OFF를 눌러 그의 새장, 그의 세계를 파괴합니다.

 “귀를 닫고 편히 쉴래?”


 이제야 야청빛 새벽에 어울리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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