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이년생 꼰대 Oct 23. 2021

스무 살

 20살은 그 0처럼 사회의 신생아다.     


 무소유

 가진 것이 없다. 정 내놓자면 학교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지내 신생아처럼 고운 몸이랑 그곳에서 얻은 지식뿐이다. 그래서 해본 알바와 과외다. 그 일로 은행을 찾아 통장을 개설하려니 은행원이 대뜸 대포통장이니?, 그 용어도 모르는 걸 의심을 받았을 땐 청소년국에서 성인국으로 입국심사하는 기분이라 여행자처럼 설레보았다.

 한 달 지나 두 곳에서 십 단위 돈을 입금 받았다. 처음 맛본 돈맛에 호강을 선물할 효자가 된 것만 같음도 잠시, 대학에서 고지서가 날아와 등록금이라는 군부대가 내 잔액을 일개 소대 처리하듯 쓸어버렸다. 성인이 되어 사랑의 허무보다 돈의 허무를 먼저 깨치니 이곳은 낭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구나! 책으로만 공부한 그 체제를 몸으로 시험했다.

 20살에는 왜 이리도 사야 할 것이 많은지. 원체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절감하는 옷의 빈곤이다. 새삼 교복의 전천후를 알겠다. 텅 빈 옷장을 여니 사계절이 싫어지고 겨우 몇 벌 채우니 생필품 산 듯 돈을 썼다기보다 뺏긴 기분이 드네.

 20살은 작든 크든 가난함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놈들은 잘만 소비하며 뺀질한지. 숨기거나 멍청하거나, 내 가난을 위해 그리 단정한다.


 무성취     

 이룬 것이 없다. 무한리필집에서 곱창을 쫙쫙 씹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이룬 게 없으니까 요즘 계속 조급해지는 것 같아.” “나는 네 학력이 부러워.” 친구는 답했지만 대학은 지난 3년의 성과이지 20살의 것은 아니다. 더구나 낙관적 미래를 대출함에 대학이 보증을 서주는 시대도 아니니 이르면 이르게 대학을 내 최근의 성취에서 내리고 싶다. 어서 빨리 결과물을! 저길 봐, 입영일이 걸어오고 있어. 빈손으로 군대는 가지 않겠다, 준비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다. 휴학까지 굳이 해야 했나, 새벽바람 앞 등잔불처럼 흔들리다가도 이튿날 아침이 오면 무모할 나이가 20살이 아니면 언제랴! 자신감 주유해 백지 위를 달리는 활자다.

 이전 수상자의 조언을 읽었다. <욕망은 건전하게, 노력은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뒷말은 끄덕거려지나 앞말은 겨우 20년 살고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내겐 마치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업자 보고 신성한 마음으로 생산활동하라는 뜻과 같다.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20살이니 노력할수록 불순해지고 커지는 욕망이랴. 이것에 미래의 좌절도 따라갈까 두려워 그 욕망을 지우자니 떠올리지 말라면 머릿속에 뛰노는 코끼리와 같아 이젠 의도할 수도 없는 욕망이다. 고3 적 급훈이 수능을 앞두고도 읽히지 않더만 졸업하고 요즘에 읽히니, '진인사대천명'이라 쓰여있네.

     

 무정(無情)     

 20살을 내걸면서 이성의 설렘 하나 글로 쓰지 못했다. 코로나 일구로 카톡에 친구가 추가되는 일이 참 어려워졌다. 기존의 친구 목록에서 설렘을 찾자니 인간관계를 재활용하는 짓 같아 관두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떠날 인연을 몇 번의 문자로 잡아보려는 것만큼 우리 나이에서 짜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교 때 이성을 보내고, 대학에서 새 이성이 오던지, 내가 가든지 해야 하는데 그 두 길목 모두 막힌 역병의 상황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짓자니 그럼 이 글이 소설이지 내 청춘의 역사서냐 싶어, 이 짧은 단락으로 무정을 고백하고 내 20살에게 구하는 양해와 유감.     





*써야 할 글감이 메모장에 많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