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진 Jul 05. 2024

<필사>서울대 학위수여식 허준이 교수 축사

미래의 나를 꿈꾼다. 그곳의 나를 상상하며 오늘의 허무와 절망을 이겨낸다. 그 틈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허준이 교수가 말한다.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오늘의 허무와 절망이 미래의 나의 거름이 될 수 있으니.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단단한 오늘을 잘 이어가라고. 


화려한 미사어구 하나없이 담백하고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폐부를 찌른다. 아프지만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진한 깨달음의 여운이 몸을 감싼다. 

대충 흘려보낸 오늘앞에서 미래를 꿈꾸는 어리석은 내가 되지 말아야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좀 더 친절을 베풀어야겠다. 

내일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 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천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와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이전 15화 필사 -에크하라트 톨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