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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Jun 22. 2021

속초 영랑호의 정취

신라 화랑 영랑이 봤던 자연 그대로의 호수로 남기를 바라며

청초호 위 속초시가지를 지나 고성으로 가는 길에 또 다른 석호가 하나 있다. 바로 신라시대 전설의 네 화랑 중 하나인 영랑이 무리와 함께 이곳에서 놀고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붙인 영랑호. 영랑 말고도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전에 봤던 성류굴처럼 활보했을 터. 고려 시대의 신흥사대부인 안축과 이곡도 영랑호에 절경을 보고 시를 남겼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영랑호는 청초호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다. 우선 오징어를 잡으러 가는 고깃배들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호수 주변으로는 남쪽 편을 제외하고는 고층건물을 보기 어려워서 오히려 청초호보다 자연을 더 간직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서쪽 설악산 편으로 막아서는 고층 건물이 없어서 나의 마음을 확 트게 한다. 특히 영랑호 범바위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라 할까?


신라시대 화랑들과 고려와 조선 사대부들이 유람을 즐겼던 영랑호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시작은 범바위에서


속초시청에서 수복탑사거리로 직진하자. 수복탑 회전교차로에서 9시 방향으로 향하면 속초시외버스 터미널이 나오는데, 터미널을 지나 다시 직진하여 삼거리로 가서 좌회전하자. 그러면 오른쪽 편으로 아파트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곳을 계속 따라가면 신세* 영랑호 리조트 주차장을 볼 수 있다. 이곳에 내가 주차하는 이유는 바로 아래에 속초 8경인 영랑호 범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호수를 보러 내려오면 왼쪽으로 바위 위에 누정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궁금해서 계단을 따라 그쪽으로 올라가 보니 2005년에 복원한 영랑정을 볼 수 있다. 영랑정 위에서 호수를 보니 청초호와 달리 고층건물들이 보이지 않아 마음이 트인다. 영랑정 왼쪽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우뚝 서 있는데 바로 범바위다. 영랑정에서 볼 때는 이게 왜 범바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내려가서 호반길을 따라가니 조그만 연못이 보인다. 그 연못에서 보아하니 바위로 된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영랑호가 개방되기 전에는 이곳에 호랑이들이 살았다고 한다.


범바위는 지질자원으로써 보존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유는 양남 주상절리와 달리 바위가 선으로 끊어진 부분이 없는 데다가, 암석도 풍화되지 않고 둥근 그대로 남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최근 모 업체가 범바위에서 영화 촬영을 이유로 수십 개의 볼트와 앵커를 박고 명물을 훼손한 일이 있어서 속초시 환경단체에서 반발한 적이 있다. 게다가 범바위는 민간업체인 신세*리조트 소유여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속초시가 즉시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매입 절차가 실제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영랑호 명물인 범바위를 시 당국에서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2005년 복원한 영랑정과 영랑호
영랑정과 그곳에서 바라본 호수 풍경
범바위 정상(좌)과 옆에서 바라본 모습(우)


범바위를 지나 푸르른 호수를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서쪽 편에 바위 하나가 외로이 하나 있다. 바위 쪽으로 가까이 갔는데, 조각 작품이 하나 보인다. 2001년 4월에 세워진 조각상인데, 제작자인 강익희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영랑호의 암용과 청초호의 숫용의 사랑과 화합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용 주변에 있는 사람은 무예, 참선, 풍류, 문예로 이뤄진 4명의 화랑을 표현했다고 한다. 즉 신라에서 이상형으로 삼았던 인격과 수양을 고루 갖춘 화랑을 표현했다고 하나.


다만 학계에서 바라보는 영랑호 전설은 조각상 이야기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영랑이 동료 화랑들과 금강산에서 수련하고 금성(오늘날 경주)으로 돌아오는 중에 그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호수가 아름다워서 그런지 영랑은 수도로 가는 것을 잊은 채 호수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이를 기념하여 사람들은 여기 호수의 이름을 영랑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혹시 영랑처럼 신라의 화랑을 체험하고 싶은가? 생태공원을 지나 호수 북쪽 편으로 향하면 화랑도체험관광단지가 나온다. 기초기마술, 격구, 활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화랑뿐만 아니라 세계기사선수권대회 행사도 여는데 참가국의 궁사들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종목으로 대결한다고 한다. 


나는 화랑도체험관광단지보다 호수 한 바퀴를 탐사하는 데 더 신경 쓰기로 했다. 그런데, 계속 호수변을 걸어가 보니 불타 남은 벽돌집들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산불화재로 소실된 건물이라서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와 함께. 대체 호수변 주변에 화려했던 벽돌 건물들은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영랑호 서쪽 편에 있는 외로운 바위
영랑호 암용과 청초호 숫용의 사랑을 표현한 강익희 선생의 작품


2019년 고성-속초 산불에 휩싸인 벽돌 빌라콘도들

     

불타 남은 벽돌집들은 무엇인가? 원래 이곳은 속초 영랑호리조트의 빌라형 콘도였다. 빌라형 콘도는 2019년 4월에 고성-속초에서 일어난 대형산불로 인해 직격탄을 받았던 것이다. 저녁 무렵 미시령터널 상해선 주유소 인근의 전신주 개폐기에서 일어난 화재는 고성과 속초에 삽시간에 번졌다. 소방서에서 전신주로 3분 만에 출동해 진화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당시 건조한 날씨와 강풍으로 인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워낙 산불의 규모가 커서 전국의 모든 소방차에 출동 지시를 내렸다는 뉴스의 내용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부의 총동원령으로 불은 24시간 이내에 거의 진화되었다. 하지만 2000ha에 가까운 산림파괴, 1,000여 명의 이재민, 3,000억 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있는 빌라형 콘도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리조트 측에서 산불에 신속하게 대응해 고객들이 신속히 대피했으나, 화마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처참하게 남아 있다. 철거를 아직도 못하는 이유는 20개에 가까운 빌라 동이 각각 7~10명씩의 개인들에게 분양되어서 이들에게 철거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 회원이 30%가 넘어서 지지부진한 것. 게다가 동의 비율이 60%가 안 되는 선에서 머물러 있어서 시 당국에서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한다.


흉물로 방치되어 있는 지라, 영랑호 주변으로 산책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특히 감시가 덜한 밤에 이 건물에 무단침입을 하거나 쓰레기 무단투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어렵지만 철거 절차가 조속하게 진행해야 함은 당연한 소리다. 다만, 나의 의견이긴 하지만, 낙산사에 남겨진 녹아버린 동종처럼 불탄 건물 중 2~3동 정도 남겨서 고성-속초 산불에 대한 교훈을 남길 수 있는 장소로 활용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영동 지역이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 때 불조심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내용과 물이 넘치는 호숫가에 지어진 건물이라도 불이 빠르게 번지면 이 건물처럼 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2019년 고성-속초 산불로 처참한 흔적으로 남은 벽돌 빌라 콘도들


벽돌 건물 외에도 주변의 소나무와 생태관찰 데크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무려 산책로에 있는 86.3%의 소나무들이 불에 탔고, 생태관찰데크도 3개소도 모두 소실되었다고. 작년에 소나무 묘목 570주를 다시금 심었다고 한다. 다시 지어진 생태관찰데크에서 설악산으로 눈을 향하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서 수많은 아파트들로 가려진 청초호보다 마음이 탁 트인 느낌이었다. 왜 영랑이 여기서 머물다 가려고 했는지 공감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남쪽으로 범바위를 다시 바라봤는데, 웅크린 호랑이 머리처럼 보였다. 다만 범바위 산자락 뒤로 아파트들이 가득해서 서쪽보다는 너무 가려진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들은 주민들이 엄연히 거주하고 있는지라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영랑호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프리미엄을 가지고 고층아파트와 리조트 장사를 하는 것은 안 된다. 이미 높은 건물들로 가득해 주변 전경을 다 가려버린 청초호가 반면교사가 된 사례가 있어서, 여기만은 자연 모습에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남기는 게 순리라고 본다. 앞으로 거대하게 자라날 570주의 소나무와 함께.


최근 복원된 생태관찰데크


호수 서쪽 편으로 보이는 설악산 자락. 빌딩으로 가득한 청초호와 달리 탁 트였다.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본 범바위. 범바위 뒤로 아파트와 고층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다시 범바위로 돌아가며...

     

생태데크를 지나서 고성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다시 돌아가면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봤던 자유수호희생자 위령비를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호수를 따라 속초의료원을 지나 남쪽으로 잠깐 가면 큰 비문이 하나 보이는데, 통천군 순국동지 충혼비라고 쓰여 있다. 오늘날 북한에 속해 있는 통천군 출신의 국군 전몰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자 설립된 비라고 할 수 있다. 충혼비 아래로는 140명의 전몰 병사 이름들이 새겨 있다. 남북이 통일되면 금강산을 지나 본고장으로 이전을 대비해야 할 충혼비라고 해야 할까? 그때가 되면 동족끼리 전쟁을 다시 하지 않고 사상과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어야 할 것이다.


충혼비를 지나면 조그만 절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보광사다. 비교적 최근인 1937년에 지은 다포양식의 건물들로 이뤄져 있다. 부처의 제자 53불 중 수제자인 보광불전을 모신 절이라고. 왼쪽 대웅전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건물양식인 상록하단(상층부 지붕과 건물의 문은 푸른색, 하층부 기둥은 붉은색의 구조로 된 건물을 뜻함)으로 이뤄졌고, 오른쪽 명부전은 나무색을 잘 살린 고려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보광사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는데, 원래는 금강산 안양암에 모셔진 것을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원위치로 돌아가지 못하고 속초에 남게 되었다. 최근에는 보살좌상의 복장 유물에서 청주 한 씨 부인이 조정 내시였던 남편 ‘나업’의 극락왕생을 서원하는 발원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원문이 발견된 이후 보광사에서는 이들 부부를 위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고.


통천군 순국동지 충혼비


보광사 대웅전과 명부전


보광사를 지나면 다시 신세*리조트로 돌아가는 길이 보인다. 리조트로 바로 가는 길과 호수 둘레를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호수를 완전히 다 감상하기 위해 발에 피로가 더해지지만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길을 가다 보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체육기구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체육기구 옆 풀이 무성하고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큰 비석이 하나 놓여 있는데, 5언으로 이뤄진 한시를 볼 수가 있다. 한시를 지은 이를 보니 바로 근재 안축 선생이다. 1999년에 속초에서 시비를 건립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요즘 이를 진지하게 보고 가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좀 더 눈에 띄게 시에서 무성한 잡초를 제거했으면 한다.


사실 강원도 관동팔경과 명승지를 가면 세 사람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나가 전에 동유기에서 소개한 <차마설>의 저자이자 고려 말 신진사대부인 이곡, 하나가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송강 정철, 나머지 하나가 근재 안축 선생이다. 근재 안축 선생도 이곡과 마찬가지로 원나라 과거 제과에 급제한 경력이 있다. 이후 고려 조정에서 문하시중 다음 직위인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까지 올라간 것을 보면, 관료로서의 경력을 잘 이어간 것 같다.


안축 선생이 강원도와 인연을 쌓게 된 계기는 충혜왕 때 왕명으로 강원도존무사로 파견되면서부터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관동팔경과 예로부터 이어져오는 강원도 명소에는 안축이 빠지지를 않는다. 영랑호도 안축의 손길이 닿은 곳 중 하나인데, 그가 지은 경기체가인 관동별곡에도 영랑호를 찬탄하는 내용을 남겼다. 안축시비에 새겨진 것은 <영랑호범주>라는 한시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랑호 안축시비. 비석 주변으로 풀들이 무성하다. 시비 앞면(좌)과 뒷면(우)


平湖鏡面澄,蒼波凝不流。

蘭舟縱所如,泛泛隨輕鷗。

浩然發淸興,溯洄入深幽。

丹崖抱蒼石,玉洞藏瓊洲。

循山泊松下,空翠涼生秋。

荷葉淨如洗,蓴絲滑且柔。

向晩欲回棹,風煙千古愁。

古仙若可作,於此從之遊。

     

잔잔한 호수는 거울같이 맑고, 푸른 물결은 엉기어 흐르지 않네

놀잇배를 가는 대로 놓아두니, 갈매기도 배를 따라 둥실 떠 날아오네

마음 가득 맑은 흥취 일어나기에, 물결 거슬러 깊은 골로 들어서네

붉은 벼랑은 푸른 바위를 안고 있어, 아름다운 골이 고운 섬을 품은 것 같네 

산을 따라 소나무 아래 배를 대니, 울창한 숲 그늘이 가을인 양 서늘하네

연잎은 씻은 듯 깨끗하고, 순채 줄기는 매끄럽고도 부드럽네

해 저물어 뱃머리 돌리려 하니, 흐릿한 기운 오랜 시름 자아내네

그 옛날 신선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를 따라 여기서 놀련마는

ⓒ 문화연구회 풀묶음 번역


역시 이곳도 경포호와 더불어 뱃놀이하기에는 최고였나 보다. 안축뿐만 아니라 성류굴을 탐사했던 이곡도 한시를 남겼고, 조선시대 송강 정철을 비롯한 문인들도 이곳을 찾아왔었다. 관동팔경으로 꼽히지는 않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강원도를 들르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 중 하나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온갖 고깃배와 빌딩들이 들어선 청초호와 달리 영랑호는 다행히 호수 남쪽 부분을 제외하고는 자연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산책하러 오기에는 정말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런데 속초시에서 최근 영랑호를 가로지르는 400m 길이의 부교와 800m의 데크길, 야간경관조명 등이 설치하는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환경단체에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미 청초호 주변을 개발했다면, 영랑호는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이 속초시에 있어 이점이다. 안축의 시처럼 맑은 거울의 호수로 그대로 남기를 바라며, 영랑호를 나섰다. 


영랑호 서쪽 호수변에서...


망원경으로 영랑호를 바라보는 소년을 조각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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