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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Jun 15. 2021

속초 청초호와 아바이마을

청초호를 속초 경제중심지로 만든 청호동의 아바이들

속초시 중심에는 청초호라는 호수가 있다. 호수의 남과 북으로는 시가지가 동쪽으로는 청호동 아바이 마을이 호수 서쪽 저 멀리로는 설악산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호수 동쪽으로는 새벽부터 울릉도와 독도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는 배들로 가득하다. 남서호변에는 강원국제관광엑스포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청초호수공원으로 조성했는데, 속초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속초 시민이 아닌 내가 청초호를 처음 들었던 때는 바로 한국지리 시간이었다. 원래는 만(灣)이었다가 만 입구에 둑 모양으로 된 모래톱이 쌓여서 바다와 분리되어 생긴 호수라고 선생님께 수없이 들었다. 실제로 수능 사회탐구에서도 자주 나온 문제라 아직까지 잊지 않는 내용이다. 강릉의 경포호와 양양의 쌍호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양양도호부에 속했던 조선시대에는 만호영을 설치하여 병선이 정박했던 곳이었으나 후에 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호수 동쪽 편 청호동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자연형태 그대로를 보존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며 청호동에 움막형태의 집을 짓고 기다렸는데, 결국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이들은 60년이 넘도록 고향으로 여전히 돌아가지 못해 이곳에 아바이 마을을 형성하여 현대 속초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오징어잡이배가 가득한 호수와 호수 주변 공원과 시가지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걸까? 청초호를 한 바퀴 돌아보며 속초의 역사를 되돌아보자.

     

청초호 한 바퀴


몇 년전 서울 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수도권에서 속초로 오는 길은 이전보다도 더 편해졌다. 양양분기점에서 속초 방향으로 가면 북양양 나들목이 나오는데, 물치항으로 나와 7번국도를 따라 쭉 가면 속초고속터미널이 보인다. 터미널을 지나면 오른쪽에 모 대형마트가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향하자. 그러면 도로 좌측에는 청초호 호수가 우측에는 청호동 마을이 있다. 


나는 최근 이사한 포항에서 7번국도와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저녁에 올라왔기에 하루를 호텔에서 묵은 후 속초의 새벽광경을 보기 위해 오전 6시 반쯤 나왔다. 하지에 가까운 5월 말이어서 그런지 날이 벌써부터 훤했다. 숙소 근처가 남동쪽 호수변에 있어서 나는 설악산이 보이는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걸음을 시작한 곳에는 요트들로 가득했다. 속초 주변 동해바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요트 관광상품인데, 청호동 마을 바다 너머로 보이는 조도를 갔다 온다고 한다.


저쪽 멀리로 강원국제관광엑스포를 기념하여 지은 엑스포타워가 보인다. 타워를 가기 전 왼쪽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넓은 놀이터가 있다. 그리고 놀이터 끝 쪽에 추모비가 하나 있는데, 고 이기섭 박사(1913~2006)를 기린 추모기념비다. 고인은 원래 60년대에 이화여대 부속병원장을 역임한 의료 엘리트였다. 하지만 설악산 등반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졌는데, 84년 속초로 이주해서 지역주민들에게 의술을 배풀었다고. 또한 20여 년간 농어촌 산간벽지를 찾아 의료봉사를 했다고 한다. 의료뿐만 아니라 양폭과 천불동 계곡에 다리를 놓아 일반인도 오를 수 있는 등산로를 만들어서 설악산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1966년 산악인의 축제 ‘설악제’를 처음으로 개최하여 오늘날 설악문화제로 계승되었다고 하니, 속초에서 그를 기릴 수밖에.


추모기념비를 지나면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승천하는 느낌의 엑스포타워를 볼 수 있다. 새벽에 걸어다녀서 타워 전망대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밤에 불빛이 가득할 때 소중한 사람과 함께 전망대를 올라가면 청초호와 속초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소중한 사람과 밤에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올라가봐야겠다. 


故 이기섭 박사 추모 기념비
엑스포 타워
반대편에서 바라본 엑스포타워와 속초시가지


타워에서 서쪽 호수변으로 가면 푸른 빛으로 가득한 청초호수공원이다. 아침에 조용해서 그런지 호수공원 주변으로 새들이 많이 다니는데 실제 철새들이 자주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조류 독감에 대한 주의사항 간판도 많이 있다. 푸른 광경의 호수공원은 석봉도자기 미술관과 호수위에 조성한 정자인 청초정이 있는 곳에서 끝난다.


청초정을 지나 북쪽 호수변을 따라가면 어선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어선들을 보아하니 전구가 많다. 오징어잡이 배가 아닐까 생각하고 어민으로 보이는 분께 여쭈어 봤는데, 큰 규모의 배는 러시아로 가는 오징어 잡이선이고,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는 어선은 좀 작다고 하셨다. 마침 저 멀리 배가 하나 보였는데 오징어 잡고 돌아오는 선박이라고. 요즘은 울릉도와 독도까지 가서 오징어잡이를 한다고 한다. 오징어가 속초 연근해로 들어오려면 2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그리고 겨울에는 남쪽바다로 가서 오징어잡이를 한다고 한다. 청초호 오징어 선박들은 1년 내내 거의 쉴 틈이 없는 걸까?


오징어 선박들을 지나면 호수 동쪽 편에 있는 다리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빨간색의 다리는 설악대교, 그 뒤 파란색으로 보이는 다리는 금강대교다. 금강대교와 설악대교를 사이를 보면 건너편 섬처럼 생긴 곳으로 가는 배가 보이는데, 바로 케이블선을 연결하여 운행하는 갯배다. 이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로 넘어가는 것이다. 갯배를 타기 전 아침 허기가 찾아와 갯배선착장 위에 있는 속초관광수산시장을 찾아 속초의 명물인 아바이 국밥을 먼저 먹고 길을 향하기로 했다.


청초호수공원. 아침에 철새들이 보인다.
햇살아래 러시아로 가는 대형 오징어 냉동선(좌)과 연근해로 가는 오징어잡이배(우)
동해바다로 떠나는 오징어잡이 배


아바이마을 이야기


속초관광수산시장은 2018년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로 속초에서 1달 동안 묵은 적이 있을 때 온 적이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이전에 내가 갔던 닭강정집들과 맛집들은 아직 열지 않았다. 다만 시장 안에 아바이순대 타운 안에 국밥집들은 아침 일찍부터 열고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식당에서 아바이국밥을 먹기로 했다. 40년 전통이 있는 집답게 깊은 맛이 있었다. 만약 관광시장 주변으로 여러분들께서 주변을 하루종일 돌아다닌다면, 아침에는 국밥, 점심에는 닭강정집 또는 시장의 유명한 맛집, 저녁에는 오징어순대를 먹으면 된다. 


아침을 해결하고 갯배선착장으로 다시 갔다. 갯배선착장 앞에는 새롭게 단장한 건물이 눈에 띈다. 작년 4월에 개장한 속초 청년몰 갯배st이다. 갯배선착장에 청초호와 속초 동해바다가 잘 보이는 입지가 좋다고 해야할까나. 청년몰이 요즘 몰락하고 있어 걱정하는 뉴스가 많이 나오는데 이곳은 예외가 되기를 기원한다. 1층을 보니 속초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무슨 사연이 있나 했더니 옛 속초수협 건물을 리모델링했기에 속초의 역사도 담았다고. 


갯배st 오른쪽 편에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는데, 故 유정충 하나호 선장을 추모하는 글이다. 배가 침몰위기에 놓이자 21명의 선원을 모두 탈출시켰지만, 통신실에 홀로 남아 “602호 하나호 침몰중”이라는 유언을 남긴채 바다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의인이시다. 유 선장의 살신성인으로 인해 1990년 전국 어민들이 3월 9일에 전국 어민장으로 그의 장례식을 치렀다고. 정부에서는 그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추서했다. 그를 추모하는 동상이 원래 청초호 호수변 사람이 뜸한 곳에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미관을 해쳐 유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결국 유족들과 협의 후 그가 생전 살았던 아바이 마을로 동상을 이전했다. 오늘날에도 속초 시민들은 죽을 때까지 선장의 임무를 다했던 그를 해마다 추모한다.


옛 속초수협 건물을 개조한 갯배st전경(좌), 아바이 마을에 있는 故유정충 하나호 선장 추모동상(우)


이제 갯배를 타고 아바이마을로 가자. 가격은 2년 전 그대로 50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요즘은 설악대교와 금강대교가 있어 차로도 아바이마을에 들어갈 수 있지만, 다리가 없던 옛날에는 갯배가 그야말로 아바이마을 위쪽 홀로 남겨진 섬주민들의 필수 교통수단이었다. 갯배는 무려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시작한다. 한국전쟁 이후로는 목선인 거룻배로 이용하다가 80년대에 케이블을 단 강화플라스틱선(FRP선)으로 교체하게 된다. 앞에 으리으리한 다리가 있는데도 갯배는 여전히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속초 갯배는 중앙에 줄을 놓아 쇠꼬챙이로 줄을 당겨서 이동하는 구조다. 눈으로 보기에는 쉽지만 배가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에 내가 보이지 않는 숨겨진 노하우들이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바이마을 선착장을 지나면 다리 아래로 속초 어민들의 배와 오징어 그림들이 보인다. 다리를 지나면 식당들과 카페들로 가득한데, 아무래도 <가을동화>와 <1박 2일>의 촬영지 효과를 톡톡히 봐서 그런 것 같다. 대다수 식당들은 속초관광수산시장 국밥집들처럼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를 팔고 있다. 해변에 카페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면 옛 정장을 입은 신사가 있는 동상이 보인다. 그 옆에는 어떻게 아바이마을이 형성되었는지 말해주는 안내판이 있다.


아바이마을로 건너가는 갯배(좌), 쇠꼬챙이로 줄을 당겨 이동하는 갯배(우)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아바이마을 식당들
아바이마을 동상. 센스 넘치는 50~60년대 아바이 정장이 멋지다.
설악대교 위에서 바라본 아바이마을(좌)와 청호동(우)
아바이마을에 조성된 인공해변.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속초여객선터미널이다.


원래 내가 지나온 청초호는 조선시절에는 쌍성호라고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雙成湖在府北四十里。杆城郡界。周數十里。湖之形勝,優於永郞湖。昔置萬戶營,泊兵船,今廢。


쌍성호. 부 북쪽 40리 간성군(杆城郡) 경계에 있으며 둘레가 수십 리다. 호수 경치가 영랑호(永郞湖)보다 훌륭하다. 예전에는 만호영(萬戶營)을 설치하여 병선(兵船)을 정박하였으나 지금은 폐하였다.”


한 때 이곳은 조선 수군의 전략기지였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아무래도 어선들보다는 병선들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수군을 폐하고는 다시 조용한 마을로 돌아간 것 같다. 이후 조선 후기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청초호를 낙산사 대신 관동팔경에 포함시켰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襄陽靑草湖, 如鏡開畵奩,


“양양의 청초호는 호사스런 화장대에 거울을 펼쳐놓은 듯하다.”


사실 이중환이 청초호를 관동팔경으로 선정한 것은 상당히 독특하다. 왜냐하면 관동팔경을 유람한 다른 선비들은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당대 기준으로 보면 새로운 명승을 소개한 셈. 이를 유심히 본 성균관대학교 김세호 연구원은 그가 청초호를 낙산사 대신 관동팔경으로 지정한 이유가 산수의 조화에서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논문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새로운 명승이 200여 년 후 속초 경제의 중심이 될 줄이야.


청초호가 속초 경제의 중심이 된 계기는 아바이마을과도 연계되어 있다. 원래 청호동은 사람이 잘 살지 않던 바닷가 땅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북에서 온 피난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기대하며 움막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인해 그들은 오늘날까지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피난민들은 주로 함경도에서 왔기에 이곳을 아버지의 함경도 방언인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바이마을 실향민 이야기를 나타낸 벽화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고기잡이였다. 피난민이었기에 농토와 같은 생업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초라한 배로 시작했으나 배를 점점 더 동력선으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수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는 속초가 1963년에 속초시로 승격된 이유가 되었다. 


50~60년대 아바이마을 판자집 지붕에는 명태와 오징어, 도루묵을 말리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동해시 묵호항은 명태덕장으로 가득했고, 속초는 오징어 덕장으로 가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둘 다 강원도 동해안의 중요한 수산업이기도 했고. 내가 아침에 먹었던 아바이국밥과 속초의 명물인 오징어순대는 사실 이들의 오랜 수고로 나온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향을 등진 아픔을 뒤로 하고 생업에 최선에 다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설악대교를 건너 청호초등학교 주변 마을 아바이 벽화거리에서 잘 볼 수 있다. 실향민의 아픔을 나타낸 그림이 가득하지만 이곳에 정착하며 오순도순하게 산 실향민 부부의 이야기. 북청사자놀음 전통을 속초에서도 지켜 나간 이야기(이는 오늘날 속초사자놀음으로 이어졌다)도 있다. 움막촌이었던 곳은 오늘날 벽돌집으로 이어오고 있다.


오징어는 속초 경제의 뿌리다. 이는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토속음식인 오징어순대로 이어진다.
청호동 노부부 이야기(좌)와 속초사자놀음(우)
아바이마을 옛 풍경(좌)과 오늘날 청호동의 집들


오늘날 설악대교가 보이는 청초호 호수변에는 낚시꾼들로 가득하다. 이들을 보면 이중환이 왜 이곳을 명소로 넣었는지가 수긍이 간다. 낚시꾼들의 뒤쪽에는 옛 피난민들의 흔적이 남은 아바이마을이 있는데, 오늘날은 관광지로 알려졌지만, 현대 속초 경제사를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가게에서 오징어를 쉽게 사먹을 수 있으니까. 오징어는 그야말로 속초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감소했다. 게다가 동해안 북한수역에서 중국 불법조업 어선 오징어를 남획하면서 속초 어민들의 속을 타들어가게 했다. 이 문제로 2019년부터 해수부에서 근해유자망에 대한 오징어 총허용어획량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작년 가을 어획량이 예년을 웃돌은 건가? 하지만 중국 불법조업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반짝 풍년이 될지 아니면 긍정신호가 될지는 미지수다.


오징어잡이로 평생을 헌신했던 아바이마을 피난민들이 고향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우리 후손들의 과제다. 아바이마을의 피난민 정장 신사들이 오랜 세월으로 인해 고향을 끝내 못보고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살아있는 이들이 고향을 갈 수 있도록 남북이 노력해야한다. 현대 속초시를 설계하고 실천한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으니까. 


설악대교 아래 낚시대들
청호동 앞 바다 건너 보이는 조도(鳥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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