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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Apr 09. 2021

두 망양정 이야기

오늘날의 망양정 vs. 정철이 봤던 망양정

고등학교 때 내 머리를 아프게 했던 정철의 <관동별곡>이다. 하도 자주 봐서 가장 앞에 나오는 구절인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었더니.’는 아직도 기억난다. <관동별곡>에는 금강산 절경과 관동의 명승들이 나오는데 망양정은 후반부에 나온다. 위 내용은 정철이 망양정에 올라서서 파도를 보고 감탄하는 부분이다. 낮에 파도를 보고 밤이 되어서는 달빛을 바라보며 신라의 네 선인에 관한 소식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망양정은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다. 망양정이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있어서 왕피천유원지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를 만원 내고 타면(크리스털 캐빈은 12,000원) 더 편리하게 갈 수 있다. 그런데 정철이 방문했던 망양정은 여기서 더 남쪽인 기성면 망양리에 있다. 여기도 또한 원래 망향정이 있던 자리가 아니다. 즉 망양정은 두 번이나 이사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망향정 해맞이 공원과 정철의 관동별곡 무대인 기성면 옛터 두 곳 모두 일주일 터울로 방문했다.


망양정 해맞이 공원 : 오늘날의 망양정

     

7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노음교차로라고 나오는데 친절하게도 망양정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근남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면 시가지를 지나면 하천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왕피천이다. 이 길로 우회전해서 동해로 향하면 망양정 해맞이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아니면 다리를 건너서 왕피천유원지를 구경한 다음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왕피천유원지는 2005년과 2009년에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를 개최한 곳인데, 봄철이나 가을철에 아이들과 함께 경치 좋은 공원을 감상한 후 망양정으로 가도 좋다. 다시 유원지로 돌아오려면 왕복표를 사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망양정 자체에 관심이 있어서 입구 주차장으로 바로 갔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올라가면 원통 형태와 원형 지붕으로 이뤄진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름이 소망전망탑이다. 전망탑 뒤에는 울진대종이 있는데, 문양이 경주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과 비슷하다. 부산 용두산공원 대종과 마찬가지로 해맞이 행사의 타종을 위해 2006년 12월에 제작했다고 한다. 해맞이 공원이라는 이름답게 양력 새해 때는 여기도 해를 보러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되어서 유투브로 대신했다.


소망전망탑과 울진대종


해맞이 공원을 지나면 나무 조형물과 파이프로 장식된 오솔길이 나오는데, 이 오솔길로 망향정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오솔길에 적힌 ‘뱀조심’ 문구가 눈에 띈다. 우리에겐 뭔가 섬뜩한 문구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울진이 개발을 덜 타서 우리나라 생태관광의 중심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뱀을 조심하면서 오솔길을 지나면 커다란 안내 표지판이 나오는데, 케이블카 선착장부터 망양정 구간까지 전시된 관동팔경 소갯글이다.


소갯글들을 지나면 바로 주인공인 망양정을 만날 수 있다. 정철이 부른 정자와는 때가 덜 탄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망양정이 세워진 것은 조선 철종 11년(1860)이다. 이후 정자가 퇴락하여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에 중건했지만 다시 심하게 낡아서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고 한다. 정철이 구경했던 옛 기성면 망양리의 망향정이 너무 낡아서 철종 5년(1854)년 강원도 울진 현령 신재원이 향회에 신포리 둔산동 해안봉에 망양정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재정부족으로 추진하지 못하다가 1860년 울진 현령 이희호가 여기로 이전한 것이다.


새 망양정으로 가는 오솔길. 왼쪽 '뱀조심'문구가 눈에 띈다.
멀리서 바라본 망양정
해 질 녘 망양정을 바라보며. 누각인 월송정과 달리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했다.
정면으로 바라본 바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어서 정철이 본 파도가 보이지 않는다. 
망양정에서 바라본 왕피천 하구


150년 역사의 새 망양정에서 정면으로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정철 관동별곡 시구처럼 파도를 보기는 힘들다. 동쪽으로 바라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쪽 광경이 매우 인상적인데, 왕피천 끝에서 모래톱 사이 좁은 길을 따라 강물이 바다로 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주변에 둑방과 같은 인공시설이 없다. 강 하구를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둬서 그런지 모래톱에서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망양정 해맞이 공원은 복합관광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겨울에는 해맞이 행사 때 인파로 몰리고, 봄과 가을에는 왕피천의 꽃구경 오는 관광객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오늘날 망양정 자리는 조선 말기부터 이어졌다고는 하지만, 21세기 첫 해부터 10년 동안 추진된 <경북 북부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어서 그런지, 조선 시절 선비들이 감상했던 것과는 뭔가 많이 다른 느낌이 든다. 하지만 군 중심지 울진읍과 근남면에서 멀지 않아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 같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 


조선시대 정철이 방문한 옛 망양정 터


조선 시대 선비들이 바라본 망양정은 어떠했을까? 궁금하여 일주일 후에 찾아가 봤다. 옛 망양정 터는 해맞이 공원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약 20분 정도 남쪽으로 가면 나온다. 다만 상하행선 들어가는 입구가 모두 다르므로 다음을 참고하자. 부산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망양휴게소를 지나 바로 나오는 망양1교차로로 진입, 속초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기성망양해수욕장으로 바로 가는 망양교차로에서 진입해야 한다. 부산방면 하행선으로 내려오면 울진대게동상과 오징어 풍물거리가 있는데, 마을에서 오징어를 말리는 풍경은 10월에 볼 수 있다.


나는 속초 방면 상행선으로 가는 길이어서 먼저 망양정 옛 터를 볼 수 있었다. 도로 왼쪽 야트막한 절벽 위로 정자 하나가 있는데 2015년에 재건했다. 원래 망양정은 고려 시절에 기성면 망양리 해변 언덕에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서 허물어져서 1471년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 기슭인 이곳으로 옮겨서 다시 세운 것이 바로 이곳이다. 1517년과 1590년에 두 번 중수했다고 하는데 또다시 세월을 못 이겨서 다시 허물어져서 21세기 들어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여기가 바로 정철 관동별곡에서 나오는 망양정 자리다. 이곳을 오니까 관동별곡의 망양정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일단 바다가 망양정 해맞이공원보다 훨씬 가까워서 엄청난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왜 정철이 망양정 바다 앞을 보고 “가뜩 노한 고래 누가 놀라게 했기에,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 지고.”라고 표현했는지 이해가 갔다. 시구를 보니 정철은 음력 5월 아마 초여름쯤에 와서 하얀 눈처럼 흰 거품이 가득한 파도를 본 것 같은데, 양력 2월 겨울 파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도소리도 성난 고래가 놀란 것처럼 우렁차게 들린다. 


멀리서 바라본 옛 망양정. 오늘날 왕피천의 것보다 절벽이 낮아 정자에서 해변을 훤히 볼 수 있다. 
복원한 옛 망양정. 정철 <관동별곡>의 망양정이 바로 여기다.
왼쪽에서 바라본 옛 망양정
정면으로 바라본 바다
망양정 앞 해변에 치는 파도. 성난 고래가 놀란 듯이 크게 친다.


낮에 하얀 거품이 이는 파도와 파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았다면, 정철은 망양정의 야경도 노래했다. 



바람과 파도가 가라앉은 밤에 정철은 해 질 녘 풍경을 본 후 달을 기다리면서 술을 마신 듯하다. 구름 뒤로 숨었다가 다시 나타난 달을 보고 감탄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이 세계를 보이고 싶다고. 그리고 계명성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당시 하늘이 깨끗해서 금성이 잘 보였는가 보다. 달과 금성뿐만 아니라 별들로 가득하지 않았을까? 필리핀 산골에 서 살았을 때, 별이 가득했던 풍경을 봤는데, 정철 시대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시대 월송정은 소나무로 가득한 숲이 핵심이라면, 망양정은 낮에 파도치는 바다와 밤에 별이 쏟아지는 풍경이 핵심이 아닐까? 오늘은 시간상 밤까지 있을 수 없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두 망양정으로 바라본 시대 변화

     

망양정은 무려 2번이나 이사했다. 그리고 정자가 낡아서 혹은 바람 때문에 파손되어서 몇 차례 중수했다는 기록들도 보인다. 옛 망양정 터 앞에는 옛 7번 국도와 전깃줄이 지나가지만 정철이 방문했을 때에는 자연 그대로에 가까워서 정자에서 동해 파도와 밤하늘을 감상하기 좋았던 것 같다. 정철 외에도 조정 벼슬아치들이 한양과 지방관아의 복잡한 정치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푸는데 제격이었으리라. 반면 벼슬아치와는 달리 넉넉지 못했던 평민들은 망양정을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철종 때 망양정을 근남면 산포리로 옮기고 나서는 시대가 많이 변하였다. 시민들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누구나 울진으로 관광을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울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요구에 맞춰서 망양정은 엑스포공원과 같이 즐길 수 있는 복합유원지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조선시대처럼 망양정 정자 혼자 있지 않다. 오솔길을 건너서는 해맞이와 관련된 울진대종과 소망전망탑이, 케이블카를 타고 건너면 왕피천유원지가 있다. 그리고 관광객들만 아니라 울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시대 배경에 따라 관광 취향이 바뀐다는 것을 두 망양정을 비교하면서 깨달았다. 어느 망양정을 갈지는 독자 여러분 선택에 달려 있다. 그래도 여유가 된다면 두 군데 모두 방문하여 조선시대와 오늘날의 정취를 모두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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