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32-1
지난 주말 영화 'Inside Out 2'를 봤다.
전편에 이어 사춘기 소녀의 머릿속에 다양한 감정들이 모여 좌충우돌하며 위기를 극복해 주인공 라일리가 결국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스토리는 뻔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기가 막혔다.
여러 감정들을 의인화해 각 감정의 입장과 목소리를 낸다는 설정에 감탄했다.
기존의 기쁨(Joy), 슬픔(Sda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소심(Fear) 5가지 감정에, 주인공 소녀가 사춘기를 맞이하며 불안(Anxiety), 당황(Embrassment), 부럽(Envy), 따분(Ennui)이 새롭게 등장했다.
매주 주말 일산 호수공원을 달릴 때면 다양한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좌충우돌한다.
이를 인사이드 아웃 버전으로 각색해 봤다.
기쁨: (기지개를 펴며 컨트롤 타워 앞에 선다) 얘들아! 어서 일어나. 견뚜기의 하루가 시작됐어.
침대에서 눈을 뚠 견뚜기가 오른손을 뻗어 머리맡에 시계를 본다. 6시 3분.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기쁨: 오늘은 토요일이야. 정신 차리고 몸 좀 풀고 바로 달리러 나갈 거야.
소심: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기쁨이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오늘은 쉬어도 될 법 한데. 주중에도 회사 러닝머신에서 달렸잖아?
기쁨: (소심의 두 팔을 잡고 소심이를 흔들며) 무슨 소리야! 오늘은 주말이라고!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는 날이야!!! 한주 동안 이날을 기다려 온 거잖아!
견뚜기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TV 채널을 켠다. 그리고 뉴스를 들으며 잠에서 깨서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한다.
까칠: (두 팔짱을 끼고) 이 아침부터 스트레칭이람. 허벅지 근육이 땅겨서 아프잖아. 짜증 나.
불안: (그 옆에서 듣고 있다가 오른손을 들어 손톱을 깨물며) 그러다나 근육이 찢어지면 어떻게 해?
기쁨: 밤새 움추러든 몸과 근육이 쭉쭉 늘어나는 이 기분! 좋지 않아? 몸이 다 깨는 것 같아!
기쁨이 옆에서 듣고 있던 불안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 슬픔이, 부럽이, 따분이 기쁨이의 텐션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버럭: (팔짱을 끼며) 이미 기쁨은 못 막아.
정신을 차린 견뚜기. 운동복을 주섬 주섬 챙겨 입는다. 갈색 러닝 반바지를 입고 파란색 기능성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암밴드를 왼팔에 차고 스마트폰을 넣는다. 머리에 회색 머리띠를 하고, 흰색 양말을 신는다. 하얀색 아식스 러닝화에 발을 넣고 신발끈을 조여 맨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선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깥공기에 두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켠다.
기쁨: 좋았어! 바깥이 집보다 시원한 것이 오늘 아침도 뛰기 좋겠어!
다들 기쁨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토요일 아침엔 다른 감정들이 끼어들 새가 없다. 컨트롤 타워 앞에선 기쁨이만 힘이 넘치고 분주하다.
1층에 도착한 견뚜기가 스마트와치에서 달리기 모드를 켜고 천천히 달려 오피스텔 건물을 나선다.
기쁨: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시작하는 거야!
소심: 아직 몸이 안 풀렸어. 천천히, 천천히 뛰면서 몸을 푸는 거야. 안 그러면 다쳐. 나이 들어 다치면 답 없어.
견뚜기는 집에서 호수공원까지는 약 1km. 과욕 부리지 않고 천천히 달리면서 몸 상태를 체크한다. 호흡, 무릎, 발목, 발바닥 등의 감각을 느낀다.
소심: 평소 불편함을 느꼈던 무릎, 발목, 발바닥엔 이상한 느낌은 없어. 다행이야. 휴우
기쁨: 거봐! 내가 뭐랬어? 일단 달리면 몸이 다 풀리고 통증이 없어진다니깐!
아직 이른 새벽 시간. 견뚜기는 텅 빈 도로를 가로질러 호수공원을 향한다. 호수공원에 다 다르니 몸에 열기가 조금씩 올랐다. 호수공원에는 작은 도서관 입구 너머로 2~3명의 러너가 달려 지나간다.
기쁨: 기분 좋지 않아? 얼마나 상쾌해! 게다가 이 이른 시간에 벌써 나와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좀 봐!
까칠: (입구 너머 러너들을 가리키며) 다들 왜 저리 부지런을 떤담? 주말에 느긋하게 늦잠 자면 병나나?
기쁨: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제 좀 몸이 풀렸어. 본격적으로 달리는 거야!!!!
불안: (기쁨이 옆에 선다) 너무 무리하지 마. 그러다 또 아픈 부위가 생기면 어떻게 해. 아프면 당분간 운동 쉬어야 할지도 몰라. 그러니 천천히 달려.
견뚜기가 일산호수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작은 도서관을 끼고 오른쪽으로 틀어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린다.
기쁨: 본격적인 달리기야! 오늘은 가뿐하게 호수공원 2바퀴 돌아야지!!!
견뚜기의 발걸음은 주제광장을 따라 난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한울광장을 향한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인도에 물이 고여있다. 신발이 젖지 않도록 물을 피해서 달린다. 장미 화장실을 지나 숲길에 들어선다.
기쁨: 좋아, 좋아.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계속 이 페이스대로 달리면 돼.
까칠: (팔꿈치로 기쁨이를 툭 치며) 중앙선 가깝게 달려. 바깥으로 가면 미묘하게 경사가 져서 괜히 더 힘들어.
견뚜기가 보니 저 앞에서 달려오는 러너가 낯이 익는다. 매주 주말 견뚜기와 같은 시간대를 달리던 어르신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나와 달리고 있다.
기쁨: 오늘은 어르신 하고 마주치면 인사를 해볼까?
당황: (얼굴을 붉히며) 아니야 하지 마. 무시당하면 어떻게 해? 창피하잖아.
기쁨: 좋은 아침? 파이팅! 힘내세요! 어떤 게 좋을까?
당황: (엉덩이로 기쁨이를 밀어내며) 그냥 달리자. 괜히 인사했다가 저쪽에서 말 걸면 어떻게 해?
까칠: (팔짱을 끼고) 그리고 말이야, 괜히 친해져서 매주 같은 시간에 뛰자 하면 귀찮잖아!
당황: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를 조여 얼굴을 가리면서) 그래. 그냥 혼자 달리는 게 좋겠어.
조금씩 견뚜기의 숨이 차기 시작한다.
불안: 숨이 차기 시작했어! 속도를 줄여봐! 이러다 지쳐서 완주 못할지 몰라.
기쁨: 아직 이 정도는 괜찮아! 이제 겨우 1.5km 달렸는데 뭘! 2년간 달리면서 이 정도는 익숙해졌어!
견뚜기가 길을 따라 제2 주차장을 지나고, 놀이터를 지나 두루미 화장실로 향하면서 2km를 달렸다는 진동이 울린다.
기쁨: 이제 2km! 아주 순조로워!
견뚜기가 흘끗 보니 두루미 화장실 옆 벤치에서 일련의 러너들이 준비 운동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부럽: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입에 넣으며) 견뚜기도 저 사람들과 같이 운동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보다 더 재미있고, 힘이 되지 않을까?
까칠: (팔짱을 끼며)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괜히 친해졌다가 동호회라도 들어가면, 자유롭게 혼자 달릴 수 없을지도 몰라. 견뚜기는 혼자 달리는 것을 좋아해.
부럽: (눈물이 그렁 그렁한 채 기쁨이를 바라본다)
기쁨: 그건 견뚜기가 원하는 대로 두자. 지금은 혼자 달리는 것을 더 좋아해.
소심: (기쁨이를 흘끗 바라보며) 그런데, 견뚜기가 너무 몸을 대충 푼 것이 아닐까? 저 사람들 스트레칭하는 걸 봐.
기쁨: 소심아 걱정하지 마. 그래서 몸 풀리게 1km를 천천히 달려온 거잖아.
견뚜기가 두루미 화장실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 호수 맞은편을 향해 달려간다. 오른편 제1 주차장에서 산책 혹은 달리기를 하려는 인파들이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기쁨: 역시나 부지런한 사람들은 참 많아. 기특해. 견뚜기. 너도 부지런한 사람인 거야!
견뚜기 눈에 20m~30m 정도 앞에 달려가는 러너의 뒷모습이 보인다.
버럭: (뒤에서 조용히 있다가 기쁨이를 밀치며 앞에 선다) 저 앞에 저 러너를 따라잡아 보는 거야! 좀 더 빨리 달려!
소심: 갑자기 속도를 내면 금방 지치지 않을까?
기쁨: (자연스럽게 버럭이를 밀어내며) 그래! 속도를 조금 높여 유지하면서 조금씩 따라잡아 보자!
견뚜기가 다리에 힘을 줘 속도를 살짝 높인다. 앞 러너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
버럭: (주먹을 쥔 오른손을 허공에 돌리며) 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 거리가 줄어드는 게 보이잖아! 계속 이렇게 가는 거야! 달려! 달려!
앞선 러너와 간격을 조금씩 좁혀 나간 견뚜기가 곧이어 러너를 지나친다.
버럭: (두 손을 번쩍 들며) 굿! 이런 기분에 달리는 거지!!!
소심: 앞질렀으니 속도를 좀 늦추면 어떨까? 견뚜기가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
버럭: 안돼! 그러면 다시 추월당하잖아! 추월당하는 것은 딱 질색이야!
기쁨: 그래! 이 기분을 유지하면서 이 페이스로 달려보자! 이 속도로도 달릴만한 것 같아. 그러다가 거리가 벌어지면 속도를 줄여보자.
견뚜기는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달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