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35
8월 중순. 낮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웃도는 푹푹 찌는 여름이다.
입추가 지난 지 일주일, 말복도 지났건만 여전히 여름철의 뜨거운 햇빛은 좀처럼 식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태양이 넘치는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무지막지하게 뿜어내는 것 같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강렬한 위용을 과시하는 태양 옆으로 가을이 슬그머니 발을 들이밀어 넣고 있다. 확실히 입추가 지나니,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우선 일출 시간이 늦어졌다. 눈이 떠지는 시간은 비슷한데, 아직 창밖은 어두컴컴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눈을 뜨면 이미 날이 밝아와, 벌떡 일어나서 아침 운동 채비를 했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창을 보며, 베개에 고개를 묻고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다 어렵게 몸을 일으켰다.
이른 새벽, 달리기를 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면 공기가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광복절로 시작한 4일의 연휴 기간 동안 매일 아침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미지근함 속에서 시원함이 묻어있는 새벽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인정사정없이 푹푹 찌는 공기를 뚫고 나서야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꽃 봉오리가 수줍게 꽃을 피우듯, 선선한 가을의 촉감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일산호수공원에 들어서니 여전히 여름이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나 싶으면서도 가을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가을이 영영 안 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무심코 바닥을 바라보니 어느새 노란 나뭇잎들이 길가에 떨어져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푸르기만 했던 나뭇잎 사이로 노랗게 바랜 가을의 색이 듬성듬성 눈에 들어온다.
과연 가을이 오는 것일까? 아니면 날이 너무 더운 나머지 푸른 나뭇잎이 시들어버린 것일까?
나는 가을이 오는 신호이기를 기대했다.
색이 노랗게 바랜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자니, '귀뜨르르르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한 여름에도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던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요란스러운 매미 울음소리만 기억난다. 태양이 강한 체력을 뽐낼수록 더욱 악이 받쳐 울던 매미의 소리가 사라지고, 그 고요를 뚫고 귀뚜라미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을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달리기 쉽지 않은 날씨다. 헤어 밴드를 했음에도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이미 티셔츠는 흠뻑 젖었다. 머리에서 헤어밴드를 빼서 오른손안에 꽉 쥐어봤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다리가 무거워졌다. 겨우 5km를 달리기를 채우고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지친 기색 없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덥다.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바람 속의 시원함, 바랜 나뭇잎 그리고 가을을 반기는 귀뚜라미의 노랫소리가 더욱 반갑다.
그래도 가을은 오는구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