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해상케이블카 자산 정류장에서 바라본 오동도의 모습
어느덧 방파제를 지나 오동도에 들어섰다. 오동도로는 섬의 왼편에 연결되어 있었다. 쉽게 설명하면 'ㅅ'자 형타로 양 방파제가 다리, 오동도가 머리에 위치한 모양새다. 섬 오른편으로 넓은 광장이 있고 그 뒤 산에는 숲이 우거졌다. 도저히 작은 섬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했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에 고동색의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다. '이 거북선 실제 사이즈를 구현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크기가 너무 작아 보였다. 다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천천히 달리니 주변이 잘 들어왔다.
오동도 광장 끝자락에는 오른편에 식당과 카페가 있는 건물이, 왼편에는 오동도 나루터에 흰색 거북선 모양의 유람선이 정박해 있었다. 유람선이라 크기가 제법 컸다. 역시 광장의 거북선 모형은 축소된 사이즈임이 틀림없었다.
아침이지만 날이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광장을 지나자 조금씩 지치는 기분이었다. 지친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고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곧이어 오동도 나루터 너머 백색 등대로 이어지는 방파제가 나타났다. 방파제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먼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이 보였다. 그리고 배 위로 하늘에 떠있는 붉은 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해였다. 비록 일출은 못 봤지만 붉은빛을 내며 힘차게 기지개를 켜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데 입가엔 다시 바다의 짠맛이 스며들었다.
오동도를 지나 백색 등대로 향하는 방파제에 접어드니 이제 막 뜬 아침해를 볼 수 있었다.
탁! 탁! 탁! 탁!
바다 위에 떠있는 아침해와 배들을 구경하며 규칙적인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눈앞에 백색등대가 보였다. 백색 등대는 높았고 건물 디자인도 세련됐다. 백색 등대가 오동도 방파제 코스의 종점이었다.
오동도 방파제 코스의 종착지인 백색 등대.
백색 등대를 돌아 다시 오동도로 향했다. 다시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왔다. 이내 기분이 좋아져 힘든 줄 모르고 달렸다. 하지만 이미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모자를 썼지만 얼굴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왼손으로 모자를 벗고 오른손으로 얼굴에 땀을 쓸어내려 바닥에 털었다. 손이 땀으로 흥건하다. 다행히 호흡은 아직 고르다. 계속 관광 모드로 구경하면서 달리면 될 것 같았다. 관광모드가 좋은 점은 천천히 달리기도 하지만, 중간에 경치가 좋은 곳이 나오면 잠시 멈춰서 구경을 하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어, 체력 안배가 수월하다.
백색등대를 향해 올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오동도를, 더 나아가 육지를 향해 달려가는 기분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오른쪽에서 '뿌앙~'하는 우렁찬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니, 옆으로 거대한 화물선이 여수엑스포 단지 내 여수신항을 향해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며 내 옆을 지나갔다. 이 뱃고동 소리의 메아리가 바다 건너편 엑스포 전시장까지 울려 퍼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웅장한 뱃고동 소리가 마치 여수의 아침을 깨우는 자명종 알람 소리 같았다.
이어 바다 바람이 강해지더니 양 귓가에 바람이 거칠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람 소리는 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궁리하며 달렸다. 도무지 좋은 의성어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휘잉'보다는 거칠고 깃발이 바람에 연신 펄럭이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래도 결국 생각해 낸 가장 적절한 의성어는 '휘잉~ 휘잉~'이었다.
방파제를 지나 다시 오동도에 도착했다. 갑자기 오동도 왼편에 있는 숲 길이 궁금해졌다.
'숲길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등대 말고 또 어떤 볼거리가 조성되어 있을까?'
숲길로 올라가 오동도 등대까지 가볼까 하다가 원래 계획대로 광장을 가로질러 육지로 향했다. 달리기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었다. 결국 나중에 저녁에 다시 와서 오동도 등대와 숲을 구경했다. 섬 뒤편 바다 방향으로 등대와 함께 해돋이 전망대 등이 있었다. 산 오르는 길이 계단 길이라 아침에 오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동도를 지나 육지로 향하는 방파제가 나왔다. 오른쪽 오동도로를 보니 차가 없었다. 아까 오동도 방파제에 들어섰을 때 차단기가 내려와 있던 것이 기억났다. 어차피 오는 차도 없을 텐데, 이 참에 차 없는 도로를 달려보기로 했다. 정면에는 저 멀리 산 위에 있는 여수해상케이블카 자산 정류장이, 오른쪽 옆으로는 바다 건너 여수 엑스포장이 눈에 들어왔다. 앞 뒤로 아무도 없는 차로를 달리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평소엔 차들로 달릴 수 없었던 도로를 홀로 자유롭게 달리며 느껴지는 그 해방감이란! 다리에 힘을 줘 속도를 조금 올렸다.
오동도에서 오동도 입구를 향해 가는 길에는 인도가 아닌 도로를 달렸다. 이른 아침이라 차들이 없어 안전하게 달릴 수 있었다.
오전 시간이 지나서 인지 오동도로 오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났다.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그리고 러너들. 아침부터 덥고 습한 날씨임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이 더운 날씨에 달리는 나만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오동도 입구로 나와 바로 호텔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아직 더 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여수 해안가를 따라 엑스포 단지로 가보기로 했다. 오동도 방파재 입구에서 오른쪽 여수 엑스포 단지로 방향을 틀었다. 소노캄 여수 리조트를 지나 엑스포 공원 그리고 엑스포 주차장을 따라 여수신항을 지났다. 여수 베네치아 호텔&리조트에 가니 바다 맞은편으로 방금 지나왔던 백색 등대, 오동도, 이 둘을 잇는 길게 뻗은 방파제, 그리고 아침해가 보였다.
여수 베네치아 호텔&리조트에서 바라본 오동도의 모습 달리다 보니 어느새 햇살이 뜨거워졌다.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지니 몸도 빠르게 지쳐갔다. 바람도 없고 햇빛만이 쨍쨍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여수 엑스포 단지는 인적이 드물었다. 차라리 오동도 방파제가 사람이 더 많았다. 곳곳에 거대한 전시관들이 있었지만, 사람이 없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오전이라 사람이 없는 것일 거야. 오후 되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사실 여수 엑스포역까지 달리고 나서부터는 호텔까지는 걷다가 뛰다를 반복했다. 날이 더워지나 체력만큼이나 의욕도 떨어졌다. 그렇게 호텔에 도착해서 기록을 보았더니 7.7km를 달렸다. 생각보다 여수 엑스포 단지가 넓지는 않았다. 달리기 전 지도만 보면 오동도-여수엑스포 단지를 달리면 10km는 충분히 넘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날 오동도와 엑스포단지까지 달린 경로. 출처: 삼성헬스 애플리케이션
그래도 바다를 가로질러 달리는 기분은 색달랐다. 그리고 한 여름 여수의 바다 바람의 시원함과 청량한 느낌은 남은 여름 내내 생각날 것 같았다.
"다음에 여수를 오면 돌산공원을 달려볼까?"
달리기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서며 나 홀로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