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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수다 떨며 달리니 어느새 여기까지?

런린이 다이어리 82

by 견뚜기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늘 혼자 달렸다.


'누군가와 함께 달린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영 편치 않았다.


우선 누군가와 함께 달리려면 시간을 맞춰야 한다. 나는 유난스러운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5시면 달리러 나선다. 그런데 함께 뛰려면 달리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 아마 평소 달리는 시간보다 늦게 달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둘째, 내 마음 가는 데로 달릴 수 없다. 혼자 달리면 빨리 달리거나 천천히 달려도 된다. 그리고 문뜩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길을 가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와 달리려면 서로 대화를 하며 보조를 맞춰야 한다. 특히 족저근막염 이전에는 돌이켜보면 정말 '세상 진지한 런린이'였다. 늘 10km/h 이상의 속도로 온 힘을 다 해 달렸다. 달리고 나면 나도 힘들 정도로 달렸는데 함께 달리면 왠지 서로 방해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동호회나 러닝크루에 관심이 없었다. 주말 이른 아침 일산호수공원에 나가면 몇몇 러닝 동호회를 볼 수 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심 부러우면서도 왠지 앞서 언급한 문제들 때문에 가입하기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I형 인간이라 어딘가 속해 달린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달리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러너들이었다. '나는 호흡 고르기도 벅찬데, 어떻게 쉬지 않고 말을 하면서 달릴 수 있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항상 넘사벽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랬는데, 최근에 러닝 메이트와 달리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나의 '넘버 1' 러닝 메이트는 바로 와이프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최근 나한테 이끌려 억지로 달리기 길에 나서고 있다. 평소 달리기를 전혀 안 해봤기 때문에 와이프와 달릴 때는 무리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와이프는 걷고, 나는 옆에서 아주 천천히 달렸다.


'천천히 달리니 대화가 가능했다!'


와이프는 평소보다 살짝 빠르게 걷고 나는 평소보다 아주 천천히 달리면서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렇게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면 어느새 이마와 등에 땀이 찬다. 천천히 오래 달렸더니 땀이 나고 운동 효과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와이프가 체력이 붙었는지 몇 번 같이 달리더니 조금씩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500m, 1km 그리고 2km까지 느리지만 쉬지 않고 달렸다. 왠지 와이프 체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


러닝메이트가 있으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 좋다.

나의 두 번째 러닝 메이트는 나의 운동 멘토인 '모임(Moim) 필라테스'의 LS원장님이다. 12월이면 정든 일산을 떠나 강동구에 새로운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일산 떠나기 LS 원장님이 큰 마음(?)을 먹고 같이 일산호수공원을 함께 달려줬다. 처음에는 걱정이 됐다. 최근에 천천히 달리면서 페이스가 많이 느려졌다. 일산호수공원 1바퀴(4.71km)를 예전에는 29분대에 달렸다면 최근에는 39분대에 달리고 있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의 소유자인 LS 원장님은 1바퀴를 가볍게 30분 안에 달린다고 들었다. 내가 과연 그 페이스를 따라잡아 맞출 수 있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최근 달리기 체력이 붙으면서 속도를 다시 조금 높여볼까 욕심이 생겼다. 시험 삼아 속도를 높이는데 예전처럼 지속적으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기 쉽지 않았다. 대체 예전에는 어떻게 10km/h 이상 속도를 달렸던 걸까? 그런데 LS 원장님이랑 함께 달리면 억지로라도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그래도 일단 '요즘 천천히 달린다'라고 엄살을 떨면서 수차례 밑밥을 깔았다. 그런데 막상 같이 달리는 날이 되니 LS 원장님이 내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달려줬다. 매번 필라테스 센터에서 수업하면서 보다가, 호수공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리니 달리기가 한결 쉬웠다. 몸도 덜 지치고,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다.

일산 모임필라테스 LS 원장님를 러닝메이트로 호수공원 1바퀴를 완주했다.

그리고 역시 LS 원장님은 내 운동 멘토였다. 이번에 달리면서도 여러 가지 팁을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팁은 몸이 힘들다고 터덜 터덜 달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4km 넘어가면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지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자세를 풀고 터덜 터덜 달리게 된다. 그럴 때는 '차라리 속도를 더 늦추더라도 발굴림 등 자세를 제대로 만들어 달리라'는 코칭을 받았다. LS 원장님의 코칭에 따라 속도를 더 늦추고 자세를 더 정확하게 컨트롤하고 달리니 다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힘들다고 터덜 터덜 달리면 왠지 다리가 갈수록 무겁고 더 지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속도를 더 늦춰 호흡을 고르며 다리에 힘을 줘 달리니 오히려 달리기 더 편해졌다.


두 번째는 속도를 높이고 싶을 때는 필라테스 수업을 할 때처럼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갈비뼈를 안으로 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해보니 힘을 짜내기가 편했다. 예전이라면 조금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다리에 힘을 더 줬다면,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갈비뼈를 조이니 저절로 속도가 빨라졌다. 속도를 다시 높이는 것이 최근의 고민거리였는데 방법을 배웠다.


또 다른 팁은 LS 원장님이 센터에서 다이어트 프로그램 운영을 하면서 종종 회원들과 호수공원을 달리는데, 그때 숫자로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춰 달린다고 한다. 그런데 '숫자를 세는 박자를 조금씩 빠르게 하면 그에 맞춰 속도도 조금씩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냥 무작정 다리에 힘을 줘 속도를 올리는 것보다 그 방법이 리듬감을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팔 동작. LS 원장님이 평소 수업 중 늘 강조하던 것이었다. LS 원장님은 보수 위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걷는 동작을 워밍업으로 시킨다. 그럴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팔 스윙이었다. 팔을 좀 더 크게 휘두르라는 주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달리기를 하면서도 '항상 팔 스윙을 크게 하라'는 LS 원장님의 코칭이 떠올랐다. 특히 지쳐갈 때 팔 스윙을 크게 하면 힘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퍼트다. 수다를 떨면서, 가을 낙엽을 구경하면서 어느새 1바퀴를 다 돌았을 때, 마지막 스퍼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한 100m~200m를 전력으로 달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전력질주를 했다. 나는 괜히 발에 또 무리가 갈까 봐 70% 힘으로 달렸는데 달릴만 했다. 그런데 LS 원장님은 진짜 빨랐다. 전력으로 달려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괜히 체대가 아니었다.

LS 원장님의 달리기 팁! 마지막 전력질주! 달려!

이날 LS 원장님에게 달리기 꿀 팁을 배웠다. 역시 '나의 스승님!'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것. 달리기의 지루함을 잊고 서로 격려하며 달리며 오히려 달리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서로 달리는 사진을 찍어줄 수 있었다. 혼자 달리면 풍경 또는 가로등에 비친 내 그림자만 찍었는데, 사진으로 내 달리는 모습을 확인하니 좋았다.


러닝메이트와 함께 달리는 재미를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이사 가면 와이프를 또 꼬셔봐야겠다. 이번엔 뭘로 꼬실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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