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항암제와 새로운 여정
오늘은 아내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날이다. 오랜 시간 아내의 몸을 불편하게 했던 여러 개의 주사기들이 모두 제거되었고, 덕분에 아내는 오랜만에 조금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오늘은 바로 아내가 생애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길이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아침이 밝자마자 병원에서는 아내의 항암치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문 간호사가 찾아와 다발골수종이라는 병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앞으로 아내가 어떤 항암치료를 받게 될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병원 약사도 이어서 항암 치료에 사용될 약들의 효능과 부작용, 그리고 복용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약사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한 싸움의 무게를 실감했다. 항암치료가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싸움의 길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길고 어두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치료가 시작되기 전, 나는 병원 1층 원무과로 내려가 중증 환자 등록을 신청했다. 암환자 산정특례를 적용받아 치료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었다. 몇 달 전 납부했던 심장초음파 검사 비용도 환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정 절차를 처리하는 동안, 나는 마음 한구석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과정이 아내가 공식적으로 암환자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절차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제 암과 싸우는 삶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오후가 되자 처형이 병실에 도착했다. 처형이 아내를 돌보겠다고 나서 주어 나는 잠시 일을 보기 위해 병실을 나왔다.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병원비 청구 절차를 문의하고, 진단서와 골수검사 결과지를 신청하기 위해 간호실을 찾았다. 외부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내 마음은 계속 병실에 있는 아내에게로 향했다. 아내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을 생각하며,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싶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아내의 항암제가 준비되었다. 첫 번째 항암제는 덱사메타손이라는 스테로이드제였다. 약사는 아내가 한 달에 4일 동안 이 약을 하루에 20알씩 복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무게가 고스란히 내 가슴으로 다가왔다. 스테로이드가 암환자들에게 항암제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생소했고, 동시에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이 약이 아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그 약을 통해 우리가 마주할 새로운 변화들이 무엇일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서며 나는 다시금 아내의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도를 걸어 나오는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길, 불안과 두려움이 가슴속에서 교차했다. 과연 우리는 이 힘든 길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아내는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때로는 너무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불안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그것은 아내의 곁을 지키며 묵묵히 함께 버텨내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같이 견디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 두려움과 불안감을 아내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보여줄 용기와 끊임없는 지지였다.
오늘의 무거운 시작이 언젠가는 아내의 승리로 이어지리라는 희망을 붙들고 나는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긴 터널 끝에 언젠가 빛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그 빛이 아내의 건강과 회복을 비추리라는 간절한 바람을 놓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둡고 긴 싸움을 시작했지만, 그 길 끝에 우리가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이 싸움을 시작한다. 힘든 순간에도 서로를 붙잡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업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고난이 언젠가는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리라. 아내와 함께하는 이 길이 비록 험난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이 아내의 건강과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