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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 Feb 02. 2021

날개를 꺾는 말

할머니가 이사를 하면서 버리려 했던 오래된 고전서들을 엄마가 내방 책장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친구도 많지 않았고 부모님도 맞벌이를 하시던 터라 할 일이 없을 때는 자연스럽게 독서를 하게 되었다. 


너무 오래된 책 들이라 글이 세로로 쓰여 있어 읽기가 힘들었지만, 집에 있던 쇠젓가락으로 읽던 줄을 표시 해 가며 한줄한줄 읽어 내려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테스>, <폭풍의 언덕> 등 명작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며 주변에서 또래 친구들보다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한 번은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한 글짓기 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담임선생님께서 수상자는 그해 열리는 백일장에 나갈 수 있으니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하셨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상장을 들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모님이 하시는 하청공장으로 달려갔다. 수줍게 내민 내 상장을 받아 든 아버지는 한번 쓱 보시고는 재단 다이에 내 상장을 툭 던지며 한마디 하셨다. 


" 어디서 거짓말하는 것만 배워가지고, 이런 상을 받아왔냐?"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워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당연히 칭찬받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의 반응은 너무나 차갑고 잔인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고 재단 다이 위에 던져진 상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상을 받아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날의 기억은 내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날의 아버지를 미워했다. 사랑스러운 딸이 자랑하겠다고 들고 온 상장을 보고 어떤 부모가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어떤 좋은 상황도 좋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남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형욱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식용견으로 평생을 뜬장에서 살아온 개를 입양한 가정의 솔루션을 방영해 준 적이 있다. 견주가 이야기한 문제는 입양된 강아지가 당연히 좋아해야 할 산책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강아지의 행동을 관찰한 강형욱이 견주에게 해 준말은 정말 인상 깊었다 


 " 이 아이는 아주 당연한 것도 모르는 거예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거든요."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잘하고, 좋은 것도 먹어 본 사람만 안다고, 아버지는 자라오면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였기 때문에 내게 해 줄 수 있었던 말은 저것이 전부였을겄이다. 그리고 내게 했던 그 냉담했던 말이, 그가 할 수 있던 가장 큰 칭찬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내게 저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말에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고, 되려 그들을 가엾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갖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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