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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나 Feb 26. 2021

온 세상이 무너지던 날

어릴 적, 동생과 뛰어놀다 그대로 방바닥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밖이 어둑어둑해지고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나는 잠에서 깼지만 그대로 자는 척을 했다. 아버지는 나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딸을 어루만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두려웠으나 자는 척해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전까지, 나는 그런 일을 계속 겪어야 했다. 반항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나를 때기리는 했지만 만지진 않았다. 나는 늘 밤에 문을 잠그고 잤고 만성적인 불안함에 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본인조차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가족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결혼 전 내가 처음 그 이야기를 부모님 앞에서 꺼냈을 때 아버지는 오히려 당당하게 신고 할 테면 신고하라고 했고, 엄마는 옆에서 울기만 했다. 


내가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되려 당당한 아버지의 태도보다, 상황을 무마하려던 엄마의 행동이었다. 나는 거기서 더 큰 배신감과 좌절을 느꼈고, 한번 터져 나온 나의 울분은 겆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와 나를 괴롭혔다, 나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괴로웠고 그때 다니고 있던 회사마저 그만두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문사에 글을 보냈다. 아동심리 상담가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님의 화해라는 코너에 상담 글을 보냈고, 내 글은 가명으로 기사에 실려나갔다. 박사님도 당분간 내가 회복될 때까지 가족과 거리를 두라고 말씀해 주셨고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셨다. 


기사의 댓글들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친오빠, 사촌오빠, 삼촌에게서 그런 일을 당했다며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되려 나를 욕하는 글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삽입은 하지 않았으니 이해하고 살아라."라는 댓글을 달았고, 그 댓글 밑에는 또 수십 개의 언쟁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모든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어 보았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나를 응원하고 위로해 주는 댓글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댓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었다.


그때는 가명으로 글을 썼지만, 이곳에 이 야기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처음 "내가 버텨온 시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자 결심했을 때부터 이 이야기를 고백해야겠다 다짐했지만, 늘 그 주변만 맴맴 돌아왔고 드디어 용기를 내어 본다.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책을 쓴 김영서 작가님을 보고 나서 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20살 때까지 목사인 아버지에게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며 임신과 낙태를 경험했다. 그들의 가족도 그녀를 지켜 주지 못했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서도 그녀는 살아남아 지금은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말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공 폐단"에서 활동하며 상처 입은 치유자로, 그녀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위로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남편과, 친구에게 나의 이야기를 고백해도 될지에 대해 물었을 때, 오히려 내가 더 상처 받을 것에 대해 더 걱정해 주었다. 


알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성피해자들에게 되려 수치심을 심어주는 사회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한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마 어디서 부끄러운지 모르고 그런 얘기를 하냐며 나를 욕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영서 작가님은 본인의 아픔을 한낮 개인의 불행한 기억으로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잘 살아온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성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 폭력이라는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글을 쓸 뿐 해결방법이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체 끝은 맺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을 약자, 피해자라는 프래임에 가둬두고 그런 사람은 영영 어둡고 우울하게 살 것처럼 끝을 맺는다. 그 이후 그들이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 생존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책의 서두에 추천글을 써주신 한국성폭력 상담소의 이미경 이사님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나약하고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치유를 향한 용기와 지혜, 그리고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면서 누구보다 질긴 생명력과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는 "생존자"라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바닥까지 떨어졌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자존감을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상처를 주는 것도 치유해 주는 것도 모두 사람이었고, 그렇다면 나는 상처를 주는 쪽이 아니라 치유해 주는 쪽에 서자고 다짐했다.


나는 담담히 내 인생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담대하게 살아갈 나의 인생과 김영서 작가님의 삶, 그리고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어느 생존자들의 삶을 응원한다. 



힘과 용기의 차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힘이

방어하는 자세를 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져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의문을 갖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전체의 뜻에 따르기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힘이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대를 견디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홀로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데이비드 그리피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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