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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너는 산이 어떠니?

by 세상과 마주하기
IMG_3181.jpg 2020 1 5 딸과의 마지막 산행, 금정산 트랙킹 Canon 6D


딸, 너는 산을 싫어하지.

뭐 왜 싫어하는 지는 네가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으니 알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빠는 너랑 같이 산에 갔으면 하는게 꿈이다. 억지로라도 말이야.

이유는... 아마 네가 아빠 나이쯤 되면 알게 되려나?


이제 너도 통가리노 트랙킹을 완주했으니 최소 7시간정도의 산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7시간 20km.


의미를 두자면 의미가 있고, 의미가 없다면 없는 숫자지. 하지만 너랑 7시간을 걸으면서 아빠는 참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중에 네가 들은 이야기가 얼마인지는 알수는 없다만 그래도 아빠는 마음속에 담아논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왔지.


네가 트랙킹을 하며 이런 말을 하더구나

‘아빠 난 평지가 좋아’

그리고 아빠는

‘딸, 세상 어디에도 평지는 없어, 너가 평지를 만들 뿐이야’


그래..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어느 순간에도 평지는 없단다. 약간의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 아니면 끝도 없을 것 같은 언덕과 끝도 없을 것 같은 내리막만 있을 뿐이지.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그리고 너의 시선에 따라 절벽이 될수도 평지가 될수도 있거든.


딸, 너도 이번 트랙킹을 걸으면서 힘들것 같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도 없이 보았지. 그래도 이번 트랙킹은 끝을 알수 있는 여행이었잖니..


그런데 삶은 누구에게도 그 끝을 알려주지 않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힘들다고 느끼는 거거든. 항상 즐거울 수도 없도 항상 슬프지도 않지. 슬픈 일들이 수도 없이 이어져도 순간 순간 즐거운 일들이 있을 수도 있고, 즐거운 일들 사이에도 생각치도 않는 어려운 일이 생길수도 있지..


그 순간 아빠랑 같이 같던 산을 생각하기 바란다. 오르기도 하지만 내려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지만 올라가기도 하는 산을 말이야.


산은 혼자 갈 수도 있고, 동행이 있을 수도 있단다. 혼자가면 혼자가는 재미에, 친구들과 같이 가면 수다떠는 재미에 산행은 즐겁단다. 혼자이면 온전히 나만을 위해 생각하고, 느끼고, 말할 수 있단다. 혹시 운이 좋으면 혼자 길을 가다가도 낯선 말벗을 사귈수도 있고 말이야. 또 여럿이 친구들과 같이 가면 그 어려운 산행이 수다떠는 재미에, 그리고 이 힘든 길을 같이 가고 있는 동행이 있다는 안도감에 훨씬 덜 힘들게 길을 갈 수 있지.


딸, 산행은 인생여정과 같은 것 같다.

그래서 아빠가 너에게 배워주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 네가 너무 싫어하는 일이어서 자주 못 가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가려고 한다. 시간이 흘려 혹시 아빠 마음이 이해가 되거든 봄,여름, 가을, 겨울 바람이 부는 산에서 멀리 바라보기 바란다. 걸어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면 힘들었던 산길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야.



이전에도 적었는데, 혹시 어려운 일이 마치 네가 감당해 낼 것 같이 않은 어려운 일이 생겨서 힘들거든 이렇게 생각해 보렴

‘ 얼마나 즐겁고, 좋은 일이 내일 나를 맞이할까?


2015.1.24일

무사히 통가리오 트레일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후로도 나는 딸과 조금 긴 산행을 몇번 더 다녔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고 그 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같이 등산을 다니지는 않는다. 조금더 시간이 흘러 그가 그의 아이와 함께 등산을 가게 될 날이 올거라 믿고 있다.


**2020년 1월. 고등학교 졸업하는 그해 딸과의 마지막 산행이다. 이 마지막 산행은 부산 범어사에서 시작해서 고당봉을 찍고 북문, 남문을 지나 초읍 어린이 대공원까지 대략 17km, 7시간 정도 걸렸다. 나와 딸의 산행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였다. 딸이 중학교 이후 나와 협상을 할때 나는 꼭 장거리 산행을 조건으로 제시했고 그는 그 조건을 수락하는 것으로 협상이 끝났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딸과의 사춘기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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