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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너는 정말 멋진 아이다.

by 세상과 마주하기

딸,

무사히 19.5km의 길고 긴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을 멋지게 완주한 너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넌 멋진 아이야’


2년 전 지리산 둘레길 13km를 완주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너는 무사히 그리고 멋지게 이 일을 마무리했구나. 사실 아빠도 하루에 20km를 걸어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두려웠단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어렵다고 하기도 하고,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고도 하고...


아빠 친구들의 앞선 도전에 그래도 가보자 했지만 아빠 혼자가 아닌, 엄마와 그리고 아빠 생각에 체력이 바닥일 것으로 생각한 너, 이렇게 3명이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빠 짐을 줄이고 우리 가족의 기본적인 도구, 음식만 가지고 가기로 했지... 아빠가 마지막에 카메라를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아마도 철인 3종과 아빠 친구들과의 등산경험이 없었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이곳이라 하더라도 시작도 안 해 보았을 거야. 그래도 아빠 자신, 엄마, 너를 믿고 하기로 했지..


새벽 4시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알람시계에 맞추어서 눈이 그냥 떠진다. 시원한 새벽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냥 등산이 아닌 아빠의 첫 20km 산행이라 많이 긴장했나 보다. 너를 깨우고 세수하고 어젯밤 챙겨놓은 배낭을 한번 더 보고.


새벽 4시 50분

이제 4시 50분 tongarino expedition에 미리 예약해 두었던 픽업에 맞추어 캠핑장 입구에 나갔다. 가을 등산옷을 입었음에도 아직도 춥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고 산이 이렇게 추우면 어떻게 하지, 힘들지 않을까, 버스가 안 오면 그 핑계로 가지 말까. 뭐 이런 여러 가지 상념이 든다. 20분 픽업 전에 나와 있으라고 했는데 5시 30분쯤 우리를 태울 승용차가 온다. 그리고 큰 길가에 우리를 던져놓고는 조금 있으면 버스가 올 거라고 하고 휑하니 사라져 간다. 원래 숙소가 타우포 시내였으면 호텔 앞에서 버스가 픽업을 한다고 하는데...


아침 7시 10분

1시간 반을 달려 7시 10분쯤 tongariro 트랙킹 시작점에 와 있다. 와 춥다. 춥다가 아니고 그냥 겨울 날씨다. 같은 버스에 타고 온 젊은이들은 반바지에 반티다... 이런 춥지도 않나? 화장실이 몇 안된다고 하기에 얼른 가서 일 보고 출발..


출발한 후 얼마되지 않아 땀이 흐르면서 추위도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첫 코스는 무난하다. 약간의 숨가품 정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귀가 아프다고 한다. 이걸 어쩌나. 지금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무작정 그냥 가기도 어렵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진통제를 주고 관찰해 보기로 하고 다시 Go~. 조금 덜 아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계속 아프다고 한다. 음... 정말 아픈 것일까 아니면 조금 과하게 표현하는 것일까...


귀가 아프다고 큰 일은 안 일어날 것 같아서 아이와 Big Deal을 하기로 했다. 참고 견디고 완주하면 핸드폰 바꾸어주기로...(이건 뒤에 후회할 일이었다. 너는 아마도 과하게 통증을 표현한 것 같았으니까 ㅠㅠ). 통증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활화산인 Mt. Ngauruhoe 정상이 보이고 이제 올라가야 할 언덕이 보인다. 아이고.. 그리고 1시간쯤 걸으니 2번째 화장실도 보인다. 얼른 일 보고..(화장실이 보일 때마다 일을 처리해야 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이제 진짜 등산인가 보다. 안내서에도 hard ascent라고 되어있다. 힘들게 보인다. 긴팔 재킷도 벗어버리고 올라간다. 저기만 올라가면 힘든 것은 끝나려나... 안내서를 보니 지금 2번은 hard, 4번은 difficult ascent라고 되어 있다. hard와 difficult가 뭐가 다른 거야.. 뭐가 더 힘들다는 거지??? 어쨌든 다시 보기 힘든 활화산 구역을 걸었다. 화산의 색깔이 참 이쁘다. 이 구역을 지나니 평탄한 지역이 나온다. 멀리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이 보이고 Red crater ridge라는 곳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보인다. 바로 이 지역이 difficult ascent인데 정말 어렵다. 작은 자갈과 모래로 올라가기가 어렵다. 음... 이제 hard와 difficult가 구분이 된다. 힘껏 오르니 아이고 아래에 에메랄드 호수가 보이기는 하는데 내려갈 일이 큰일이다. easy descent 가 아니고 difficult다 거의 45도 이상의 경사면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가야 한다. 15분이라는데 무슨.... 멀리 보이는 호수가 정말 이쁘다... 어렵게 내려와 보니 여기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활화산 지대다... 뭐 혹시라도 사이렌이 울리면 빨리 이 구역을 벗어나란다.... 화산이 폭발한다고... 이런...~~


이제 힘든 코스는 모두 지나왔다. 시계를 보니 안내서에 적혀있는 시간을 잘 맞추어서 온 것 같다. 4시 반까지 버스 타는 곳까지 오라고 했는데 이제 10시 반 정도이니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 있다. 아이와 집사람도 별로 힘들게 보이지는 않는다. 에메랄드 호숫가에서 점심으로 준비해 온 햇반에 김을 싸서 한 입~~~ 와 맛있다. 샌드위치를 안 사온 게 정말 다행이다. 갑자기 힘이 다시 생긴다. 잠깐의 점심시간 후 이제 하산길이다. blue lake를 지나니 또 활화산 Te Mari 가 보인다. 여기도 사이렌이 울리면 얼른 이 지역을 벗어나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뒤로하고 꼬불꼬불한 길이 보인다. 아.. 이제 정말 집에 가는 거야... 아이는 아직 기운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ketetahi 대피소를 지나 아이는 휑하니 혼자 가버린다. 집사람과 오븟하니 하산길 동행중... 발목이 아파 빨리 걷지 못하니 집사람은 답답한 모양이다. 아이는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이걱정, 집사람 걱정... 나도 잠시 당황하다가 그냥 집사람과 같이 천천히 하산하기 하고 걸어간다.


2시 30분

7시간 동안의 산행이 끝났다. 아이는 20분 전에 와서 마지막 ketetahi 주차장에서 느긋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 쉼터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로하다는 느낌보다는 평온한 느낌이 더 어울린다. 약간의 웃음 띤 얼굴로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 하이파이프를 하며 서로에게 승리를 축하해 주는 사람, 뭔지 모르지만 웃으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이들...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 딸 수고했다.’


딸, 이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너와 같이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번 등산으로 아빠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단다. 너와 같이 밀포드 트랙킹이나 스페인 산티아고를 같이 가는 꿈.. 이전에도 꾸긴 했는데 힘든 여정이라 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확신이 든다. 가면 즐기면서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너와의 deal은 항상 아빠가 손해를 보는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여담이지만 다음에는 그냥 가야겠다. 이제는 너의 협상력도 아빠를 능가하는 것 같아서 다시는 협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쨌든 딸! 수고했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너는 멋진 아이다.


2015.1.22일 금요일 아침

Rotorua, NZ의 호수 앞 숙소에서



2015 1 21 뉴질랜드 북섬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 Canon Rebel T1i



2015 1 21 뉴질랜드 북섬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 Canon Rebel T1i



2015 1 21 뉴질랜드 북섬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 Canon Rebel T1i



2015 1 21 뉴질랜드 북섬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 Canon Rebel T1i



2015 1 21 뉴질랜드 북섬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 Canon Rebel T1i




2015 1 21 뉴질랜드 북섬 tongariro alpine crossing 트랙킹. Canon Rebel T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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