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점심을 먹고 나서 오락실에 들러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예쁜 조형물로 꾸며 놓은 정원에서 맑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겨울이었지만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원 한 편에서 벤치를 발견한 나정이 말했다.
“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 나이가 깡패긴 한가 보다. 넌 안 힘드니?”
“아니에요. 저도 힘들어요.”
소영이 백팩 옆구리 주머니에 찔러둔 생수병을 건네자 나정이 받아 마신 뒤 돌려주었다. 소영 역시 그대로 물을 마신 다음 백팩을 벤치 위에 내려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오는 것 같던데, 왜 안 받아?”
“아, 친구… 친구인데요... 받으면 전화가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메시지를 보냈어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정을 힐끗 보며 소영이 덧붙였다.
“전화받기 귀찮기도 했고요.”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앉아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소영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긴 하지만, 엄마랑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아서 지나치게 자주 싸워 고민이에요. 저도 성인이 되면 언니처럼 독립하고 싶어요.”
진지하게 소영의 고민을 듣던 나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도 똑같았어. 너만 할 때 엄마랑 많이 싸웠고, 성인이 되면 독립할 거라고 몇 번을 다짐했었는지 몰라. 실제로 지금은 독립하기도 했고.”
머릿속에서 드는 생각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 뒤 나정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독립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 막말로 연을 끊고 살 게 아닌 이상 어차피 또 부딪히게 돼있어. 그러니까 독립이 엄마와의 갈등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거야.”
“엄마랑은 말이 안 통해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엄마도 이야기를 잘 들어주실 거야. 네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답답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나이가 어리면 생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더라고. 어른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우습기는 하지만 말이야.”
소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웃고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해결책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소영은 따뜻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탄 두 사람이 놀이공원을 구경하며 좀 더 걷자 멀리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갖가지 전구며 전등이 주변을 반짝이는 빛으로 채우기 시작할 때쯤 두 사람은 놀이공원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기온이 떨어져 하얀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피곤했던 두 사람은 아침과 달리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좌석에 앉았다. 곧 나정이 자연스럽게 소영의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 그런 나정의 모습을 보며 소영은 피식 웃었지만, 이내 애써 감춰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소영은 그 불안감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