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집 근처에 도착하니 경찰차가 파란 대문 앞에 경광등을 켠 채 서 있었다. 나정은 그 옆에 경찰을 비롯한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다. 그런데 사람들 속에 있던 한 여성이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장소영! 너 뭐 하는 거야!”
나정은 놀란 중에도 그 여성이 소영의 어머니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여성이 소영에게 다가가더니 말릴 새도 없이 철썩하고 뺨을 후려쳤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경찰이 황망한 모습으로 소영에게 다가갔다. 나정 역시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여성이 한 손은 허리춤에 얹고 한 손은 나정을 향해 삿대질하며 경찰에게 말했다.
“이 년 좀 조사해 보세요. 아주 웃기는 년이에요. 지가 뭔데 남의 집 귀한 딸을 꼬드겨서 학원까지 빼먹게 해? 이거 유괴야, 유괴. 알아? 뭐해요? 경찰 아저씨들. 빨리 잡아가지 않고.”
경찰이 그녀를 말린 뒤 나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정은 자신의 짐작대로 앞에서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여성이 소영의 어머니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있었다. 소영은 지금까지 학원을 빠지고 나정의 집에 놀러 온 것이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소영의 어머니가 소영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집 열쇠가 없다기에 잠깐 있게 했던 거예요. 이웃집 애를 들여보낸 게 죄예요?”
나정이 억울하다며 항변하지만 소영의 어머니는 나정이 철없는 자기 딸을 계획적으로 꼬드겼고, 저 세상물정 모르는 것에게 어떤 못된 짓을 하려고 했는지 의심스럽다며 계속 나정을 몰아붙였다. 나정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억울함에서 분노로 점차 변해갔다. 그리고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나정이 외쳤다.
“내가 득 볼 게 뭐가 있다고 쟤를 데려가요! 오늘도, 어? 하루종일 고생하고 돈만 쓰다 왔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 아줌마가 말이면 단 줄 알아?”
말을 마치자마자 아차 싶었던 나정이 반사적으로 소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소영도 계속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친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흐를 때 소영은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파란 대문을 향해 잰걸음으로 걸었다. 나정은 입을 반쯤 벌리고는 멀어져 가는 소영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나정에게 아직 소란을 피우고 있는 소영의 어머니와 그녀를 말리는 경찰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