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혹시 언니랑 함께 나가는 걸 누가 보면 곤란해질 것 같아요. 우리 엄마 알죠? 따로 나가서 XX역 앞에서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나정과 소영은 서로의 사는 곳이 코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XX역 앞에서 만났다.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놀이공원 앞 지하철 역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거리였다. 나정이 화사한 색 원피스 위에 코트를 입은 소영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자신의 옷차림을 보라는 듯 양팔을 펼쳤다. 나정은 청바지에 후드티, 그리고 그 위에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예쁘게 하고 나왔네. 난 이렇게 대충 입고 나왔는데.”
“괜찮아요.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예요.”
“이것 봐라? 어쨌든 대충 입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네?”
나정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소영이 웃으며 나정의 팔에 팔짱을 끼듯 매달렸다. 곧 도착한 지하철에 탄 두 사람은 문 앞 기둥형 손잡이 옆에 나란히 섰다. 웃고 떠드는 사이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방송이 나오자 두 사람은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며 즐거워했다.
지하철에서 내리기 직전, 소영이 지하철 역에 도착하자마자 놀이공원 입구를 향해 빨리 달려가야 한다고 말하자 나정이 이유를 물었다.
“얼마 전 새로 개장한 혜성익스프레스는 예약이 안 돼서 빨리 달려가 줄을 서야 금방 탈 수 있거든요.”
처음 듣는 이름의 놀이기구였지만 나정은 소영의 말에 따라 열심히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나정은 몇 발자국 앞에서 달리는 소영의 뒷모습을 보며 10년만 젊었다면 나도 저렇게 달렸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혜성익스프레스에 도착하여 헉헉대며 숨을 고른 뒤 대기열을 보니, 그렇게 달렸음에도 자신들보다 빨리 줄을 선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소영의 말대로 사람이 많지 않아 금방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탑승을 기다리며 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달려와 차례로 줄을 섰다. 금세 길게 늘어진 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영은 보란 듯 어깨를 으쓱 올렸다.
혜성익스프레스는 신나는 놀이기구였다. 과격한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점도 닮은 두 사람은 놀이기구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온 보람이 있다며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고는 소영의 안내에 따라 미리 예약한 놀이기구 두 개 정도를 더 타고나니 공원 안에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길을 걸으며 놀이공원 어플을 확인하던 소영은 이제 모든 놀이기구의 줄이 모두 길어졌다며 아쉬워했다. 나정이 그런 소영을 이끌고 햄버거를 주로 판매하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와 말했다.
“내가 쏠 거니까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골라.”
소영이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며 키오스크에서 가장 저렴한 단품메뉴 햄버거를 골랐다. 그러자 나정은 괜찮다는 소영의 만류를 뿌리치고 햄버거를 세트로 변경한 다음 치킨 몇 조각을 추가했다. 카드를 꺼내 리더기에 꽂는 나정의 옆에서 소영이 읊조리듯 말했다.
“진짜 괜찮은데. 다 못 먹는데...”
나정은 그런 소영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산을 끝냈다. 잠시 후 주문한 메뉴가 나오자 자신이 고른 단품메뉴 하나만 손에 들고 눈에 띄게 천천히 먹고 있는 소영에게 말했다.
“배고픈 거 다 아니까 얼른 먹고 치킨도 먹어. 왜 그렇게 눈치를 봐.”
그 말에 하나 둘 치킨을 가져가 뜯어먹는 소영을 보며, 나정은 햄버거 하나만 시켰으면 어쩔 뻔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소영은 입가에 묻어 있는 튀김가루도 눈치채지 못한 채 소리 내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