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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버엔딩 Jul 21. 2024

길어진 인생, 길어진 이야기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한 몸이었던 시간 때 문일까.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각별하다. 아이를 향한 무한한 수고와 사랑 에도 부모는 그저 기쁨으로 헌신한다. 


연년생 두 남매를 키우면서 받은 첫 번째 충격은 아이들이 중학생이었을 때이다. 아이들과의 대화가 이전 같지 않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달라졌는데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당시 많은 아 이돌 그룹이 인기를 누리던 때였다. 아이돌 그룹도 많은 데다 각 아이돌 그룹의 구성 멤버들 도 많아서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보면 어른인 내 눈에는 떼거지로 몰려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둘째 아이는 수퍼주니어의 김희철을 좋아했다. 유별난 팬은 아니었지만 팬으로서의 관심 과 열정이 있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수다가 많은 둘째 아이는 김희철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들이 내가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다음번에 이야기할 때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이 들통나고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둘째는 더 이상 이 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엄만 얘기해도 모르잖아. 저번에도 얘기해줬는데 기억 못하잖아.'


둘째의 이유를 듣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워킹맘이지만 아이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소통이 이전과 달리 원활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벌써 소통에 문 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소위 ’사춘기‘에 접 어들었다. 사춘기 자녀들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야 함을 깨달았다. 


당시에 어디 상담할 데도 별로 없었기에 내 나름대로 고민 끝에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까지는 ’아이‘에게만 집중했고 ’아이‘만 케어하면 되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대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수퍼주니어 의 예만 보더라도 멤버만 열 명이나 되었다. 내 관심이 아니어서일까. 관심만으로는 아이와 소통할 정도가 되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공부(?)를 했다. 적어도 아이들이 팬심을 갖고 있는 아이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활동에 추적하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 이돌 그룹만 따로 추리고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시험공부 하듯 외웠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더 크로스‘ 듀엣이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을 때 CD를 사 주었더니 첫째 아이가 놀 라워했던 경험은 내게도 뿌듯한 감정이 남아있고 지금도 그때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나는 이 태도를 견지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과 소통을 지속할 수 있었 다. 하지만 두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또 다른 뭔가가 필요함을 느꼈다. 이전 태 도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주변 지인들과 코칭에서 만나는 고객들을 통해서도 성인 자녀와의 관계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경험과 주변의 갈등 사례를 통해서 한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성인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녀보다는 부모가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 자녀는 사춘기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성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녀가 처한 환경은 부모 세대가 성인이 될 때와 많이 다르다. 삶의 여러 양상도 달라졌고,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변화의 속도는 가히 짐작할 수 없 을 정도로 빠르다. 부모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고, 자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부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자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이런 불일치는 소통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부모 자신의 노후 문제이다. 자녀가 성인이 된 부모는 이제 노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 자신에 대한 케어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로우대증이 나오는 65세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몸 여기저기에서 나 좀 케어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리 부모가 그랬듯이 그것을 자녀에 게 떠 넘기는 것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성인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 려면 자녀에게 무엇을 해 주기에 앞서 부모 자신이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건강하게 부모 자신 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녀에게만 향했던 관심과 에너지를 분배해서 부모 자신에게도 돌 려야 하는 충분한 이유이다. 부모 자신의 노년 인생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성인 자녀에 대한 고민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부모 자신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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