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르던 바보에서 업그레이드 된.
첫째 아이가 2학년이 되던 해에 팬데믹이 전세계를 덮쳤다. 우리는 메르스때와 같이 잠시 스쳐갈 줄 알았는데, 코로나는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도 못가고, 유치원도 못가고 온종일 집에서 셋이 지냈다. TV도 없는 아이들은 어르신들이 라디오를 듣듯 오디오클립으로 이야기를 즐겨들었다. 이맘때는 위인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는데 JK롤링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해리포터>책을 읽고 싶어 했다. 그동안에는 그림책을 주로 읽었고, 글책도 얇은 책들만 읽었던 터라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읽기에는 어려울 듯하여 망설여졌다. 그러다 ‘지금 못 읽으면 다음에 읽으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한 권을 사줘봤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더니 <해리포터> 전권을 읽어냈다. 한 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닌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읽은 책을 읽고, 또 읽어 <해리포터> 전 권을 총 5번 반복해서 읽었다. 우리 아이들이 책과 본격적으로 친해진 때가 바로, 팬데믹 기간이었다. 어딜 나갈 수도 없고, 집에 TV도 없고, 가장 재미있는 여행지가 ‘책 속 이야기’였던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해리포터의 마술지팡이'를 가지고 싶어 한 아이에게 시낭송 대회를 제안했다. 글쓰기를 정말 싫어하던 첫째는 그 마술지팡이를 쟁취하기 위해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 시낭송을 해냈다. 평소였으면 절대 쓰지 않았을 '시'를 재미있게 잘 지어서 깜짝 놀랐다.그 이후 종종 '신남매 시낭송'대회를 개최해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선물을 증정했다. 둘째 아이는 여자 아이여서 그런지 쓰고 그리는 걸 좋아해 독후 활동도 편히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첫째 아이를 위해서 여러가지 활동을 고안해내야 했다. 큰 전지를 거실 바닥 가득 붙여놓고 책을 읽고 느낀점을 자유롭게 쓰고, 그리라고 하기도 했고, 공룡책을 읽으면 공룡화석 발굴하는 키트를 사서 체험해주기도 했다.
한번 책의 맛을 보면 끊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밥 먹을 때도 한 시간은 거뜬히 넘는다. 밥을 빨리 먹어야 엄마도 치우고 좀 쉴 텐데 책 보면서 밥을 먹느라 아주 굼뜨고, 흘리기도 많이 흘린다.
고학년 되면서 책 읽을 시간을 많이 확보하지 못하니 밥먹으며 책 읽는 짓거리를 말릴 수도 없다.
아침에도 가관이다. 책 읽으며 밥을 먹고, 책 읽으며 옷을 입는 기이한 광경을 자주 본다. 바지는 앞, 뒤가 바뀌어져 있다. 요즘도“예비 중학생! 바지 거꾸로 입었어!” 라고 얘기하면서도 참 답답하다. 책을 읽지 말라고도 못하겠고, 아침마다 전쟁이다. 옷은 거꾸로 입고, 한 손은 바지 한손은 책을 부여잡고 있고, 양치질한답시고 칫솔은 입에 물고 책만 보고 있으니, 덩치만 커진 책만 보는 바보가 된 것 같다. 이 책만보는 바보를 말리지 않은 이유는 딱 한가지다. 지금 당장 아이의 성장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후에 분명 큰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 당시에는 불안했던 저학년때의 우리 아이들과 고학년이 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의 차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