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비우는 느슨한 시간의 개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을 한탄하며 늘 바쁘게 사는 우리들.
분단위 초단위까지 쪼개가며 해야 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 사이에서 모든 것들을 채워내는 하루하루.
우리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설렐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 의식은 어느 하루를 다른 하루와 다르게 만들어주고,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거야.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더스토리, p108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좋아하는 것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여우에게 어린왕자가 오는 시간이 기대되고 설레는 것처럼, 우리는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물건이 올 때즈음 울리는 택배도착시간 문자 알림에도 설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우가 어린왕자가 만날 시간을 4시와 3시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여우와 어린왕자에게 서로 약속을 지킬 정도로 정확한 시계가 있을 리도 없고, 그 두 캐릭터 성격상 간 정확하게 시간 약속을 하지도 않았으리라 상상하며 혼자 미소 지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여우가 "네가 해 질 무렵에 온다면 난 해가 지평선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분과 초까지 정확한 시간으로 전 세계 어느 곳에서건 소통하고 약속을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첨예한 계산들이 우리의 삶을 더 각박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느 순간이든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이는 인도의 고원지대인 라다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은 표현에 따라 산술적인 것을 넘어 전혀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시간은 느슨하게 측정된다. 분을 셀 필요는 절대 없다. 그들은 "내일 한낮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라는 식으로 몇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말한다. 라다크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타내는 많은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라는 뜻의 '공고로트', "해가 산꼭대기에"라는 뜻의 '니체', "해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시간"을 나타내는 '치페-치리트' 등 모두 너그러운 말들이다.
- 헬라나 노르베르 호지,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녹색평론사, p57
어린왕자의 여우가 하는 시간에 대한 표현은 오히려 라다크 사람들이 한 말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시간과 분을 센다는 것은 삶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는 하지만 그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분 단위로 쪼개서 할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자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공허해진다. 시간들을 잘게 쪼개 마감효과와 엄청난 집중력으로 멋지게 일들을 해냈지만 시간과 분으로 쪼갤 수 없는 소중한 하루라는 시간은 흘러버렸으니. 밝게 빛나던 태양이 붉게 물들어 지평선 뒤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있으니까.
물론 늘 일출과 일몰을 음미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치열한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여유로운 시간이 완성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소중한 시간이 어느 것이 오고 다음 것이 오는 선후관계의 개념이 적용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치열함과 여유로움 사이에 느슨한 시간에 소중한 하루에 대한 해답이 있지 않을까?
서양에서는 '시간은 금'이란 말, 동양의 주역에서는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촌광음이라도 가벼이 보내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이 균형을 이루고 잘 나아가려면 치열한 일촌광음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라다크의 느슨한 개념의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가끔은 분단위로 시간 단위로 시계를 확인하며 다음 일들을 떠올리기보다는 여우와 어린왕자가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처럼 나와 마주한 것들에 대해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들로 채워지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시간들에 있어서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느슨한 개념의 시간들로 채워가는 것은 어떨까?
당신에게는
느슨한 시간의 개념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