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놀이(5) 눈높이에서 ‘눈깊이’로
‘아이에게 배운다’는 건 눈높이를 맞추면 어렵지 않다. 눈높이를 맞추면 귀도 가까워 더 잘 들린다. 근데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눈높이를 맞추면 ‘눈깊이’로도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는 점이다.
‘웃꿀’은 아홉 살 남자아이. 명절에 식구들이 다 모였다. 같이 수다를 떨면서 만두를 빚다가 아이 엄마가 말했다.
“아, 만두가 터졌어. (망쳤다는 느낌으로 큰 소리로)”
그러자 아이가 엄마 가까이 와서,
“어디, 어디? (터진 만두를 갸우뚱하고 살피더니) 웃는 얼굴이네. (괜찮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으로. 심지어 더 잘 된 만두라는 느낌으로! 이런 만두, 아무나 못한다는 느낌. 이런 느낌은 글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말만이 갖는 뉘앙스랄까? )”
아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얼마나 좋은 ‘마주이야기’인가? 아이는 엄마를 그냥 빈말로 위로한 게 아니다. 아이들은 ‘고정관념’이 없다. ‘만두’는 얇은 피로 소를 감싼 음식이다. 그러다 보니 피가 터지지 않게 해야 만두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설사 부모가 터진 만두를 주더라도 그걸로 마음 쓰지 않는다. 엄마가 스스로 망쳤다고 실망하니까, 가까이 와서 본 것일 뿐. 아이는 터진 만두보다 이로 인해 실망하는 엄마를 더 안쓰러워한다. 근데 아이가 그냥 “괜찮아요. 잘 먹을게요.” 했다면 사실 어른스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만 남길 게 아니라, 그림책으로도 만들고 싶었다. 그것도 아이가 주인이 되어 직접 그리고 쓰는 그림책. 그림이 좀 부족하면 어떤가? 어쩌면 아이다운 그림이기에 더 좋은 점도 많을 것이다. 또래 아이들이 이런 그림책을 본다면 부쩍 용기를 가지지 않을까? 사실 많은 그림책이 아이 삶에 뿌리를 두고 있기보다 작가들이 꾸며낸 세계인 경우가 많다. 이런 그림책은 아이 상상력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그 반대급부도 생각해 보아야 하리. 모든 독서와 글쓰기는 자기 삶을 가꾸는 걸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자라는 아이들은 더. 현실에 뿌린 상상력은 꽃을 피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너무 동떨어진 상상력은 자칫 어디로 튈 지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반면에 자기 삶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 힘은 점점 커지리라.
게다가 이 아이는 올해 2학년이 되지만 아직 한글이 익숙하지 않다. 읽는 것과 달리 쓰는 건 솔직히 어른들도 쉽지 않다. 나 역시 제법 오래 글을 써왔고, '맞춤법 검사' 기능까지 거치지만 여전히 틀린다. 그런 점에서 받아쓰기를 숙제로만 하는 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대신에 자신이 한 말,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다르다. 관심이 더 가게 마련. 이게 바로 내가 다시 강조하고픈 ‘삶을 가꾸는 글쓰기’다. 글은 삶에서 나오고, 그 글은 다시 삶을 가꾸는 거라고. 여기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게 ‘삶을 가꾸는 노래’ 요, ‘삶을 가꾸는 그림’이다. 삶을 가꾸는 글, 그림, 노래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몇 달쯤 뒤,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내가 슬쩍 물어보았다.
“네가 저번에 말해준 웃는 만두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림책?”
“그래, 그동안 남들이 지은 그림책만 보았잖아. 이번에는 우리 이야기를 직접 쓰고 또 그려보는 거야. 어때?”
아이는 터진 만두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듯이 그림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꺼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이 그냥 착착 굴러간 건 아니었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루 나눈다. 먼저 줄거리 짜기.
“너는 어떻게 터진 만두에서 웃는 얼굴을 본 거야?”
내 간단한 물음에 아이는 막힘없이 이야기한다. 저번에 말했듯이 말문이 터진 아이들은 말이 줄줄 나온다.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물 흐르듯 나온다.'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좋잖아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웃는 게 더 쉬워
웃는 건 입만 잘 그려도 되지만
우는 건 눈물도 그려야 하거든.”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의 시에 가깝다. 아래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같이 일 차로 짜본 줄거리
<웃는 만두>-1차 얼개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좋아
그림 그리는 것도
웃는 게 더 쉬워
웃는 건 입만 잘 그려도 되지만
우는 건 눈물도 그려야 하거든.
설날
식구들이 모여
만두를 빚다가
엄마가 빚던
만두 하나가 터졌어.
어, 망쳤나?
아니,
웃는 만두가 되었네.
이 글을 보여주자, 아이가 다시 의견을 낸다. ‘만두 터진 이야기를 먼저 하고, 웃는 이야기는 뒤로 가는 게 좋겠다’고. 어쩜 아이가 이런 얼개까지 다 이야기를 해주나 싶어 신기하다. (어쩌면 아이 내면에서 기존에 보았던 그림책 얼개가 자기 작품과 겹치면서 나오는 거 아닐까 추측해 본다.) 다시 아래처럼 고쳤다.
<웃는 만두>-2차 얼개
설날
식구들이 다 모여서
만두를 빚다가
엄마가 빚는
만두 하나가 터졌어.
어, 망쳤네?
아니,
웃는 만두야.
우는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좋잖아
그림 그리는 것도
웃는 게 더 쉬워
웃는 건 입만 잘 그려도 되지만
우는 건 눈물도 그려야 하거든.
자, 드디어 그릴 차례. 스케치북을 두 권 마련하여 아이 한 권, 나 한 권. 이 참에 나도 용기를 내어, 같이 그리고 싶었다. 혼자는 차마 못하던 짓을 같이 하면 용기가 나는 이치랄까. 하지만 내 뜻대로 술술 굴러가지는 않는다. 식탁에다가 스케치북이랑 연필을 놓자, 아이가 말한다.
“그림은 내일 그려요. 지금은 다른 거 하고 싶어요.”
“그래, 좋아. 내일 언제 할까?”
“아침 먹고 해요.”
사실 줄거리 짜는 것만 해도 큰일을 하나 해낸 셈이다. 나 역시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스케치북을 펼치고 우리는 각자 그림책 제목 ‘웃는 만두’를 위에다가 큼지막하게 쓰고, 그 아래 날짜와 이름을 적었다. 이제 첫 장을 그릴 차례.
“‘설날’이라고 하면 너는 어떤 풍경이 먼저 떠올라?”
“음, 조금 낡은 아파트. 난간이 있는”
“좋아, 한번 그려보자.”
나는 산골을 풍경으로 그리고, 아이는 낡은 아파트를 그린다. 근데 나는 그림 실력도 안 되지만 뒷산, 집, 해 순으로 대충 그리는 데 아이는 아니다. 높이가 10층 이상 되는 아파트를 정성스레 그린다. 게다가 난간도 빠질세라 집마다 하나하나. 곁에서 지켜보는 데 아이가 솔직히 '존경스럽다.' 호랑이 털을 하나하나 그려 넣던 옛날 화가들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이는 이어서 전봇대 둘. 뒷산. 해를 마저 그렸다. '설날'이란 단어는 잘 모르니까 내가 알려주면 그제야 그림 한편에 써넣는다.
이렇게 첫 장을 그린 다음 두 번째 장.
“식구들이 다 모인 걸 어떤 모습으로 그릴 거야?”
“글쎄요....”
“나는 신발. 현관 앞에 신발이 많이 놓여있는 모습. 솔직히 나는 사람을 그리기가 너무 어렵거든.”
“나는 식구들이 들고 온 짐. 여행용 가방이랑 스마트폰, 애플 워치”
“좋아, 그려보자”
나는 신발조차 그리는 게 어렵다. 신발 다섯 켤레를 그린다고 끙끙대니까 아이가 도와준다.
“(노지 그림에는) 슬리퍼만 있잖아요? 목이 있는 신발도 그려요. 슬리퍼도 이렇게 앞에다가 선을 그으면 더 좋고”
자기 그림 그리라, 내 그림 도와주라…. 그리면서 틈틈이 쫑알쫑알 수다. 아이는 이렇게 열심이다.
2장까지 그렸다. 3장은 정말 쉽지 않다. 같이 만두를 빚는 모습이라. 내 머리는 어느새 쥐가 날 지경이다.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그냥 만두만 그리기로 했다. 이마저도 어설프다.
아이는 다섯 식구가 식탁 둘레에서 만두를 빚는 모습을 그리다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지우개로 쓱쓱 지워가면서 다시 그린다.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그렸다. 내 눈에는 제법 분위기가 살아나는 그림 같다.
근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처음 문장대로 그림책 한 장에다가 두 장면을 다 담아내자니 어렵다. 크게 나누자면 식구가 모인 모습과 터진 만두, 이렇게 두 장면이다. 이 문제를 아이가 발견했다. 그래서 마지막 ‘터졌어’를 뒷장으로 넘기자고 한다. 먼저 썼던 ‘터졌어’를 지우개로 지웠다.
오, 여기까지 그리다니…. 나로서는 너무 뿌듯하다. 내 생각 이상으로 아이가 그리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래도록 그림이라곤 그려본 적이 없는 나 자신조차 스스로 대견하니 말이다. 정작 문제는 나다. 내 뇌를 너무 혹사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 안 하던 짓을 갑자기 오래 하니 무리가 오는 거 같다.
“우리, 오늘은 그만하자. 많이 했다. 나는 이제 힘들어. 남은 건 내일 하자.”
“좋아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치운 다음, 다시 남은 그림을 시작.
네 번째 장.
“터졌어”
이건 무난하게 그렸다. 만두 네 개를 쓱쓱 그리고 터진 만두를 마지막에 그렸다.
다섯 장.
“하, 망쳤다”
엄마가 실망한 모습이다.
이 역시 어렵지 않게 그린다. 혀를 쑥 내민 얼굴 모습으로.
여섯 장
“어디, 어디?”
....(고개 갸우뚱)
“괜찮네”
주인공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밝은 표정.
일곱 장
“웃는 만두야”
터진 만두 하나만을 크게 그렸다. 클로즈 업.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알아서 그린다. 그림에다가 보조개까지 넣어가며 익살스럽게. 이 보조개는 그야말로 자기 보조개다. 한쪽만 있는...
사실 나는 여기까지 그린 것만 해도 충분하다. 슬슬 머리가 멈추는 거 같다. 근데 아이는 별로 지친 기색이 없다. 하지만 그다음 줄거리로 넘어가자니 나는 부담이 컸다. 그래서 2차 얼개에서 그림 이야기를 다 빼버리기로 했다. 그게 더 자연스럽기도 했다.
대신에 마무리로 뭔가 좀 부족한 듯했다.
“웃꿀아, 마무리로 뭔가 한 마디가 있으면 더 좋을 거 같은데….”
“음….
“오, 좋아. 좋아!”
8장 마무리.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만두를 접시에 담은 걸 그리는 데 아이는 또 달랐다.
“나는 군만두로 할 거야.
군만두를 몇 도에서 굽지?”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보니 200도에서 15분을 굽는 걸로 나온다.
이를 아이는 그림에 살려 넣는다. 그리고 덤으로 냄비 속 웃는 만두를 따로 더 그려준다. 웃는 만두가 따듯하기까지 하다고. 지금 보니 마지막 장에 너무 많은 내용이 든 거 같다. 나중에 혹시나 정식으로 출판을 하게 된다면 그때 더 고치기로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첫 그림책을 만들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다운 그림책을....
나 역시 뿌듯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또 하나의 과제를 끌어안는다.
이제 나는 아이랑 눈높이를 맞추는 건 제법 하는 편이지만 그 눈깊이로 들어가는 건 아직 멀었구나 싶다. 다만 이제라도 그런 문이 있다는 걸 발견했으니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삶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