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글이 더 빠른 시대!
-말문이 트이듯, 생활 속에서 글문도 트인다
-뭐든 좋아하면 그만큼 빨리 트인다
-하고 싶은 말(깨달음, 속상함 따위)이 많아, 자꾸 쌓일 때, 글문도 쉽게 트인다.
-자신과 세상이 너무 궁금할 때
-말이 곧 글이 되는 시대! 이제는 입으로도 글을 쓰는 시대다. 이젠 책을 눈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실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생명이 갖는 신비가 아니겠는가. 누워 있다가 뒤집고, 배밀이하다가 네 발로 기고, 그러다가 일어서는 모습 모두가 부모와 아이 자신에게는 경이롭다. 우리 인류가 진화해 온 장엄한 서사를 몸으로 마음으로 같이 느끼는 순간들이다.
그런 점에서 '말문이 트인다'는 것 역시 아이 성장에서 또 하나의 도약이리. 음식의 문은 본능적으로 열리지만, 말의 문이 열리는 데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막혔던 길이 뚫리는 느낌으로, 물을 가두기만 하던 둑이 어느 순간 무너지듯, 말을 쏟아낼 수 있게 된다. 아이 나름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것은 곧 자신을 마음껏 발산하고 상대방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뇌과학으로 보면 '언어 체계가 활성화되어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이는 기억 체계와도 연결된다. 경험으로 기억한 것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그만큼 신경망이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과 소통하니 도파민 분비도 촉진된다. 그러니 말문이 트인 아이들은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글문은 어떨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글문'은 사전적 뜻(글을 시작하는 첫머리)과 다르다. 아이 성장에서 말문을 잇는 언어로서의 글문이다. 아이에게 글은 읽는 것부터 어렵고, 쓰는 건 더 어렵다. 하지만 양육자가 끊임없이 일상에서 대화하는 것을 아이가 듣고 배우며 말이 트이는 것처럼, 글 역시 하기 나름이다. 소통 측면에서 보더라도 글문은 말문보다 더 강력하다. 글은 말과 달리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모가 바쁠수록, AI가 더 발달할수록 자라는 아이에게 글문은 말문보다 더 절실한 문이 될지도 모른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청각에 의존하며 휘발성이 강하다. 글은 시각에 의존하며, 보관하기에 따라 영구적일 수 있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AI는 인간의 요구에 따라 엄청난 글을 쏟아낸다. 내 밖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글은 다시 내 안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아이도 이런 환경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이가 말문이 터질 때 이를 제대로 다 받아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바쁘기도 하지만 각자 고유한 삶과 시간,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24시간 붙어 있을 수 없다. 받아주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어렵다. 반면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은 글에도 관심이 많을 수밖에.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성장하는 아이들일수록 제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야 한다. 먹기만 하고 제때 배출하지 않으면 변비가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리라. 말 변비, 글 변비, 마음 변비... 말하고 싶을 때 하고,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부모가 글을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아이 스스로 글을 익히는 사례가 늘어나는 편이다. 이건 아이가 천재라서가 아니다. 말과 글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요즘은 그림책을 비롯한 온갖 책들이 널려 있고, 자막이 달린 영상도 많아 글에 쉽게 노출된다. 아이가 말을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듯 점차 글도 그렇게 갈 것이다.
문제는 말보다 글에 더 익숙해지는 경우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일수록 글이나 영상으로 쏠리기 쉽다. 말은 상대가 필요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아이가 책을 친구로 하는 순간, 아이에게는 엄청난 친구가 생기는 셈이다. 공간, 나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서로 소통하는가, 아닌가는 그다음 문제다.)
게다가 이제는 AI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말을 하면 곧바로 글로 바꿔준다. 손 대신 입으로 쓰는 글. AI가 하는 답변의 속도는 말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말보다 글이 더 빠른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동안 쏟아내야 할 말을 AI는 단숨에 글로 쏟아낸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뇌는 또 한 번의 엄청난 변화를 겪으리라. '말하는 뇌'보다 '읽고 질문하고 판단하는 뇌'가 더 발달한다. 말은 선형적(순서대로 따라가야 이해를 한다)인데, 글은 비선형적(필요한 곳만 빠르게 볼 수 있고, 원하면 여러 번 볼 수 있다)이다. 점차 디지털화되어 가는 삶은 끝없이 속도를 재촉하기 마련. 생산성으로만 보자면 말보다 글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시간 순서대로 다 들어야 하는 말은 점차 힘이 약해지리라. (그 대신 울림과 리듬감이 좋은 노랫말은 더 깊이 발달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내면 언어(inner speech)의 비중이 커진다. 말로 풀어내기 전에 글로 먼저 사고하는 습관이 강화될 수 있다. 말은 상대와 함께하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다지는 도구였다면, 글 기반 소통은 개인화를 더 강화한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이나 AI 중독도 빼놓을 수 없는 그림자라 하겠다.
이럴 때일수록 정말 중요한 건 주체적인 책 읽기다. 그렇지 않다면 ‘말 변비, 글 변비’를 가져올 뿐이다. 가능하다면 창조적으로 읽어야 하리. 먼저 그림책 읽기부터 보자.
말문이 트인 아이들은 막힘없이 이야기한다. 근데 그 이야기들이 너무 좋다. 아이 이야기는 간결하며, 입말이고, 리듬감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 삶이 녹아 있어 아주 생생하다. 아이 말을 듣다 보면 당장 그 그림책을 덮어버리고, 아이가 바라는 그림책을 다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우선 아쉬운 대로 메모하고, 따로 저장한다.
아이와 그림책을 이렇게 창조적으로 읽다 보면, 어떤 때는 차라리 아예 글자 없이 그림으로만 된 책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언 그림책(Wordless Picture Book)'은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어, 특히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아이들 처지에 맞는 상상력과 표현력을 마음껏 키울 수 있다. 이런 독서법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부쩍 키우게 된다. 그림책과 자신이 분리되기보다 하나 되는 느낌이 강하니까.
이런 식으로 여러 번 하다 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그건 곧 아이 자신이 자신만의 그림책을 그리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자신감은 곧 '창조심'으로 나아간다. '나도 할 수 있어!'에서 '나도 그리고 싶어!'로. 이 창조심을 양육자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아이는 곧 창조 행동으로 나아가더라.
이때 필요한 건 그저 두 가지면 된다. 하나는 스케치북, 그리고 연필. 나머지는 아이 몫이다. 자기 관심 분야를 자기 다운 방식으로 그리게 된다.
아래 몇 장 그림은 올봄, 다섯 살 아이가 그린 그림이다. 나와 그림책 두어 권을 주체적으로 읽고 나더니 10여 분 남짓, 아이는 잇따라 여섯 장을 그렸다. 그림 한 장씩 놓고, 나는 다시 아이랑 이야기를 나눈다.
"이건 뭘 그린 거야?"
"나무!"
"오호 잘 그렸네"
'나무'라고 그림 한편에 글씨를 써준다.
그렇게 아이 그림마다 아이가 그린 내용을 글로 적어준다.
'똥, 왕관이 든 보물 상자, 미끄럼 썰매, 총 나쁜 사람, 상어 이빨, 눈알, 물고기,..'
이날 아이가 마지막에 그린 그림은 좀 특별했다. 전혀 내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마음이에요."
우와. 마음이라... 아이의 마음 세계도 어른들 못지않게 아주 복잡 미묘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게 아닌가. 아이가 이걸 그림으로 나타낸 것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사실 그림 한 장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잠깐 사이 아이는 자기만의 그림책을 '완성'한 것이다. 그림책은 한 장이어도 충분하다. 아이가 그저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리면 된다. 양육자는 그 그림에 관심을 갖고, 글자를 알려주고, 무엇보다 아이 마음을 읽고 공감해 주는 것이리라.
이렇게 하여 스케치북 한 권을 다 그렸다면 날짜와 아이 나이를 적고 보관한다면 아이 성장에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아이는 차츰 그림과 글에 부쩍 더 관심을 갖고 즐겁게 익히게 된다. 가장 좋은 건 부모와 아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 일기를 적어가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 사진을 찍고 영상을 기록하고 편집하고 저장한다. 이런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그림책 만들기를 같이 해보자. 사진과 영상은 겉모습 위주로 담는다면 그림과 글은 아이 내면까지 들여다보는 좋은 거울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나와 잠깐 그림책을 읽고 또 그림 그리기를 했던 또 다른 아이는 한 달 남짓 뒤에 다시 만났을 때, 떡하니 아예 그림책 한 권을 그려서 가져온 게 아닌가. 글자를 모르니 그림으로만... 그런데도 이번에는 나름 이야기 줄거리도 짜서 그렸더라. 글문보다 먼저 그림문이 트인 셈이다. 아이한테는 글보다 그림이 한결 더 익숙할 수밖에.
다만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강조할 것은 몸 놀이다. 온몸으로 충분히 놀고 난 다음, 지적인 창조 놀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창 자라는 아이 뇌 발달의 토대는 언제나 몸이다. 온몸이 뇌하고 함께 발달하지 않으면 언젠가 탈이 난다는 걸 꼭 명심하자.
아무튼 아이들에게는 그림책 작가라는 고정관념이 없다. 네가 작가면 나도 작가다. 네가 시인이면 나도 시인이다. 이렇게 창조 놀이는 무궁무진하다. 아이에게 배운다는 건 아이 창조심을 북돋우는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 양육자도 함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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