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예쁜 꽃에 유리관은 필요 없습니다.

화가 난 아이가 감정을 다스리고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배운 교훈 한가지.

by 쓰는핑거

우리이게는 기쁘고 슬프고 화나는 것의 다양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늘 기쁘고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슬프고 화가 나는 부정적인 감정은 다음 타자로 대기라도 하고 있는 듯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행복을 누리고 있으면 시샘이라도 하듯이 불행이 찾아오는 듯도 합니다. 불행을 누리고 있으면 '이제 그만 하면 됐다.' 며 위로해주기라도 하듯이 행복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화' 라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깔깔 웃으며 즐거워 죽겠다가도 '화' 라는 감정이 찾아오면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깁니다. '화' 라는 감정이 주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무거운 것 입니다. 어른들도 그 무거운 감정조절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전에는 아이들이 화가 났을 때, 어떻게 공감해주고 그 마음을 달래줘야 하는지가 참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달래주고 위로해주어도 아이들의 화는 쉬이 풀리지 않습니다. 어쩐지 달래주고 위로해줄수록 아픔과 상처의 동굴로 더 깊숙이 들어가려고 작정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니 더이상 달래주기 싫어서 화가 난 아이 곁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몇일 전, 기분좋게 유치원에 갔다가 돌아온 막내가 단단히 화가 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문구점에서 사는 한팩에 천원씩 하는, 요즘 핫한 포켓몬 카드를 한참 사주다가 돈이 아깝기도 하고, 그 팩 안에서 원하는 좋은 카드가 나오지 않았을 때, 기대하는 마음이 점점 화로 바뀌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며 결심했던 것이 '이제 그만 사자!' 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용돈도 참 두둑히 들고 다니는지, 용돈 없이 다니는 우리 둘째 아이에게 용돈이 두둑한 친구가 포켓몬 팩을 사주었고 거기에서 아이들이 열광하는 홀로그램카드가 운 좋게 나온 것입니다.





막내아이는 그 이야기를 듣자 마자 눈빛이 달라지고 몸이 망부석처럼 바뀌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합니다. 화가 나서 내 손을 뿌리칩니다. 자기도 갖고 싶은 포켓몬 팩인데, 그걸 가진 형아와, 그 팩에서 좋은 홀로그램카드가 나왔으니 화가 날 만도 합니다. '우리 막내도 엄마가 딱 하나만 더 사줄게.' 어르고 달래도 무서운 도끼눈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큰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어떻게든 그 화를 풀어주려고 얼마나 애걸복걸했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스스로 화를 풀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좀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었어야 했는데 참 그러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셋째인 막내는 자연스럽게 그런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달래도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자 아이를 그냥 두었습니다. 한참을 다른 방에서 혼자 있더라구요.꽤 오래 혼자 있는 듯 하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혼자 추스리고 있는 감정의 기복들 속에서 '달래주지 않고 위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더 악효과가 날까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차례 시도했을 때,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기도 했기에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툭툭 걸어나옵니다. 화가 다 풀렸는지 묻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묻자 정확하게 화가 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거북이처럼 등딱지 안에 팔다리를 쏙 집어넣고 여러번 크게 숨을 쉬고 화를 가라앉혀봤어...."





그 얘기를 듣는데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아이가 평소에 정말 자주 읽고 좋아했던 그림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였거든요. [꼴찌 초록이] 에서는 자꾸만 실수하는 초록이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화를 내는 도도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초록이는 참다 못해 폭발하고 초록이가 내심 못 마땅했던 도도의 화도 함께 폭발하며 싸우게 되자 선생님이 둘을 말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안 되겠다!

지금부터 너희 둘은 등딱지 안으로 들어가서 숨을 크게 쉬며 하나부터 다섯까지 아주 천천히 세거라!"





주인공들이 거북이로 묘사되어 있어요. 화가 난 초록이와 도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등딱지 밖으로 나와서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마주보고 표현하며 어느새 화가 사그러듭니다.



"화가 날 때에는 화를 내는 것 보다 이렇게 먼저 기분을 가라앉혀야 해. 그러면 아주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단다. "





듣고 또 듣고, 읽고 또 읽으며 아이는 동화책이 주는 메시지를 습득했고 실천했나봅니다. 정말 너무 자주 읽어서, 먼저 읽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 있으면 읽어줄테니 가져오라고 하면 늘 그 책만 들고와서 엄마인 저는 내심 '진저리가 나게 읽기 싫은 지겨운 책' 이였는데 아이의 모습을 보자 그런 감정을 느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닳도록 읽은 책의 메시지가 아이에게 잘 새겨져 있어서 참 감사했고 잘 실천해준 아이가 참 기특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깨닫게 된 두 가지는 첫째,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은 닳아 없어질때까지 읽고 또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이고 두번째, 아이가 화가 났을 때에도 잠시 거리를 두고 시간을 주면 잘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그들에게도 있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이들이 화가 났을 때, 왜 그랬는지, 그렇게 화를 낸다고 달라진 게 있느냐는지, 감정을 잘 다스리라든지의 쓸데 없는 참견과 전혀 위로 되지 않는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단 화를 삭힐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거리를 좀 두기로 했습니다. 아이안에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어른도 힘든 그 것을 아이들은 어쩌면 더 잘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왕자] 는 어린왕자가 그토록 사랑하고 애지중지 보살펴주던 꽃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주었던 유리 덮개를 빼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꽃이 갑작스럽게 만나는 바람에 휘청거리고 아프게 될까봐 걱정하는 어린왕자에게 꽃이 말합니다.






"그렇게까지 추위에 약하지는 않아요. 시원한 밤바람이 오히려 내게 더 좋을 거에요. 난 꽃이니까요..."




"하지만 벌레들이...."



"나비와 만나려면 애벌레 두세 마리는 참아내야죠. 나비는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나비가 아니면 누가 날 찾아와 주겠어요? 당신은 멀리 가벌 텐데. 벌레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나는 가시가 있거든요. "










아이들은 생각보다 추위에 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원한 밤바람이 아이들에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시원한 밤바람이 아이들을 감기라도 걸리게 할까봐 답답하게 유리관을 늘 덮어주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꽃보다 더 귀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가끔 벌레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애벌레 두세 마리는 참아낼 힘도 있고 견뎌내야 합니다. 어느새 나비가 찾아오게 되고, 찾아오던 나비가 사라지게 되더라도 아이들에겐 이겨낼 수 있는 가시가 있습니다.




어린왕자처럼 나는 아직도 꽃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꽃을 의심하기도 하고, 꽃이 아무렇게나 꺼낸 중요하지 않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 말로 인해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꽃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게 아니였어. 꽃이 하는 말은 절로 들으면 안돼. 그저 바라보고 향기만 맡아야 해.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롭게 했지만 난 그걸 즐길 줄을 몰랐어. 나를 짜증스럽게 했던 발톱 이야기도 불쌍히 여기고 보듬었어야 했는데....



[어린왕자]



나는 정성껏 그저 물을 주고 나는 그저 아이들이 내는 향기를 맡고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을 보호한다고 내 마음대로 세워놓은 유리관이 없는지, 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 꽃이 바람에도 견디고 벌레에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비가 깃들고 나비가 찾아오는 아름다운 꽃으로 또 꽃씨를 흘려보내고 싹을 틔우겠죠.






오늘 피었다 내일 지는 장미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했죠. 아이들에게 비교하자니 나는 벌써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는 시들어가는 장미꽃이 아닌지 생각하니 울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사는 모든 순간의 나의 모습은 오늘도 내일도 늘 나비가 깃드는 아름다운 장미꽃일 것 입니다. 언젠가 하나 둘 잎사귀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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