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없이 집을 나선 날
나는 길 잃은 사람처럼 갈곳 몰라했다. 작열하는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지면에서 아지랑이가 아스라이 피어올랐고, 그 때문에 눈앞의 풍경이 흐릿했다. 꿀꺽 삼킨 침이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듯한 목구멍 안을 천천히 기어 내려간다. 어디로 가야 할까? 길을 잃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지하철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향할 때 뒤늦게 어제 외출 후 카드지갑을 다른 곳에 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늦어도 너무 늦은 상기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런데 버스를 탈 교통카드가 있을 리 없다. 집을 나섰을 때 버스 시간이 오래 남아 자전거를 타고 온 탓이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고작 오전 10시임에도 세상은 용광로처럼 들끊고 있었다. 누구에게 만원을 빌리고 이체해 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요청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들릴 걸 내가 너무 잘 알아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을 더 끌었다간 약속시간 안에 도착하리란 장담도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때 역 앞 횡단보도의 푸른 신호가 내 결정을 재촉하듯 깜빡였다. 결정의 순간은 짧았다. 나는 허겁지겁 달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눈앞엔 쇼핑몰이 있고 그 건물의 지하 1층엔 주거래 은행의 ATM기가 있다. 물론 체크카드 역시 집 안 카드 지갑 안에 있지만, 딱 한 번 모바일 출금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몇 년 만에 시도해 보는 모바일 출금이 낯설어 버벅거렸다. 뒤에 기다리는 이가 있어 일단 뒤로 가 다시 줄을 섰다. 쇼핑몰 안은 맹렬한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했지만, 마음은 초조함, 걱정, 두려움 같은 감정으로 아직 뜨거운 상태였다. 다시 내 차례가 오고 나는 천천히 기계의 지시를 따랐고 손에 만 원짜리 지폐를 쥘 수 있었다. 지폐의 질감까지 손 끝에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현금으로 지하철표를 끊었다. 매번 카드를 찍으니 금액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는데, 지불한 1,900원이라는 돈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다음은 순탄했다. 1시간 가까이 이동해야 하는 지하철 안은 이미 땀으로 샤워한 몸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다. 산뜻한 기분으로 챙겨 온 책까지 읽으며 나는 약속 장소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친구를 만났다. 1달에 한 번 만나는 친구. 우리는 함께 글을 쓰는 사이였다. 코로나 시절 줌(zoom)으로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글을 썼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1달에 두 번 카페에 글 업로드하기, 1달에 한 번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글에 대해 피드백하기. 이것이 우리의 루틴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 글의 소중한 첫 번째 독자다.
신중히 고른 음식점에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그녀가 전화를 하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가 아프단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선약이 있을 때를 기막히게 맞춘다. 본래 우리의 약속은 지난주 월요일이었는데 그땐 내 아이가 아팠고 이번엔 친구의 아이 차례인 모양이다. 괜히 내가 눈치를 보게 됐다.
이후 함께 가고 싶었던 서점에도 들리고 아이쇼핑도 했지만, 나는 이럴 때 어떤 얘기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뭘 먹어도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친구 역시 유체이탈처럼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이미 아이 옆에 가 있으리라.
마치 결승선을 코 앞에 두고 서로 눈치를 보며 버티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녀가 언제 가려나 가늠하고, 친구는 언제 가야 덜 미안할까 신경 쓰는 것처럼. 그래도 결국은 작별이었다. 이번 작품은 오래 공을 들여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던 나로서는 서운함이 화선지 위의 먹처럼 번졌다.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 허둥대며 시작한 하루의 정점이었다.
평소 혼자서 잘 논다.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봐도 씩씩하고 혼자 여행하는 건 일상 속 나의 큰 즐거움이다. 친구나 동료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매우 좋아하지만, 그래도 내 에너지가 쌓이는 건 늘 혼자서 좋아하는 걸 할 때다. 그런데 오늘의 외출은 내가 계획한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시작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여름의 열기가 의욕을 모두 날려버렸을까? 평소 혼자 잘만 가던 커피숍도 오늘은 영 내키지 않는다.
맥이 빠지긴 했어도 역시 그냥 가긴 아깝다. 멀기도 한 데다 이곳은 도시의 최고 핫플 중 하나였기에 이 값진 기회를 그냥 날릴 순 없었다. 친구는 소품샵을, 나는 빈티집 옷 가게를 좋아한다. 구제 옷가게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친구는 기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남겨진 자의 책임감으로, 이대로 갈 순 없다는 본전의 마음으로 나는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친구를 대신해 소품샵은 2곳을 둘러보고 빈티집 옷가게는 네댓 곳을 둘러봤다. 한발 늦게 친구에게 점심값을 카카오페이로 송금했고, 옷은 모두 무인샵에서 네이버페이로 결제했다.
- 지갑이 없어도 어찌 되긴 되는구나.
4벌의 구제 옷을 담은 가방이 제법 묵직했다. 허전한 속에는 역시 금융치료가 답이었다. 특히나 막판에 고른 꽃무늬 치마는 촌스럽기는커녕 입기만 해도 기분이 상큼해질 것 같았다. 택을 살피니 무려 모로코에서 만들어졌단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보지 못할 이국. 이번 삶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모로코 여행, 그 상상 속에서 나는 꽃무늬 스커트를 입었다. 어느새 여름의 열기도 마음속 서운함도 희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