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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이어달리기

by 은섬


10살 터울의 오빠는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이미 어른이었다. 꽤 먼 타 지역으로 진학을 한 오빠는 ‘아버님 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집에 올 땐 역전에서 빵을 사 왔다. 그리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오빠인데 도통 집에 붙어있는 법이 없어 서운했다. 그런데 나 역시 오빠의 뒤를 착실히 밟는다. 성심당 빵을 사든 3박 4일의 친정 나들이에 약속이 3개다. 모두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본가에 도착하는 날 만날 친구 M과는 근 4년 만이었다. 그는 대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의 늦은 결혼식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올해 그가 내 고향으로 발령을 받았다. 퇴근한 M과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앉자 참 세상모를 일이란 감상이 들었다.

“넌 옛날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M은 소화가 예전만 하지 않아 먹는 양이 줄었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늙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동감하는 바였다. 노화하는 몸 안의 그대로인 정신이란 건 저주일까? 축복일까?


다음날 만난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중 유일하게 연락하는 K. 사춘기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분모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 있노라면 이 힘겨움이 나만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훌쩍 뒤로 물러서 바라보면 아이가 제때에 사춘기를 겪고 있단 건 어쩌면 잘 크고 있다는 의미. 마음의 밑바닥에 얕은 위로가 고인다. 그럼에도 기도를 할 때마다 K의 아이를 떠올리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헤어질 때 K는 의외의 말을 했다. 우리가 방학 때마다 만나게 된 건 그렇게 오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 내 연락을 받았을 때 부담스러웠단다. 우리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MBTI도 I만 같고 나머지 성향은 완전히 반대다. 그래서 그랬던지 K는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난 그 시절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고교생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관계를 맺었던 걸까?


셋째 날 만난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L과 B. 그 시절엔 취향 같은 것 없이 그저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물론 우리 사이엔 서로가 없던, 시간이 제법 길었지만, 결국 우리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추억팔이는 예진작에 끝났고 이젠 서로의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한다. 이건 커피숍 1곳으론 모자란 일이다. 이번엔 오랜만에 지난 추억을 공유했다. 우리 모두 연락하는 동창들이 없는 관계로 알고 있는 근황의 바닥까지 긁어야 했다. 어쩌면 이미 한 번쯤은 이야기되었을 수도. 그래도 이야기만으로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엉덩이가 의자 위로 약 1mm 정도 뜬 것 같았다.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 B와 함께 지하철에 올랐다. 셋이 있을 땐 몰랐던 어색함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B의 삶은 내내 순탄치 않았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병도 얻었다. 언제나 B는 시간이 지날수록 말수가 줄었는데, 지하철 안에서는 B의 눈빛이 그윽하기에 이르렀다. 그 눈빛은 B에게 L과 내가, 또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가 천 마디 말보다 더 절절히 전하고 있었다. 나는 B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 손을 흔들었다.


영원할 것 같은 이 더위도 언젠가 끝이 나고 겨울은 돌아온다. 우리는 시린 손으로 친구의 손을 잡을 테고 뜨끈한 국물을 함께 나눠 먹을 것이다. 그때 M에게 내 고향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발령지가 아닌 새로운 연고지가 되고 우리의 만남도 규칙적이 될 것이다. 이전의 관계들이 그랬듯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대화의 중심이 된다. 그렇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평소 연장자와의 만남이 잦은 나는 대화 속에서 노화나 건강이란 소재를 자주 접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속도와 맞지 않은 일종의 '예습'이다. 그랬기에 같은 속도로 나이 들어가는 M과의, 사춘기 자녀로 골머리 앓는 K와의, 특별한 다음 만남을 계획하는 L과 B와의 교집합 속에서 ‘우리’라는 정의는 점점 돈독해진다.


위도치 않았으나 내가 오빠의 뒤를 착실히 뒤쫓듯,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이어받아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마음을 잇는 지금의 이어달리기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삶이란 또 관계란 직선이 아니니까. 때론 원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달리는 우리의 손 안에는 바통이 아닌 서로의 마음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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