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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틀릴 말

by 은섬

나 : 우리도 나이가 들면 풍 같은 거 맞을 수 있을 거잖아? 그러면 당신은 기를 쓰고 운동을 할 것 같아?


남편 : 어, 할 것 같아. 근데 당신처럼 운동하는 사람은 절대 풍 안 와. 풍 같은 것도 다 피가 안 좋아서 그런 건데... 어쩌고저쩌고...


아빠의 몸은 대개의 노인성 질환자들이 그렇듯 천천히 안 좋아졌는데, 특히 어지럼증을 느끼고 다리에 힘이 없는 게 가장 문제였다.

엄마가 같이 다녀보면 위태로울 때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터무니없이 넘어지며 순간적으로 손으로짚는 바람에 한동안 깁스를 하기도 하셨다.


또 넘어지시진 않을까 염려되어 조심히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빠, 사발 지팡이 쓰시면 어때요?"

당연히 거절당했다.

아버지 자존심에 그냥 지팡이도 아니고, 사발 지팡이를 쓰실 리가... 아마 당신은 안 넘어지면, 조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실 거다.


주말에 미사에 참석할 때 맨 앞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당은 미사 중에 앉았다 일어섰다가 많고, 예물 봉헌과 영성체 시간엔 제대 앞쪽으로 나가기까지 해야 한다.

봉헌 시간에 그녀는 워커에 의지해 천천히 걷는다. 뒤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신자 때문에 그녀가 자리에 앉을 땐 옆에 앉은 이가 워커를 정리해 준다.


불편한 몸 때문에 시선이 간 게 아니다. 그녀의 차림 때문이었다.

과거 성당에 올 땐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녀가 딱 그랬다. 항상 멋쟁이처럼 입고 오신다. 헤메코가 완벽하다. 분명히 과거에 한 따까리 하셨을 듯.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몸이 불편한 게 부끄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녀는 내가 볼 때마다 멋지게 차려입고 봉헌을 위해 나선다.(영성체의 경우 신부님이 다가오셔서 주심)


그때부터 이미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몸이 불편해지면 포기하지 않고 기를 쓰고 운동해 정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당연히 YES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시 겸손하게 생각해 보면 대답은 조금 달라진다.

나도 아빠처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새벽이나 늦은 밤에 집을 나설 것이다.

그 시간에 홀로 기를 쓰고 운동하겠지.

연습이 성과가 있어 불편함이 많이 티 나지 않게 되었을 때야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를 낼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보,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 아프지 않고, 젊은 지금의 생각이잖아. 우리도 나이 들고 아프면 생각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비틀거리며 걷는 아빠가 생각나고, 이제 뭔가를 더 하기 지쳤다는 아빠의 한숨이 들리고, 불편함 몸이지만 주저하지 않는 그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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