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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제가 예민한 건가요?

예민함이 상식이 되기까지

by 은섬


바다뷰 도서관이 있다기에 다녀왔다. 기대한 것처럼 어떤 자리에 앉아도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마천루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게 꽤 운치가 있었다.


그런데 자리마다 운치에 어울리지 않는 붉은 글씨가 시위하듯 서있다.

‘시험공부 등 개인학습금지’

요즘 도서관에 가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금지문구다. 이 외에도 열람실에선 노트북을 할 수 없다는 금지문구도 익숙해졌다. 열람실에선 그야말로 책. 만. 읽어야 한다.


다수가 책을 읽는 공간에서 노트북으로 소음을 발생시킨다면, 사용을 금지하는 게 맞다. 그러나 조용히 자판만 두드리는 것까지 막는 건 너무한 처사란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렇게 삭막한 세상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민원 때문이었을 거란 예상이 된다.


책을 읽는데, 자판 소리 또는 기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등이 독서에 방해된다는 민원이 여러 차례 발생했을 것이다. 처음 한 두 번은 예민한 사람이겠구나 했을 테지만 계속해서 동일한 민원들이 들어오면 공무원들도 죽을 맛이리라. 그들로선 그 행위 자체를 아예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간단하고 즉각적인 방법은 언제나 매력적이니까.


도서관에서 일하는 지인이 최근 받았던 가장 황당했던 민원에 대해 귀띔해 줬다. 옆에 앉은 남자가 “땀냄새가 심해 괴롭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서관 남성 사용자들을 위해 자주 씻는 교육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책임을 묻더란다.


“그러려면 집에 있어야지, 왜 나와서 돌아다니냐?”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민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금의 불편함도 견디지 못한다. 그걸 참는 건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것처럼 자존심 상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야말로 모두 날이 서서 화를 낼 궁리만 찾는 것 같다. 타인이 이처럼 시한폭탄처럼 느껴지는 때가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도서관에 오면서 폰을 무음으로 돌리지 않은 이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이건 양반이다. 전화가 오면 떡하니 전화를 받는다. 눈치에 떠밀려 밖으로 나가도 복도에서 통화를 이어간다. 들어보면 중요한 내용도 아니다. 그러면 소리가 건물 전체에 웅웅 울린다. 전화 통화할 때 들어가는 부스를 만들어둔 도서관도 봤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휴식을 위한 공간에서 신발을 벗고 다리를 올리고 있거나 눕거나 자거나 별 사람이 다 있다. 빌려간 책에 낙서를 하는 건 요즘엔 민폐라고 말하기도 귀여운 수준이다. 내가 아는 정도가 이 만큼이나 도서관 근무자들이 보는 천태만상은 보지 않아도 굉장할 것이다.


우리의 상식에 대해 고민한다. 매너, 에티켓, 배려 그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이런 것들이 필요한 곳이 도서관만은 아니다. 다중이 이용하는 카페에서 모임을 하면서 트로트를 틀어둔 손님들을 보곤 귀를 의심했다. 눈을 의심한 사건은 베이커리 카페인데 가져온 음식을 꺼내 먹는 손님을 봤을 때였다.


내가 현대인의 기본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누군가의 상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마음 같아선 사람들을 모아두고 현대를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한다고 상식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상식은 누가 정하는 거지? 상식은 절대적일까? 나는 상식적인 사람일까? 예민한 사람일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는 양쪽에 발을 담근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참 어려운 문제다.


도서관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읽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고, 마음이 심란할 땐 도서관이 참으로 만만하다. 무료로 또 오랜 시간 열려 있으니 도서관만 한 곳이 없다. 집에도 대충 ‘수업 간다’고 하면 납득이 되는 분위기다.


그런 공간이기 때문에 너무 예민한 사람도 너무 상식이 없는 사람도 없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모두 적을 순 없다. 그런 숨 막힌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더 예민해지지 않을까? 상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아마도 처음엔 분명 예민한 소수의 불편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것이 누적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을 때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


절대적인 상식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상식도 없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예민함과 상식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이 혼돈은 어쩌면 좀 더 상식적인 사회로 가는 길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예민하지도 너무 둔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예정했던 30회 차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브런치북 '아직 쓰지 않은 계절들에게'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한 달의 휴식 후 가을에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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