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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Sep 28. 2023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에필로그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If I only knew then what I know now.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1.

매일 도서관에 있는 나를 보고 아직은 20대인 친구들이 나에게 묻는다. 졸업을 했는데 대체 도서관에는 왜 오느냐고. 학위 과정 수료를 위해 수업을 더 들어야 하거나, 아직 논문을 제출하지 못해 졸업을 못한 이들의 입장에서 내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졸업하면 고생 끝, 취직해서 돈 벌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꽃길이 있는데 그를 마다하고 매일 도서관에 앉아있는 내가 미스터리요 흥미로운 화젯거리인 것이다. 


부다페스트로 이주해서 45살에 두 번째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학위, 취업, 유학,

이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돈 문제, 건강 문제 등을 비롯한 삶의 단계별로 주어지는 무수한 미

션들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션들은 다음 미션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무수한 허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이 허들을 뛰어넘는 순간의 느끼는 성취감은 짜릿한

다. 그러나 이 짜릿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바로 다음 허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Happliy ever after 그리고 그들은 그 뒤로 영원히 행복했

다”라는 동화책 속 환상적인 결말을 너무 많이 읽었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결말은 영화나 

TV속에서 되풀이되면서 이게 마치 가능한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특정 대학에만 들어가면, 특정 직장에 취업만 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고생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이십여 년 전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 지금 내 주변의 이십 대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학위는 취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학위를 받고 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취업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물론 취업과 동시에 대학원 시절 가지고 있었던 ‘비사회인’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돌아이 보존법칙’에 따라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돌아이들과 ‘사회생활’이라는 바로 다음 문제가 등장했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부다페스트로 이주하면서도 인생은 매번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면 바로 다음 미션이 생성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장애물 달리기를 했던 날이 생각난다. 운동장에는 생각보다 높은 허들, 뜀틀 등이 

규칙적으로 놓여있었고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모든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완주를 

해야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운동 신경이 없던 한 친구는 그만 뜀틀을 넘지 못하고 그 위에 털

석 앉아 버렸다. 모두가 박장대소했고 그 아이는 울면서 기권했다. 또 다른 아이는 꽤 많은 장애

물들을 넘어뜨렸지만 개의치 않고 완주를 했다. 어떤 아이는 장애물을 넘지 않고 옆으로 비켜가

는 반칙을 써서 완주를 했고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장애물 달리기의 모범 예시를 보여준 아

이도 있었다. 인생은 장애물 달리기와 닮았다. 계속 달리면서 순간 마주하는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이내 다음 장애물을 향해 달리고 달리는 것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장애물 하나를 

넘었다고 그 성취감에 취해 경기 전체를 포기할 텐가? 또는 무수하게 놓인 장애물 중에 하나를 

못 넘었다고 경기 전체를 포기할 것인가? 



Jackson Pollock One: Number 31, 1950, Oil and enamel paint on canvas , 269.5x530.8cm 


각자의 인생 앞에 놓인 장애물은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계속 달려 완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렇게, 인생은 눈앞에 놓인 장애물 하나만 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를 긴 호흡을 가지고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찰나의 성취감이 아니라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

이다.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그 의미를 발견하고 매 순간 그 안에 

기쁨을 느껴야 인생이라는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를 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번

의 성공으로 자만하여 경기를 포기하거나 혹은 한 번의 실패로 경기를 포기하거나를 반복하여 스

스로의 삶에 지쳐갈 것이다. 


2.

나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제2인 인생을 살겠노라며 남편과 함께 중년의 나이에 부다페스트로 이주를 했다. 원하는 분야의 연구하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꿈꾸던 삶이었고 이주를 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 꿈은 바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한국에서 내가 느꼈던 결핍은 이주하자 어렵지 않게 채워졌다. 


그런데 이주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에게 또 다른 미션들을 제시했다. 이주 전에는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해외 거주 경험도 있었고 미술계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국제전시를 담당했기에 다양한 문화권의 외국인들과 일을 했었고 그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난항을 겪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로 이주를 결정하기 전에 남편과 나는 사전 답사 겸 방문을 해서 이곳의 사정을 나름 속속들이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행이었지 이주는 아니었다. 이전에 해외에서 거주를 할 때도 ‘한국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정해져 있었고, 해외 출장도 부다페스트로의 사전 답사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갈 ‘집’이 있는 상태에서 떠나온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 돌아갈 집이 없다. 물론 돌아갈 날짜도 정해놓지 않았다. 부다페스트로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이주를 하여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주 전 우리는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감히 상상도 못 한 채 이곳에 불시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삶은 ‘일상’에서의 생존이라는 꽤나 거대한 미션을 우리에게 던졌다. 


한국에서는 큰 문제없이 살아가던 일상, 관공서에 가고 전기세, 가스비를 내는 너무나 쉬운 일들이 이곳에서는 모두 넘어야 하는 장애물들로 다가왔다. 산악지대와 같은 고립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강인해지고 고통을 감내하고 싸울 수 있게 되는 건 그들의 일상이 순조롭지 않아서이다. 이주자의 삶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설고 고립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자들은 모국보다 강인해진다. 이주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을 일상 속에 심어두었고 나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장애물들을 뛰어넘기 위해 강인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내 생에 그 어느 때 보다도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에 집요하게 대해 생각한다. 


이주 후, 인생이 끝없는 허들이 있는 장거리 달리기임을 알았기에 나는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알아내는데 열심이다. 생의 기쁨이 없이는 이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를 완주하기 함 들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아몬드 열 알을 먹으며 느끼는 기쁨,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조깅을 하는 기쁨, 맛있는 음식을 남편과 함께 먹는 기쁨, 갓 내린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사색에 잠기는 기쁨, 책에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읽었을 때의 기쁨 등 나는 가능한 하루의 일과에서 자주 기쁨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앙리 마티즈, 생의 기쁨, 1905~6


그리고 졸업을 한 내가 매일 도서관에 가서 전공 서적을 읽으며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 것이 미스터리인 나의 20대 친구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자면, 졸업을 했건 안 했던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그리고 내일도 글을 쓰고 있는 인생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난 2년간 대학원에서 연구했던 것을 한국에서 출판하기로 했다. 흥분도 되고 부담도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출판을 하건 안하건 나는 계속 글을 쓰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하니 쓸데없는 집착이 놓이고 글 쓰는 것에만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박사학위 지원을 준비 중에 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사에 합격을 했다고 해서 그리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삶의 의미를 글을 쓰는 것에서 찾았다. 그것이 전공분야인 예술에 대한 글 일 때도 있고, 이렇게 순수히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한 에세이 일 경우도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나는 어쨌든 글을 쓰는 삶에서 나의 생의 의미를 찾았고 그 안에서 안전함을 느낀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20대에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나이는 상관없다. 그것이 나를 위한 생의 기쁨을 찾고 의미를 찾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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