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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Sep 28. 2023

천억짜리 힐링코스

Something Useful 

1

2023년 4월, 학기 중에 석사 논문을 제출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캠퍼스의 고목에서 푸른 나뭇잎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의 상쾌함을 더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는데 이상하게 어디선가 내 이름이 들리는 것 같다.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니, 풍성한 아프로 헤어를 가진 나이지리아 출신 데보라가 캠퍼스 저 끝에서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든다. 


“켈~~~ 리~~~!”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부름에 호응했다. 

그녀는 나를 좋아한다. 구체적으로는 나를 좋아한다기보단, 한국인인 나를 좋아한다. 처음 강의실에서 만난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면서 내 연락처를 받아가더니 학교 어디 서건 나를 보면 반가워한다. K 컬처의 힘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이제 해외에서 단지 한국인이라는 국적만으로도 환영받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오늘도 나를 보고 신이 난 데보라는 지난주에 처음으로 신라면을 먹어봤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음 주에 학교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Job Fair) 함께 가자고 졸랐다. 


평생 취업 박람회라는 곳에 가본 적 없는 인문학도인 나는 귀엽게 강요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취업시장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인재들을 대상으로 취업 박람회를 하는 곳에 기업의 채용담당자들보다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 아줌마가 등장하여 20년의 경력을 보여준 들 누가 관심이나 주겠는가? 그런데 학위논문을 제출하고 나니 일상이 조금 여유로워졌고, 갑자기 평생 한 번도 안 가본 ‘취업 박람회’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증이 생겨 가보기로 한 것이다. 



Eötvös Loránd University (ELTE) 인문대 
Eötvös Loránd University (ELTE) 공대 


취업 박람회에 등록을 하고, 트램을 타고 도나우 강 건너 부다에 있는 학교의 공대 캠퍼스에 도착했다.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같은 학교의 건물이라고 하기엔, 차이가 극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과는 달리, 부다페스트의 대학들은 도시 곳곳에 단과대가 흩어져 있다. 가끔 캠퍼스가 있는 단과대도 있지만 도심의 건물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운이 좋게, 내가 다니는 인문대는 페스트 시내의 중앙, 지하철 2호선 아스토리아역에서 내리면 바로 있고 작게나마 캠퍼스가 있다. 건물은 전형적인 유럽의 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1635년에 개교했다는 것을 입증하듯 학교 건물들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설이 매우 낡았다. 추운 겨울에 창문이 잘 안 닫혀 오들오들 떠는 것은 기본이며,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할 정도로 벽은 두껍고 천정은 높다. 때문에 와이파이가 잘 안 잡혀 수업에 난항을 겪는 것은 다반사다. 그런데, 여기 공대는 무슨 일인가? 마치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어딘가에 있을 법한 반듯한 직선으로 설계된 강화 유리 외벽을 가진 최신식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학교에 들어가는 듯한 얼떨떨한 기분으로 페어가 열리는 홀에 들어가서 데보라에게 연락을 했더니 답장이 왔다. 


“미안 켈리. 나 오늘 사정이 생겨서 못 가. 잘하고 와.” 


이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왜 유명 연예인의 캐스팅 비화를 들어보면, 우연히 연예인 지망생 친구 들러리로 따라갔다가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는가! 


그런데, 혹시 내가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어 취업제의를 받는 건가? 

라는 되지 않은 망상도 잠시…… 


수 십 개의 기업의 부스에서 나의 이력서를 보고 “미안, 우린 인문학 전공자는 안 뽑아.”라고 동일하게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일 순위 전공은 공대, 거기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이들은 서로 모셔가지 못해 안달이었고, 그다음은 경영대에서 금융, 회계, 데이터 사이언스 등을 전공한 이들을 선호했다. 기껏해야, 관심을 보인 곳은 대학 학위의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을 뽑던 H&M 매장 관리직원이었는데 그나마도 헝가리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2.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한국에서 미디어를 통해,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만났던 학생들의 취업 고생담을 들으며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박봉과 열정페이를 당연시하던 2000년대 초반 한국 미술 현장에서 일하면서 몸소 경험한 바이다. 


마흔이 넘어 인문학 석사를 한 개도 아닌 무려 두 개나 가진 동양에서 온 중년의 여성에게 취업의 문이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취업시장의 인력군상 중에 가장 쓸모없는 취급을 받으니 매우 불쾌했다. 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수년 동안 책과 씨름하며 공부하고 써 내려간 내 논문의 효용가치, 그러니까 결국 내가 공부했던 철학, 예술, 문학의 효용가치는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취업 시장에서는 0에 가까웠다.   


인문학은 ‘돈’으로 환산되는 취업시장에서 정말 효용가치가 없는 학문일까? 

답을 하기 위해, 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자. 

출처:https://www.sanatlayasamak.com/index.php/2021/01/07/pelin-esmerinise-yarar-bir-sey-film-incelemes

" 터키의 한 기차역, 중년의 여성이 밤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레일라(Leyla), 42세의 변호사이다. 25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밤기차를 탄 그녀는 우연히 20세 초반의 젊은 여성 카난(Canan)과 합석한다.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레일라는 카난이 간호학교를 막 졸업하고 한 병원에 간호사로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딘지 불안해 보이던 카난이 변호사인 레일라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타인이 자살을 돕는 것이 얼마나 큰 법적 책임을 불러일으키는 지를. 눈치 빠른 레일라는 곧 카난이 사지가 마비된 한 남성의 자살을 도와주려 하는 계획을 알게 되고 그녀의 계획에 합류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남자 앞에 두 여성이 도착한다. 그리고 사지가 마비된 남성의 손에는 Something Useful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들려 있다. 남성은 죽기 전에 자기 앞에 나타난 레일라를 보고, 당신의 시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한다." 


터키 감독 펠린 에스메르(Pelin Esmer)의 2017년  영화 썸띵 유즈풀(Something Useful)의 플롯이다. 내게 이 영화는 시를 계속 쓰기 위해 변호사일을 하게 된 한 시인의 이야기이다.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변호사의 일이 쓸모 있는 것인가, 사지가 마비된 남성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시를 쓴 시인의 일이 쓸모 있는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지가 마비된 한 남성의 삶을 끝까지 지탱하게 해 준 이 시인이 ‘시'가 사회에서 효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는 관람객을 죽음 앞으로 끌고 가 물어본다. 죽음 앞에서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 후 과연 어떤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쓸모 있는 일이었는지를.  법학이 사회의 질서를 가져다주고, 의학이 병자를 치유하는 매우 유용한 학문인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를 비롯한 인문학은 우리가 왜 법을 따라야 하며, 병자를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준다. 




3.

인문학은 삶의 근간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철학, 문학, 예술 등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다. 물론, 진리, 정의 등 철학적인 단어들을 떠올리면, 그런 것들은 철학자나 정치가들이 하는 소리이고, 취업을 해 돈을 벌고,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밥을 사 먹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믿지 않으실 분들을 위해, 여기 아주 친절히 인문학의 효용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증명해 보겠다.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수백만 원짜리 호캉스를 가고 수백만 원이 넘는 명품을 사는 금융치료를 한다. 그러나 금융치료가 얼마나 지속되는가? 순간이아닌던가? 고급호텔에서 스파를 받는 그 순간 당신의 고통은 치유된 것 같으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전 세계 상위 1%의 똘 아이에 해당되는 당신의 상사를 만나면 고통을 바로 다시 돌아온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인문학도라면 수백억 원 혹은 수천억 원짜리 힐링 코스를 무료로 누릴 수 있다. 지금 당장 미술관에 가라. 가서 지금 나의 고통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작품을 찾아라. 무수한 예술가들이 당신의 삶의 안녕을 위하여 엄청나게 고액의 작품을 남기고 갔다. 당신 삶의 고뇌와 기쁨과 사랑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경우, 마음이 복잡하고 심난할 때 주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본다. 작품을 보며 자연스럽게 유도되는 명상과 함께 ‘내가 언젠간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출처:https://www.archdaily.com/160388/ad-classics-rothko-chapel-philip-johnson-howard-barnstone-eugene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 미술관의 상설전시장에는 마크로스코의 작품이 몇 점 있다. 참고로 2012년 마크 로스코의 <오렌지, 엘로>(1964)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천억 원에 낙찰되었다. 만약 당신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인문학을 공부했다면, 리움 미술관에서 천억의 힐링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세상을 바꾼 기업인들은 이미 이러한 힐링 코스를 알고 있었다. 잡스가 영감을 받기 위해 마크 로스코의 작업을 보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 아닌가! 이렇게 인문학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사는 세상은 천지차이이다. 천억짜리 힐링을 무료로 즐기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 무제한 사용가능한 이런 인문학 힐링을 수백만 원짜리 호캉스와 수천만 원짜리 명품에 비할 수 있나? 


물론 당신은 불평할 수 있다. 미술관에 가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아무리 편한 가전제품도 사용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모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 낯설고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이 천억 원이나 주고 사는 작품에는 분명 무슨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해라. 먼저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고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하건 책을 읽건 작품에 대해서 알아가라. 그러면서 천천히 예술가들이 왜 해당 작품을 그렸는지 그들이 느꼈을 고통이나 기쁨을 자신의 인생에 대입해 봐라. 이렇게 인문학을 삶의 곁에 두면 수천억 원짜리 힐링을 무료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의 가치로만 따져도 인문학은 충분히 생산적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을 당신은 돈으로 환산하여 지불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가? 인간을 모두 각자의 삶을 통해 희로애락을 겪는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 급작스러거나 충격적이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하여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철학자, 예술가, 문학가들은 자신의 책과 작품을 통해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인문학은 삶의 길잡이이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인생의 길잡이 말이다.  


고백하건 데,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몇 번을 수정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내가 인문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쓸모없는 취급을 받았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글을 쓴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그러나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이주를 하고 가장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내 삶의 의미와 기쁨을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인문학은 이를 위한 너무나 훌륭한 안내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도움도 없이 혼자서 세상을 헤쳐 나가며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옆집 아줌마의 시 덥지 않은 말에도 상처를 받는 유리 멘탈을 가진 이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도움은 책과 음악, 예술의 형태를 통해 우리 주변 어디든지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인문학자인 세상을 꿈꿔본다. 변호사이면서 시인, 슈퍼주인이면서 화가, 프로그래머이면서 바이올리니스트, 가정주부이면서 소설가, 정치인이면서 설치미술가 등 모두가 인문학을 업으로 삼으면 어떤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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