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짜 바뀌어야!

다르지 않다. 정말 다르지 않다.

by jcobwhy

나는 ‘한국 남자’다.


가부장적인 대한민국 땅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자. 수십 세기 동안 공고히 누린 암묵적 권력.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에서 휘둘러 온 ‘남자’의 권력은 실로 엄청났다.


내가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 같이 공부하던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무리 미국에서의 삶이 좋아보이고 기회의 땅이라고 해도, 한국 남자에게는 참 살기 힘든 환경이라고. 하나는 우리가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미국이 한국보다 남자에게 주어지는 어드벤티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 안에 우리나라가 누구에게 배타적이고 차별적인지 잘 보여주지 않는가?


“이건 옳지 않아!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같은 일을 한다면 월급이 같아야지! 같은 성과를 냈다면 승진의 기회가 같아야지!”


난 나름 성 평등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소극적인’ 형태로 우리나라에 이런 환경이 빨리 조성되어야 한다고 늘 ‘주장’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깨어있는’ 생각이라며 호응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난 ‘합리적인’ 생각을 ‘소극적’으로 ‘주장’하며 ‘깨어있단 평’에 ‘우쭐’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만 하며 만족하고 있었지, 실질적으로 뭔가 노력하는 것도 없었다. 집안일을 곧잘 분배해서 하고는 있지만, 그건 깨어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엘레브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난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지만, ‘감정’에서 드러난다. ‘양성 평등에 대해 찬성’하고 ‘집안일도 육아도 분담’해서 척척 해내는 ‘멋진 남자’가 감정이 스윽! 올라온다. 그런 나의 ‘멋짐’이 그냥 흘러가 버려서 억울한 것이다.


감정은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이나 생각의 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코스프레와 진또배기를 구별해 준다. 감정이 드러난 상태에서 하는 말들이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이다.


난 코스프레였다.


핑계는 있다. 내가 뭘 어떻게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가정에서 자라며 그런 교육을 받았고, 그런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적응하려 애쓰며 살아왔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보다는 적응과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 아닌가? 하지만 자랑도 아니다. 핑계부터 줄줄이 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건 이상한 것이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왜냐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아직까지 이런 류의 서운한 감정이 올라온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양성이 평등하지 않은 것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한 사회까지 가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논리로는 분명 알고 있다. 그게 정상은 아니라는 것. 아직까지 양성이 완전히 평등한 단계까지 가지 못한 것은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단계에 가면 나는-그리고 한국 남자는 더 불편해질 것이다. 이제까지 가진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던 것들을 아마도 가지지 못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억울해하지 마시라.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내 아내와 딸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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