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2017 5월 26 푸른 음악회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큰누나를 데리고 누나의 아빠 엄마는 덕수궁 야외의 저녁 음악회에 함께 참석했다. 큰누나가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지휘자 금난새 교수님의 사회로 진행된 클래식 음악회로 소프라노와 바리톤 가수의 독창도 있었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지휘자가 직접 진행하는 미니음악회의 저녁 기온은 큰누나에게는 조금 쌀쌀했지만, 누나 엄마는 준비한 두툼한 스카프를 둘러주고 자주 살폈다. 누나네 가족이 좋아하는 금난새 교수님의 즐거운 사회와 경쾌한 웃음 유도는 5월 초여름 밤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큰누나와 가족에게 안긴 우울함을 털어내려는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병원에서는 누나와 누나 엄마는 자발적인 을이 되어 의료진의 눈치를 보며 우울이 쌓인다. 물론 의료진 입장에서는 진상 환자와 보호자들로 인한 고단함이 있겠지만...
신장내과와 갑상선 내과의 칼슘제 중복처방이 이어져 발생했다고 진료기록지에 기록된, 그리고 갑상선 내과의가 직접 병실을 방문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던, 이후 이왕 신장 상황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하게 된 신장내과에서만 전해질 관련 약 처방을 전담하도록 의료진끼리 의논하여 정리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누나의 급성 신부전 입원 병동을 담당하는 젊은 여성 주치의의 새벽녘의 무례한 대거리는 엄마가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덕수궁의 상쾌한 저녁 음악회는 큰누나와 엄마의 울적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작은 누나가 제안한 굿 아이디어이다.
10만 명 중 하나라는 부작용이 100%의 확률로 큰누나에게 씌워진 것은 시시때때로 누나 엄마의 평상심을 놓치게 만든다. 청와대 청원도, 의료 소송도 의료행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더더욱 한심하다. 갑상선 전절제로 만성신부전 등 황당한 병증을 겪는 것은 오롯이 환자가 감당할 몫일뿐이다. 큰누나네는 온 가족이 큰누나의 건강 회복에 동참 중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누나 엄마는 큰누나 앞에서는 편안한 척 표정을 관리하며, 생각 끝에 의사의 권위를 존중하는 선에서 엄마 생각을 젊은 직선적인 주치의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기로 했다. 환자들 앞에서보다는 면접실에서 직접 만나기로. 사실 예민해진 큰누나의 편안한 정서에 대한 배려이다.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한 뒤 엄마의 노여움을 주치의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에 출근한 그 주치의가 큰누나의 병실로 찾아왔다.
"아침마다 이동식 X-Ray를 찍는 이유는 환자가 '급성 신부전증을 겪고 있어서' 라며 엄마의 불쾌함에 대해 사과했다. 전해질 균형을 위한 링거를 매일 꽂고 있으므로 혹여 '폐에 물이 차오르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징징대고 싶은 상황을 겪는 환자들과의 일상이니 의료진의 무수한 어려움들이 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우려와 두려움을 품은 환자 측의 소심한 물음에 퉁명스러운 의료진의 응답은 환자의 마음에 또 하나의 우울을 넣어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환자에게 우울증 약보다 따스한 대화와 위로가 '명약'임을 의대 초년생 시절에 배웠을 텐데... 직업이 힘들다고 해서 무례한 대거리가 그녀의 스트레스 탓으로 정당화될 순 없다.
Australia에서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 시절 불리한 상황에 처한 누나 아빠는 사무실에서 한국식의 밤샘근무를 일삼다가 결국 엄마의 원성을 샀다. 과로와 감기몸살을 앓으며 눈앞이 어질거린다던 아빠는 누나 엄마의 불친절한 부축을 받으며 동네병원 가정의를 방문했다.
그때 누나 엄마는 거구의 여의사가 자신의 담요를 들고 나와 열에 들뜬 아빠 어깨에 둘러주고, 큰누나처럼 다독여주는 모습에 조금 무안했다. Dr. Angestman의 큰누나 같은 배려를 보며 오는 길 내내 불친절했던 누나 엄마의 화도 줄어들었다.. 당장 열을 내리기 위해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대는 일보다도, 환자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일을 먼저 하던 그녀는 다섯 남매의 엄마이자 개업의였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환자를 맞이하는 그녀는 늘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환자를 맞이한다. 성인 남자 환자를 'Sweet Heart'로 부르며 다독여주는 그녀 앞에 앉는 순간 환자의 몸살감기 절반은 너끈하게 날아가버리는 듯했다. 누나 엄마는 닥터 앵스만의 어깨 담요를 두른 채 어리광이 받아들여진 어린아이처럼 편안해지던 아빠의 얼굴을 기억한다. 진료가 끝나고 진료실에서 나올 때는 약국에서 처방약을 아직 받기 전인데도 누나 아빠는 누나 엄마의 부축 없이 잘 걸어 나왔다.
최근 국내 병원도 2002년 누나 엄마가 편찮으신 부모님과 방문하던 때보다는 방문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제도가 시스템화 되고 있어 다행이다.
그날 밤 오월 덕수궁의 상쾌한 음악회의 위로가 누나네의 우울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