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과 잣방울

의사가 주는 상처

by 윤혜경

*봄날 아파트 입구에 자비로 베고니아 화분들을 마련해 놓은 60대 경비아저씨의 배려~**

호텔 요리사였다는 사연을 품은 그는 일터에 대한 고마움 표현이라고 했다.


2017. 5.


경비아저씨가 마련한 베고니아 꽃들을 살피느라 누나네 엄마는 이곳을 지날 때는 게처럼 옆으로 걷게 된다. 눈길이 베고니아에 얹히면 꽃화분이 끝나는 지점까지 어쩔 수 없다. 보고 또 봐도 처음 보는 것처럼 엄마의 눈길은 베고니아 화분 위에 골고루 머문다. 큰누나도 덩달아 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넌 앞을 보고 걸어. 넘어질라~"


누나 엄마는 누나에게 주의를 주면서도, 꽃에 눈길이 갈 만큼 여유가 생긴 큰누나의 몸 상태가 고맙다.


그러던 중 요즈음 부쩍 메스꺼움이 심해지면서 큰누나는 누워있는 시간이 잦고 길어졌다. 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탁구레슨 20분을 반으로 줄여서 10분만 받는데도 큰누나는 몸이 버겁다고 했다. 집에서도 앉아있는 자세보다는 베개를 높이하고 누워있는 자세가 편한가 보다. 이제 누나 상태에 대한 엄마의 촉도 제법 예리하다.


엄마가 해주는 손발과 배 마사지를 통해서 잔잔한 온기가 돌기 시작하던 누나의 몸이 다시 차가워진 상태를 확인한 엄마는 누나의 체온을 재고 병원 응급실로 문의를 했다.


몇 번의 응급상황을 겪은 뒤에 신장내과와 신경과 전문의는 누나의 불편한 상태가 보이거든 빠르게 응급실로 가서 신장과 방광 관련 혈액검사부터 요청하라고 했었다. 누나를 위한 개인병원 진료와 약 처방은 다니고 있는 대학병원 약국과 전화상담을 통해서 의논 후 실행하도록 조언을 받았다. 누나네 거실 소파 한편에는 누나의 입원 준비물 가방이 서있다.


응급실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병원 구내 약국 약사와 상담을 권했다. 어렵게 통화연결이 된 약사는 응급실로 들어오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만성신부전에 급성신부전 상태가 추가되어 매번 그러하듯이 응급실 대기실 휠체어에서 링거를 맞고 호명을 기다리며 각각의 검사들을 받으며 막연한 대기 과정을 20시간 가까이하고 응급실 자리에 누었다.


그리고 하루가 온전히 지나고 밤에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누나의 팔엔 늘 그렇듯 주삿바늘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고 혈액 소변검사에 이어 심장초음파와 뇌파 검사로 이어졌다.


입원실에서는 수액주사를 통해 신장과 방광 내의 칼슘과 나트륨, 요산을 배설시켜 높은 수치를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른 아침마다 이동식 엑스레이로 큰누나의 폐를 찍었다. 비의료인인 누나 엄마는 누나의 상황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반복되는 누나의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두렵다.


"왜 엑스레이를 매일 찍는 건가요?"


이른 아침 뒤이어 들어온 큰누나 또래의 여성 주치의에게 누나 보호자가 낮은 음성으로 소심하게 물었다.


"찍어야 하니까 찍죠!"


다른 침대의 환자와 보호자까지 충분히 들을 수 있게 젊은 여의사는 큰 목소리로 퉁명스레 내뱉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이른 아침에 엄마는 큰누나 앞에서 이런 대화를 듣게 한 자신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조용히 복도로 나가서 물을걸... 아니 '아침식사 끝나고 전담 간호사에게 물어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큰누나는 젊은 여의사의 무례한 대거리를 목격했다. 큰누나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무례함을 겪는 장면으로 기억할 게다.


아동 전통놀이치료사 자격증 과정에서 준비물인 '솔방울'과 '잣방울'을 구별하지 못하고 길쭉한 솔방울을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간 적이 있다. 강사가 팀에서 놀이교구 제작에 필요한 솔방울에 대한 규격 등의 사전 정보 제공이 전혀 없이 '다음 시간 준비물로 솔방울을 가져오세요." 했다.


엄마는 누나와의 뒤뜰 '햇볕 바라기' 중 눈에 띄었던 솔방울이 생각나서 팀원들이 필요한 숫자만큼 가져가기로 약속했다. 사실은 첫 시간에 배부된 교재에 이미 시간별 교구 자료가 나와있는데, 자격증에 관심 없는 누나네는 수업시간에만 책을 펼쳐 들었으니까 미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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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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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방울



다음 주 수업 시간에 수업 담당 강사는 엄마가 준비한 기다란 솔방울을 보더니


"그건 소나무 솔방울이 아니고 잣나무 솔방울이에요. "



했다.


"아, 솔방울이 아니에요?"


잘 씻어서 말려온 솔방울을 '쓸데가 없다' 하니 눈이 커진 엄마는 많이 머쓱했다. 다른 팀에서 엄마팀에게 나눠준 솔방울은 짧은 길이에 앙증맞은 크기였다. 나무젓가락 끝에 귀여운 솔방울을 실로 메달아 종이컵을 들락날락하게 하는 전통놀이용 교구를 무사히 만들었다.


국내외 전학으로 인해 누나들만 국내 어린 시절 교육과정이 생략된 게 아니라, 엄마도 누나들 어린 시절 교구 준비 경험이 없으니 사소하게 비어있는 경험들이 있다. 12년 비운 국내에서의 시간만큼 생활지식도 자주 부족하다. 누나 엄마는 특히 문과 전공자로 자연생활 관련한 지식이 부족함을 자주 실감한다.


4인 입원병실에서 새벽에 맞이한 젊은 여의사의 환자 보호자에 대한 무례한 방식의 응답은 솔방울과 잣방울을 구별하지 못해 무안했던 순간보다 더 고약했다. 두 번 모두 큰누나 앞에서 드러난 엄마의 어리숙함이라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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