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누나의 첫 번째 행운

2평 텃밭의 평화

by 윤혜경
*누나의 행복을 보충해주는 Green 또 Green ~


탁구장에서 만난 키가 큰 50대의 탁구 선배 여사는 세탁소를 운영하면서도 농사에 대한 소소한 상식이 많았다. 농촌에서 성장한 남편이 농사에 일가견이 있어서 세탁소에 나오기 전 새벽에 경기도에 위치한 텃밭에 들러서 관리하고 나온다고 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뜨거운 한낮의 여름날 그녀는 누나 엄마에게 탁구장이 있는 건물 옥상의 플라스틱 상자들에서 재배한 상추와 고추들을 보여주었다. 멀건이 서서 잘 자란 초록이들에 붙들린 누나 엄마에게 탁구 선배 여사는 물만 주면서 키웠다는 건강 상추를 한 아름 솎아내어 건넸다.


어느 날엔가 다시 초대받은 옥상의 상추 밭에서 60대의 다른 탁구 선배 여사와 상추 잎을 따면서 엄마는 요령 머리가 없어 60대 탁구 선배 여사의 지적을 받았다. 그녀 또한 농촌에서 자라서 텃밭 상추 재배에 필요한 상식은 단단했다. 농번기에는 친정의 농사와 과수 일을 짬짬이 돕는다고 했다.


그녀는 상추 잎을 뜯을 때는 상추 중앙의 몸통대에 바짝 붙여서 뜯어야 물 낭비가 없이 남은 상추 잎들이 잘 자란다고 했다. 새로운 지식들과 함께 얻어온 여린 상추들은 보드랍고 단맛이 났다. 그날은 향긋한 연초록빛 상추 덕분에 누나네 가족 모두 오랜만에 행복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했던가?


엄마는 노년 입구에 서서 여전히 모르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며 조금 답답해졌다. 그렇게 보드라운 초록이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누나가 아픈지 3년째인 2017년 봄, 누군가가 건네준 정보 덕분에, 큰누나의 이름 아래 세 평이 채 안 되는 구청 텃밭이 당첨되었다. 큰누나가 아픈 이후 누나의 이름에 첫 번째로 행운이 붙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누나, 아빠와 함께 상추, 깻잎, 고추, 비트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가늘어진 큰누나는 어지러워서 텃밭 쉼터에 앉아있거나 텃밭의 길가에 정차한 차 속에서 누운 채 두 사람의 노동이 쉬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덕분에 큰누나는 차속에 누운 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엄마는 주 1~2회 방문해서 텃밭 한쪽의 수도시설에서 길러온 물을 뿌려주었다. 텃밭은 나무상자로 구획되어 있고, 여름 햇살에 노출된 모판흙들은 쉽게 건조했다. 모종 상추는 걸핏하면 고개를 숙이곤 해서 텃밭 노동에 수동적인 아빠를 채근해서 적어도 주 2회 방문을 하게 된다.


텃밭농사... 서울 근교에서 밭을 빌려 가족 식단 채소를 키우는 사람, 양평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어 주중에 거주하며 어린 손주들을 위한 다양한 작물의 주말농장을 가꾸는 은퇴 부부도 있다. 주말농장 초대에는 누나가 장시간 차 타기가 어려워 못 갔지만, 늘 따스해서 큰누나가 마음을 열었던 부부이다. 전문 농사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보고자란 경험들과 노력이 더해져서 소소한 지혜가 많은 탁구 선배들이다.


탁구장에 가서 텃밭 모종과 작물 종류들에 대한 정보교환이 늘면서 누나네의 탁구 연습 시간이 30분에서 10분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속 가득 우울이 찰랑대는 누나 엄마는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초록 상추에 빠져들었다.


병원에서는 큰누나의 칼슘과 철분 수치가 지속적으로 낮다며 추가로 약을 처방해주었다. 상추 구획 옆에 심어놓은 깻잎 모종 세 그루는 빈약하다. 늦었지만 들깨 씨앗을 사서 파종했다. 그리고 물만 먹고 풍성하게 열린 들깻잎은 시판 깻잎의 절반 크기로 자랐다. 엄마는 여린 깻잎을 양념하거나 쌈, 무침 등으로 반찬을 만들었다, 누나의 철분 섭취에 도움이 된다는 식품이므로.


고수도 심었다. 큰누나가 좋아하는 고수 채소를 얹어서 월남쌈을 향긋하게 먹을 수 있게. 큰누나가 연하게 순이 오르는 고수 모종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모종 옆에 고수 씨앗도 심었다. 고수 씨앗은 물에 하룻밤쯤 불려 심는 게 좋다는 것을 다음 해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갑상선 전절제 수술과 함께 누나는 칼슘조절장애를 겪던 중 1년이 채 안되어 갑상선과 부갑상선 저하증에 더해서 칼슘조절 장애와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입원 치료를 몇 번 겪었다, 그리고 만성신부전과 자가면역질환이 추가 병명으로 기록되었다. 수반되는 심장 관련 성인병 명칭이 추가로 진단되고, 만성신부전 환자 수첩도 생겼다.


나이가 지긋한 신장 전문 여의사는 혈액과 소변 검사 결과인 전해질 수치의 변화를 누나 신부전 수첩 칸에 적어 넣으며, 창백한 혈색의 큰누나와 눈을 맞추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말로만 듣던 만성신부전증이 기어코 큰누나에게 내려지고 만 진단 결과에 근심이 가득 내려앉은 엄마에게 의사는 웃음 띤 온화한 표정으로


"신장은 한번 상하면 더 나빠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했다.


신장기능 회복을 해주는 약이라는 것은 없다, '마음을 굳게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도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은 신부전 환자가 주의해야 할 식사 관련 상식을 위한 식단 영양 전문상담사와의 상담시간이다. 그곳에서 누나의 식단표를 제공받았다. 식단 관련 상담사는 평소 누나의 음식 섭취 습관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A4 용지에 주의사항과 권장사항을 적으며 설명했다. 누나 엄마도 자신의 수첩에 열심히 메모를 하였다.


만성신부전은 야채도 육류도 조심해서 섭취하라는데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할까? 엄마의 두 눈에 비치는 앳되고 양순한 큰누나는 여전히 예쁘고 젊은데, 추가되는 병명들은 고약하다. 다음에는 또 어떤 충격이 기다리고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경쟁률이 꽤 높았다는 이번의 구청 텃밭 첫 당첨이 자신의 불운을 슬퍼하는 큰누나에게 초록빛 희망으로 다가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두어 평의 연초록 평화가 큰누나에게도 지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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