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

그 막막함이라니

by 윤혜경

*텃밭 상추 옆에 뿌려둔 씨앗 중 콩과 식물의 꽃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첫 귀국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큰누나에게 역사를 보여주던 경주 박물관의 술병



큰누나가 신경과에 입원하여 검사를 하기로 한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검사 예약하고 기다리는 와중에 또 의식소실 이벤트가 생길까 봐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1인실이니 누나와 엄마가 함께 다른 사람으로 인한 부산스러움 없이 잘 지낼 수 있겠다. 이번엔 병원에서의 큰누나와 엄마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성인용 색칠하기 책과 에세이 두권, 그리고 유자차 재료와 누나가 좋아하는 도자기 컵 세트, 미니 쟁반, 티스푼 세트도 함께 준비했다.


엄마는 병원의 묵직한 누비이불에 숨이 차는 누나를 위해 1인용 얇은 거위털 이불과 개인 베갯잇을 준비했다. 보호자용 침구는 큰누나가 1년 다닌 중학교 때 걸스카웃 활동차 구매한 침낭으로 준비했다. 소소하게 큰누나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까?


신경과 검사를 위한 입원병실에서 누나 엄마는 큰누나가 2015년 4월 갑상선 유두암 발견으로 전절제 수술 후 발생해온 그동안의 누나 몸의 이벤트들을 설명했다. 면담하고 충실하게 기록하는 전공의는 성실한 대학원 조교처럼 정중하게 묻고 환자와 보호자의 답변을 기록했다. 사실 누나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누나 엄마가 대답했다. 무엇보다도 정중하고 교양이 있어서 병원 생활 중 모처럼 마음이 놓였다. 사실 가장 불안한 결과를 가상하는 상황에서.


여린 표정의 큰누나는 옆으로 누웠다. 누나를 새우처럼 구부린 자세로 인도한 전공의는 30분에 걸쳐 누나의 척추에서 여러 통의 척수액을 뽑았다. '자가면역질환 관련한 전문의의 연구논문을 위한 큰누나의 척수액도 보호자의 동의 아래 1통 더 뽑았다. 그리고 천정을 향해 4시간 동안 베개 없이 반듯이 누워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환자 보호자는 옆에 앉아 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지켜보아야 했다.


큰누나의 상태에 대해서 누나 엄마는 후회가 많다. 큰누나가 갑상선 항진증을 앓기 시작했을 때 더 들여다볼걸... 큰누나의 갑상선 항진증을 새끼손톱 절반만 한 크기의 작디작은 알약 하나를 복용하는 2년여를 동네병원에 너무 의지했었다. 그 병원은 초음파 사진에서 큰누나의 암을 읽어내지 못했고, 대학병원 두 군데는 똑같은 초음파 기록에서 3mm 크기의 암을 발견했다. 사실 그때 큰누나의 상황을 더 들여다봐야 했었는데.. 등등


늘 바쁘게 지내던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기'를 가족 구성원에게 주문처럼 외우며 '자신의 일은 자신이 감당하자' 주의이다. 사실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픽업해주고 거들어주고 동행하며 챙겨주는 일상이지만, 될수록 '자신의 일을 미리미리 대비해서 다른 가족 구성원의 시간 허비를 하지 않게 하자"는 훈장 스타일의 지침이다.


큰누나는 자신이 힘들 때도 순한 얼굴로 단 한 번의 아픔을 얘기한 적이 없다. 갑상선 항진증 진단을 받고도 2년이 지나고서야 병원에서 처방전을 기다리며 엄마는 누나의 손목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때의 누나 맥박은 마치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엄마의 두배쯤 빠르게 뛰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을 터인데... 1년여 동안 체중이 심하게 빠져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언급하지 않았더면 모른 채 지났을게다. 엄마 마음 한편에 큰누나에 대한 알싸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다.


신경과 입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식소실과 경련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의 주요 요소가 큰누나의 척수액과 뇌파검사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최대로 빠른 일정으로 1주일간 입원해서 1단계 자가면역 억제 주사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치료비용은 의료보험은 되지 않으며 주사약 비용이 고가이지만 자가면역치료단계 중 1단계가 그나마 가장 저렴하다고도 했다.


큰누나네는 면역억제 치료를 위한 입원실 예약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자가면역억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그렇게 많다는 것도, 입원실 예약이 수개월씩 밀려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마치 갑상선암환자가 시대의 유행처럼 많았듯이 이제는 자가면역치료가 유행인가 보다.


검사와 치료 단계별로 예약을 하고 '기다리고' 다시 예약을 하고 기다리고'를 반복하며, 누나의 신부전을 포함한 타과의 진료들은 여전히 1~3주마다 검사와 또 다른 외래방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막막함이라니... 이 기세라면 병원의 웬만한 과는 돌아가며 경험하느라 비용 내며 매일 출근할 판이다. 일상이 병원에 기대어서 회복을 희망할 수 있는 단계의 그나마 '운 좋은 환자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이 병원 일정들을 소풍으로 준비하기이다.


겨우 서른 초입에 휘청이는 큰딸을 지지하기 위해 동행에 나선 부모의 일정들은 후순위로 멀찍이 미룬 상황이니, 이왕이면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기이다. 그리고 왕복 이동, 지체되는 시간 기다리기, 약 처방전 조제약 기다리기 등에 소요되는 4~5시간 동안 깔끔하고 상쾌한 병원 방문길 만들기에 적극 나서기이다.

keyword
이전 16화상큼한 초여름 밤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