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새끼도 영락없이 귀여움이 뿜뿜인 아기이다.
*Opossum(주머니쥐)(출처 : Daum)
어둠이 깔리어 거실 등을 켰다. 어젯밤에도 멀쩡하던 천정의 전등이 갓을 쓴 채로 줄이 늘어져 대롱거린다. 그리고 잠시 적막이 유지되고... 천정에 드러난 전등 자리는 예상 밖으로 컸다. 어떻게 천정에 구멍을 뚫어서 전등갓을 꽂았을까? 단독주택이니 외부에서 천정으로 쥐가 숨어들어 지나다닐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다시 올려다본 천정의 구멍으로 까만 눈빛들이 보였다. 점점 더 많은 눈빛들이 모여들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둥글게 뚫어진 구멍 부위를 아주 작은 발들이 마치 아기 손처럼 내밀어 붙들고 더 적극적으로 엄마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처럼 펼쳐지는 천장의 상황에 엄마는 어린아이들을 보호할 생각보다 먼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한밤중에 목소리도 크게...
한적하게 띄엄띄엄 자리한 이웃집에서는 그 비명소리를 못 들었을까?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올려다보니 아무도 없다. 엄마가 보호자인데... 그제야 정신을 잡고서
"뭐지?"
"너희 봤어?"
"엄마도 봤어요? 으아 무서워"
함께 보았으니 천정의 뚫린 구멍 속에 생명체가 있는 건 확실한 거고. '누구에게 물어볼까? 밤인데...'
엄마는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산 지 오래된 교민 가정으로 응급전화를 했다. 이곳에서 정착하는 동안 시간과 비용과 정성을 들여 늘 고마운 손길을 내밀어 준 남편의 대학교 선배 댁이다.
우선, 현재의 자리를 떠나지 말 것
둘째, 거실에서 인기척을 지속적으로 낼 것
셋째, 돌아가며 깨어 있을 것
넷째, 내일 날이 밝아서 전화 통화가 가능해지면 즉시 전화로 담당 부동산소개소에 알릴 것.
그러면 그곳에서 집주인과 연락하여 알아서 처리할 것이므로 이후 걱정 끝!
엄마는 선배의 지침을 들으며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오늘 밤 저 조그만 눈동자들에게 거실이 조용해졌음이 인지되는 순간 뛰쳐 내려와서 소파 등 가구들을 기다란 발톱으로 할퀴며 날뛰고 놀 것이므로 돌아가며 소리 내어 책을 읽다가 졸리우면 TV를 켜서 소리를 내어주라는... 이 친구들도 사람을 두려워해서 덤비지는 않겠지만 다음 일을 어찌 짐작할 수 있겠냐고 걱정을 나누어 주는 고마운 분들...
이런 상황에서 당장은 엄마의 옆지기가 남의 편인 셈이다. 엄마의 옆지기에게는 일단 회사의 원. 투. 쓰리(one two three: 모든 것)가 최우선인 상황이고, 엄마와 마찬가지로 낯선 일 투성일 테니... 엄마에게 회사일을 의논하지 않듯, 집안일은 엄마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엄마의 옆지기의 우산 덕분에 모든 일이 평화롭게 해결된다. 엄마가 하는 일은 문자 그대로 집안일인 식사 준비, 시장 보기, 아이들 챙기기로 하루가 가득 채워지는 수준이니...
Opossum '주머니쥐' 일가(출처: Daum)
그 밤은 인기척을 내기 위해 낮은 소리로 좋아하는 책을 돌아가며 읽고, 학교생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졸음에 겨운 아이들을 소파에 재우고... 순간 모두 잠이 들었나 보다. 거실 유리창 너머 멀리서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천정의 까만 눈동자도 발가락도 몇 차례 목격된 이후 조용히 사라졌다. 천정에서 길게 늘어진 전등 갓과 전등만 대롱거린다.
아침 9시를 손가락으로 세며 기다렸다가 엄마는 부동산 소개소에 전화를 해서 상황 설명을 한다. 상대방은 집주인과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야생동물보호소의 직원이 전화 약속 후 며칠 후 방문할 것이라고... 그리고, 야생동물보호소 직원이 방문하면 지난밤의 상황을 그이에게 설명해 주고, 까만 눈동자와 가지런한 발가락 주인공들의 그동안의 움직임 상태(?)와 출몰 장소를 보여주라고 했다. 언제까지 저 지붕 밑의 침입자들을 목격하고 있어야 할까? 엄마의 급한 마음과 관계없이 워낙 '차분차분, 천천히 사회'라서...
하루가 다시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오전 10시 즈음에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야생동물 보호소에서 연락을 받고 나왔다고 했다. 듣던 바와 달리 빠르게 출동했다. 원래 이곳에선 상냥한 응대 전화 후 내방 날짜가 보통 일주일 후인데... 하룻만에 방문이라니... 야생동물 보호소의 키가 큰 직원은 엄마에게서 상황을 들은 후, 집을 돌아보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틀 후에 다시 야생동물을 유인하는 도구를 챙겨서 다시 들르겠다고 했다. 오늘 당장 해결되지 않음에 엄마는 당황하고... 오늘 밤에도 거실 소파에서 어린 딸들과 천장을 쳐다보며 까만 눈동자 주인공들과 눈 맞춤을 이어가야 한다는...?
본의 아니게 천정이 뚫린 거실에 붙들린 채 긴장된 나날을 연이어 보냈다. 이틀 후에 집 언덕 위에 멈춘 차에서 키가 큰 직원이 3단 사다리와 사과 2알, 그리고 동물 케이지 2개를 들고 왔다. 지붕 아래에서 사과에 칼집을 여러 군데 내어 향기가 퍼져 나갈 수 있게 만든 후, 케이지 안의 두꺼운 갈고리에 꽂았다. 그 직원은 사과향을 폴폴 풍기는 그 케이지들을 그날 밤의 주인공들이 드나드는 지붕 입구에 놓아둔 뒤, 이틀쯤 후에 오겠다고 했다. 단독주택만이 경험할 수 있는 야생동물과의 줄다리기는 그동안 엄마네 몫이 되었다. 행여 또 까만 눈이 내어다 볼까 봐 두려웠다. 그이가 다녀가면서 이미 뭔가 조치를 취한 건지 다행히 한밤중에도 천장 구멍 속의 까만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지붕 아래 뚫린 통로를 잘 막았다고 두 번째 방문에서 엄마에게 말을 했을 텐데, 일상적인 대화 속도로 새내기 외국인인 엄마에게 전달하니, 엄마는 열심히 들었지만 순간 놓쳤을지도...
주머니쥐의 까만 눈동자를 본 지 닷새째 되던 날, 그 직원은 다시 3단 사다리를 들고 나타났다. 지붕 위로 날렵하게 이동한 그가 잠시 후 내려왔을 때에는 그의 양손에 까만 눈동자의 주인공들이 갇혀 있었다. 사과를 좋아하는 주머니 쥐 'Opossum' 가족들이....
(출처 : Daum)
지붕 입구를 철판으로 단단히 잘 막았지만 혹시 다른 입구를 만들어 동물들이 드나들 수 있으니 그런 경우에 직접 전화를 주어도 좋다고 했다. 명함을 놓고 가는 그의 양손 케이지에 들려가는 O'possum'이 영락없는 강아지처럼 작아서 별안간 귀여워졌다. 그리고 엄마의 신고로 인해 끌려가는 동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스며드는 감정 변화라니...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확실히 제공되는 안전한 야생동물원으로 가는 것이니 행복한 여정이길.
집의 채광을 가리는 마당의 나무 한 그루도 마음대로 베어내면 안 되는 이곳에서 그들이 소중하게 가꾸는 꽃과 나무들이 어느 날부터인지 엄마의 눈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늙은 거라는데... 세분화된 쓰레기 분리수거는 한국이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실행했다. 시드니의 1999년은 아직은 신문지와 낙엽만 별도이고, 음식물 쓰레기 가 담아진 비닐봉지와 기타 생활 쓰레기들을 모두 바퀴 달린 통에 한꺼번에 담았다. 그렇게 재활용품 수거일에 세 개의 바퀴 달린 수거함을 집 언덕 위에 올려두면, 아침 일찍 집안에서도 들릴만큼 요란한 소리를 내는 대형 쓰레기차가 한 번에 수거해간다. 처음엔 답답함으로 다가오던 그곳 생활의 '느림과 여유로움'에 조금조금 젖어들었다. 그리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느려지기 시작했다.
캥거루처럼 배에 아기 주머니가 달려 있어 아기를 담고 다닌다는 Opossum- '주머니 쥐' 가족이 그렇게 조용히 떠나고, 마당의 회전 빨랫줄에는 반려견인 요크셔테리어 '럭키'의 통조림 고기에 눈독을 들인 '쿠카바라'(Kookaburra)가 둥그런 눈을 굴리며 날아 앉았다.
작은 서울이는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 꽃과 얘기하는 엄마처럼 작은 서울이는 어항 속의 금붕어랑, 베란다의 토끼와 이야기를 한다. 엄마의 두 딸인 큰 서울이와 작은 서울이는 '새가 배가 고픈가 보다'라고 했다. 그리고, 체중이 채 3kg가 안 되는 강아지 '럭키'의 넉넉한 통조림 고기를 나누어 주곤 했다. 그렇게 옥색 깃털이 섞인 쿠카바라는 Opossum 대신 가족으로 뭉쳐서, 두 서울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엄마네의 아침을 여는 자명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