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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뿌려진 씨앗 한 톨

시드니의 반려견

by 윤혜경


*1998. 1. 4개월령인 어린 럭키와 리드 줄 매고 걷기 연습 중인 6학년 작은 누나


서울아파트 거주 중 동물을 워낙 좋아하는 작은 아이에게 이웃이 자기 집에서 태어난 세 마리의 강아지 중 한 마리를 선물하겠다는 것을 만류했었다. 우선 나부터 귀국 후 적응하느라 고단하고 바빴으므로.


4년 후 시드니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두번째 해외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단독 주택 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거주지를 정하고, 크리스마스에 아는 이도, 할 일도 없던 신참 거주자로 또 다른 생명체와 아는 사이를 만들기로.


시드니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현지인이 소개해준 재래시장 (예전 가락동 시장 비슷한)인 플래밍턴 마켓으로 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가서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딸들은 아빠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출생 후 12주 된 강아지를 구입했다. 아래 사진과 똑 닮은 강아지였다.


자견 (출처: 나무 위키)

6학년이던 작은 딸이 큰딸과 의논 끝에 '너를 만나서 우리에게 행운'이라는 의미의 '럭키 (Lucky)'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제대로 걷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작은 강아지는 하루 온종일 아장거리며 가족의 뒤를 따라다녀서 행여 발에 밟힐 까 두려움이 앞섰다.


엄마는 두 딸들에게 종일


"강아지 밟지 않게 조심해라. 달려 다니지 마라. 천천히 걸어라. 앞뒤 잘 살피고 걸어"


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아빠의 동창인 교민 집에서 중학생 아들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빼서 돌아서다가 바짝 뒤따라온 어린 강아지를 밟았다는 마음 아픈 사고소식이 전해졌다.


엄마는 더 예민해졌다.


하루 종일 두 딸들에게


"강아지 조심해, 럭키 조심해라."


의 당부 톤이 높았다가, 낮았다가, 부드러웠다가, 드세졌다가 심지어 엄마 감정의 기복에 따라 히스테리 하게 폭발하기도 했다.


함께 거주하게 된 첫 주 밤에는 미처 강아지 집이 준비가 안되었다. 모노륨이 깔린 부엌 1층의 상자 안에 놓아두었는데 구슬피 깨갱거려서 이웃에게 미안해졌다. 영락없이 어미를 떨어져서 보채는 아기였다.


하는 수없이 온통 카펫이 깔린 안방으로 강아지 상자를 옮겨주고 카펫 바닥으로 소변이 새지 않도록 신문지를 두툼하게 깔아주었다. 아직 어려서 겨우 한 수저 크기로 싸는 오줌이지만...


그렇게 엄마 침대 옆에 강아지가 담겨있는 상자를 바짝 붙여준 뒤에야 어린 강아지는 쌔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사람들 옆에서 잠을 자려고 하는 새끼 강아지라니...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면서 거의 매일 뭔가가 필요했다. 강아지만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이 제법 여럿이었다. 밥그릇, 물그릇, 강아지 음식, 튼튼한 케이지와 폭신한 메트, 그리고 아기 우유, 털 빗...


우선 이렇게 구비하고 나서 온 가족은 주말 쇼핑에서 강아지 물품 코너를 빼지 않고 지나다녔다. 아직은 고양이와 강아지 용품 구별도 어려운 초보 반려인이라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살피며 구입 중이다.


은 자신들이 아끼던 흰색의 털이 복실 거리는 한국산 커다란 개 인형을 럭키에게 내어주었다. 인형이 럭키의 두 배는 되게 크다. 럭키는 금세 그 인형 위에 납작 엎드려 포근한 촉감을 즐기곤 했다.


연말연시 긴 휴가와 항만 노조 스트라이크가 겹쳤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에 보낸 살림살이들이 도착하는데 적어도 2개월은 더 기다려야 한다나. 해서 대강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플라스틱 그릇을 구입하여 밥과 반찬 그릇으로 사용했다. 나중에 알았다. 사람용 식기가 아님을.


식탁이 없으니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둥글게 앉아 1970년대의 시골 논두렁에서 일꾼 새참 먹듯이 밥을 먹었다. 10kg의 short rice를 6,500원 정도에 구입하여 열심히 밥을 해서 어설픈 반찬으로 맞추어 먹던 시기이다 (long rice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조금 길쭉한 스타일의 쌀로 찰기가 없어서 밥알이 날아가듯 볶아내는 중국식 볶음밥용으로 제격이다.)


나중에 그곳의 쇼핑에 익숙해지고 보니 엄마가 구입한 저렴한 작은 플라스틱 용기들은 반려동물 용 (고양이) 밥그릇이었다. 모두 밝은 눈으로 두리번대지만 낯선 언어 (대학에서까지 배운 적이 있는 영어이지만, 모국어인 한글과 달리 안 들리고 안 보이고 읽을 수 없는 수준이므로)와 새로운 문화의 환경에서 문해력이 뒤쳐진 엄마가 스팸 대신 저렴한 반려동물용 다진 고기 통조림으로 섞어찌개를 끓이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초반에 불법체류나 어려운 형편의 이민자 가정들에서 강아지용 고기통조림으로 단백질 보충을 했다는 얘기들도 있긴 했다.


낯선 곳에서 정착하기까지 생기는 시행착오는 그곳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4, 5년 만에 익숙한 서울로 돌아와서도 처음엔 오랜 병상생활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헛헛한 느낌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시드니에서와 내용만 다르게.


사실 지출을 줄여보고자 그곳에 거주하는 동안 서울에 한 번도 들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렇게 날마다 휙휙 변하는 서울은 서울에 소재한 집의 주인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시민에게도 어색하고 낯이 설었다. 하물며 남의 나라와 남의 도시에서 극장에서 막 나와서 햇살에 적응하듯 금세 익숙할 수 없었을 터...


시드니에서의 생활은 요크셔테리어 럭키가 있어서 온 가족의 마음속이 쉬이 따뜻해졌다. 새끼 강아지 '럭키'는 도서관에도 맥도널드에도 휴가지에도 항상 동행했다. 물론 우리 집이 아닌 관공서나 상가에서 럭키는 끈이 매어진 채 가족 중 한 사람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기온이 선선한 시기에 동물 출입이 금지된 호텔에서는 지하주차장의 자동차 안에 머물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동물학대에 해당이 되는 일이었다). 잠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 외에는 그저 같이 다니는 것이 사랑 표현으로 생각하였던 초보 반려 가족의 좌충우돌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시기에는 동물병원 호텔에 맡겼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물병원부터 들러서 럭키를 찾아와 차속에서 두 아이들은 럭키와 볼을 비비며 해후의 기쁨을 나누곤 했다. 럭키에게 휴가지에서의 자잘한 일들을 두 딸들이 한글로 일일이 설명하는 모습은 낯선 곳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불안을 없애고자 시도한 동물매개심리치료였음을 20여 년 후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두 딸들이 엄마랑 3~4일쯤 떨어져 있다 만난다고 그렇게 볼을 부비거리며 기쁨을 나눈 적은 전혀 없다. 엄마나 아빠와는 잠깐 허리를 감싸 안고 기쁨을 표현하는 정도니까. 그때는 온 가족이 럭키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개로 여겼다. 딸과의 서울에서의 약속대로 입양한 반려견은 소형견인 요크셔테리어 (Yorkshire Terrier)로 오스트레일리아 실키 테리어와 섞인 교배종 (crossbreed) 수컷이었다. 순종보다는 몸집이 조금 큰 편으로 1년 후에 3kg의 체중으로 성장했다.


그곳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 울퉁불퉁 영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고, 낯선 문화표현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럭키 앞에서 가장 편안한 정서상태여서 두 아이들도 무난히 성장 중이다..


서울의 반려견처럼 미용실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빗질만 열심히 해주니 미용 재주가 없는 주인을 만난 럭키는 정기적으로 반려견 미용실을 드낙거리며 매무새를 가다듬는 서울의 요크셔테리어와는 비교도 안되게 그저 자연 상태로 털이 거칠었을게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관리를 잘하면 이런 모습이라는데 매일 100번쯤 빗질을 해야 윤길이 나는 사람 머리처럼 종일 빗질만 해야 할 것같이 가늘디 가는 요키의 털은 걸핏하면 뭉쳐서 고약했다. 사진과 같은 관리는 일반인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출처: 나무 위키)



1년 후 성견이 된 럭키는 운동을 위해 주 1회 온 가족과 함께 동네 럭비 운동장에 갔다. 아주 커다란 운동장은 한쪽에 럭비구장이 있으면서 동시에 개들의 놀이터여서 빙 둘러 철망이 쳐져 있다.


골든 레트리버, 독일 셰퍼드, 달마티안부터 치와와까지 마음껏 운동장을 외곽으로만 줄지어서 둥글게 둥글게 달렸다. 그렇게 실컷 열 바퀴도 넘게 달린 다음에사 주인들을 찾아왔다. '더 놀아라'라는 신호를 받으면 다시 무리들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끼여서 함께 뒹굴거리며 덩치가 큰 개들과 작은 개들이 함께 어울렸다.


*어쩜 이토록 럭키와 닮은 사진인지 우리 집 앨범에서 뛰쳐나온 듯하다 (출처: 나무 위키)



워낙 작은 크기의 럭키는 큰 개들 틈에서 마치 수족관의 어린 새우처럼 네발을 쉴 틈 없이 내질러서 공중에서 날아다녔다. 빠르게 내달리는 다리는 보이지 않고 작은 털 뭉치처럼 검은 털이 섞인 어둔 밤색 털을 날리며 쉴 틈 없이 달리고 또 달리며 무리에 섞여 들었다. 앞에 가까이 와져서야 '오, 럭키구나' 할 만큼 럭키가 커다란 개들 틈새에 끼여서 달리는 동안에는 럭키의 작은 몸은 도대체 눈으로 찾아볼 수가 없다.


큰 개들과 곧잘 뒹굴며 노는 모습을 보며 모든 개들이 그렇게 당연하게 잘 노는 걸로 이해했다. 심지어 그곳에서 만난 개들은 별로 짖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달리고 또 달리는 모습만 눈에 선하다.


그렇게 달리며 그 넓은 운동장의 어느 곳에 배설을 하는지는 도무지 확인할 수 없어서 손에 비닐을 든 채 철망 밖에 서서 럭키가 달리기에 지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마치 어린 아들이 놀기를 다 마칠 때까지 운동장 입구에서 기다리는 엄마처럼. 일요일 오후는 그렇게 럭키의 체육대회 시간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곳 철망 입구에는 비닐봉지가 담긴 플라스틱 봉투가 걸려 있었다. 자신의 개 배설물은 직접 처리하도록. 운동장 내에서 달리는 개들을 쫓아다니며 처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돌아보면 가족들과 럭키와의 상호작용은 이미 시작된 동물매개심리치료였다. 그렇게 2018년의 낯선 전공 준비로 20년도 훨씬 전에 씨앗 한 톨이 뿌려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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