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어서 뭉근하게 거주하기보다는 이사가 잦은 세태이다. 주말이면 어디 선가 드르륵 거리는 사다리차의 작업소리가 나곤 한다. 그럴 땐 어릴 적 바깥소식에 궁금하여 내다보시던 할머니처럼 나도 뒷베란다 방충망 사이로 밖을 내다보며 "오늘도 이사 가는구나." 하고 있다.
돌아보면 지금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시드니에서는 해외에서도 4~5년 거주 중 2년에 한 번꼴로 집을 옮겼다. 두 아이가 내 도움 없이 바이올린을 들고 다닐 수 있게 아이들 학교 가까이, 좀 떨어진 숲 속의 단독주택에서 피아노를 마음껏 연습할 수 있게, 또는 피난민처럼 살다 두 달 만에 해외이삿짐을 받아서 풀던 날에 이혼 소송이 끝난 집주인이 갑자기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를 해서 다시 주섬주섬 싸며 새 이삿집을 알아보던 사건까지... 해외에서도 여러 이사 이유들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두 아이의 학업이 끝날 때까지 체력이 약한 작은 아이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그리고 직장에 가깝게 거주하느라. 내 집을 두고도 작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에 딸들이 거주하게 되어 서울 내에서 두 집살이를 하였다. 그렇게 결혼생활 내내 거의 2년 간격으로 국내외 이사가 이어지거나 딸들과의 살림이 합해지고 나눠지고를 이어가며 부동산 소개소와 이삿짐센터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하루 24시간을 안배했을 때 학교 다니는 동안 통학 길에 허비하는 긴 시간과 체력은 비효율적이므로. 그렇게 경제성보다는 체력의 효율적 관리에 중점을 두었다,학교 생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덕분에 식탁, 에어컨 세트, 세탁기, 냉장고 같은 주요 살림살이들이 2세트씩이다. '당근'에 처분할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 시절부터 이어져 사용흔적은 있으나 아직은 멀쩡하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에게 건네기에는 멋쩍어덜 버려진 상태로유지 중이다.
어쨌건 '뭔가를 선물하기 위해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라고 했다는 말에 나는 부엌 그릇들은 죄 퇴자맞고 뒷베란다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던, 백화점에서 받은 양푼을 모처럼 꺼내왔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그릇이다.
이웃과 인사 나누기
5년의 첫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1994년 귀국 후 거주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주민들끼리 층 번호만 멀뚱 거리는 게 갑자기 숨이 막혔다. 나는 서양물을 살짝 먹은 김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내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이라 상대가 반응이 없으면 조금은 무안하지만 '못 들었나?' 하면 그만이다. 대신 내릴 때 나는 한번 더 인사를 한다.
90년대 당시 국내에서 직장동료나 부하직원이 아닌 이웃집 여자가 먼저 인사하는 게 남자들은 어색했는지 당황해서 얼버무릴 때도 있었다. 심지어 그 댁 부인이 나중에 만나서 내게 이렇게 전했다.
"우리 남편에게 인사를 하셔서 깜짝 놀랐대요."
그렇더라도 그렇게 두어 번 인사가 건네지고 나면 다음부터는 서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삶을 돌아보니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처녀 때의 수줍음이 줄어든 대신 교직생활과 엄마노릇을 하는 동안 용기도 생기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상대에게 먼저 배려를 하면서도 덜 무안할수있다는 점이다.
처음 90년대 초반 시드니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사람끼리 건네는 <모닝~> 인사가 동양인인 내게는 낯설었다. 심지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유치원에 가는 길에서도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동양인인 내게 <모닝~>하고 지나갔다. 처음엔 '저 사람을 어디서 만났지? 우리 아파트 거주민인가?' 하고 기억을 더듬곤 했었다.
시드니에서 내가 먼저 길거리의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아침인사 <모닝~>은 5년 후 떠날 때까지 어색했다. 홍콩반환 이후 몰려든 중국인들의 길거리 목소리가 커지며 무뚝뚝한 동양인을 자주 경험한 그들도 점점 동양인은 건너뛰고 서양인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경향으로 변해갔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유모차를 밀고 가는 내게 건넨 아침인사 <모닝~>은 하루 시작에 경쾌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 마법을 서서히 실행해 보던 중 귀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파트 거주민들에게는 한글로 더 다정하게 먼저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영어로 인한 긴장감도 없으니 훨씬 톤과 엑센트가 자연스럽게. 상대도 경쾌했기를~^^
이곳이 주거주지로 처음 서류에 오른 지 20년이 지났다. 주소는 여러번 드낙거렸다. 사실 그동안에도 세를 놓기가 번거로워 미혼 동생들에게 집관리를 맡기고 비운채 세 번째 해외생활 기간이 있었다. 세 번째 해외생활은 그곳 방식으로 가구가 갖춰진 아파트에서 거주하게되어 옷과 책가방만 들고 움직인 미니이사였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서울집이 자주 비워져 있는 동안 인사를 나누고 살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15층 건물의 같은 라인 30호 가운데 눈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가정은 다섯 가구 정도 된다. 어느 사이 온통 처음 본 사람들로 포위된 느낌이다. 적지 않은 크기인데 노령층은 정리하고 줄여가느라 끝없이 이사 가고, 한창때의 학생들이 있는 젊은 가구들이 이사 오는분위기이다. 이제 새로 이사 온 집은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나도 규칙적인 시간의 바깥출입이 별로 없는 탓도 있다.
*낯선 이웃의 바다낚시 선물
*미운 옆지기는 아직도 담배를 못 끊었다. 결혼 8년 만에 아이를 출산한 작은 딸에 대한 고마움으로라도 사위처럼 금연실행을 하겠건만... 작은 아이가 선물한 전자담배도 무용지물이 되어 미안하고... 흡연습관이 예쁘지 않게 질기다.
문자 그대로 은빛
그런 중에 2023년 추석을 앞두고 남편은 이렇게 많은 은갈치를 안아 들고 왔다. 여수에서 새벽낚시로 건져 올린 이웃의 선물이라 했다. 태어나서 이토록 싱싱한 갈치는 처음 만났다. 비린내도 별로 없이 그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원고 쓰기가 꽉 막혀서... 불안이 스멀거리고... 번아웃인가? 조금 우울하던 차에 갈치의 신선한 은빛은 주변에 바다내음을 놓아주었다.
여수의 새벽낚시...
여수 첫 엑스포 시절에 운전을 맡아준 남편 덕분에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그곳 시설 좋은 콘도에 여장을 풀었었다. 엄마가 고단해하셔서 관람을 중도에 멈추고 나왔는데 줄기차게 내리던 빗속에서 걷기에는 공식 주차장이 너무 멀었다. 걷기 어려우신 부모님을 위해 대신 택시를 잡는데 당황스럽게 오래 걸리고 어려웠던 기억... 결국 버스로 콘도 가까운 정류장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남편은 먼 데 위치한 엑스포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찾아와서 부모님을 버스 정류장에서 모시고 서둘러 콘도로 갔었다.
첫 행사의 참 어설픈 진행에 노령의 부모님을 포함하여 우린 힘들었다. 분위기 전환으로 꽃을 좋아하시는 두 분을 위해 다음날 빗길을 뚫고 1시간 거리의 순천만 정원 박람회에도다녀왔다. 붉은 양귀비꽃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개인 순천만 부근의 '싸목싸목 식당'이었던가? 두 분은 그곳에서 웃음을 보이셨었다. 늦은 시간의 <코스요리 정식> 저녁은 양이 많아 대부분 남기면서도 잊을 수 없게 행복한 맛이었는데... 여수 화랑의 소나무 화가 작품전도... 이웃의 새벽낚시 갈치 선물 덕분에 오래 잊고 있던 여수에서의 시간들이 두서없이 들썩거린다.
담배를 가끔 피우는 남자들이라 아파트 입구 쓰레기통 앞에서 만나 멋쩍게 눈인사만 건넨 사이라 했다. '새벽 낚시로 많이 잡은 거라 나눠드리고 싶다' 했다는.
큰딸의 칼슘조절장애등으로 알약 섭취가 매일 열일곱 알을 넘나드니 울렁거림과 매스꺼움 병증은 여전하다. 눈치 보이는 생선메뉴는 미리 물어보고 비린내로 인해 식욕을 떨구지 않게 하는 편이다. 옆지기가 좋아하는 생선이지만, 우리 집에서 생선이 눈치 대상이 된 지 9년째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 가자미나 굴비, 고등어는 눈치껏 소주나 뜨물, 우유에 담가서 비린내를 줄이고, 레몬을 짜 보이며 '오메가 3 섭취를 위해 자주 먹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사위는 처가가 '육류선호'라고 내 작은 딸에게 넌지시 말했었나 보다.
'아니네. 저 사람이 아프기 전엔온 가족이 '굴비'와 '고등어' 마니아였네!'
컨디션이 웬만한 날엔 큰 아이는 아빠를 위해 덕수궁 근처의 유명 생선집에서처럼 시원한 얼음녹차를 준비하여 식탁 위에 놓는다. <오늘 생선 오케이!> 신호로 이해된다.
갈치가 워낙 많아서 일단 소분하여 냉동고에 넣어둘 일이다. 그리고 조리방법은 옆지기가 '백주부 편 레시피'를 참고하기로.
담배 피우는 습관으로 눈을 맞추고 신선한 갈치를 얻어오는 남자. 그래도 담배 피우는 일은 주욱 싫다. 이웃에 민폐도 싫고, 엘리베이터에 베어들 흡연 냄새도 싫다. 두 흡연자 덕분에 스텐그릇에 가득담긴, 문자 그대로 은빛 갈치의 힘이 세서 구부리지 못하고 일단 놓아두었다.
요즈음 <점점 흐림>이던 내게 여수바다의 은빛 갈치가 몰고 온 공기로 오늘 하늘이 상큼해 보인다. 감사한 이웃 덕분에 이번엔 떡을 넉넉히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