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사무실의 주인

안락사는

by 윤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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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꽃말 : 기대)(출처: 꽃나무 애기 Band)


우리 집의 주인은 누나 엄마다. 종일 집에서 일하고 관리하니까. 집은 엄마에게 퇴근 개념이 없는, 24시간 근무 중인 회사이다. 그렇게 엄마는 열대야 사무실의 주인이다.



img.png 1983년의 대세였던 240L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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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00L의 냉장고


누나네 엄마가 결혼하던 시절에는 김치냉장고가 태어나기 전으로 냉장고의 크기는 240 리터가 가장 큰 사이즈였다. 이제 국산 냉장고 용량도 900 L 가 넘는 대용량까지 나와있다. 심지어 가정에 냉장고가 3대 이상인 집들도 방송에 자주 보여준다. 김치냉장고, 와인 냉장고, 화장품 냉장고, 음료 냉장고 등등... 추가되는 냉장고 관련 전기용품들이 하염없다. 그렇게 소비전력량이 하늘 닿게 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송파구의 한 백화점이 사용하는 1일 전력량이 송파구 전체 가구들이 사용하는 전력량보다 커서 현재의 전기세 부과 방식은 좀 따져 볼 일이라는 시민단체들의 의견들이 있지만...


어쨌건 일반 국민들이 거주하는 주택과 아파트의 정전사고 뉴스가 어둠에 둘러싸인, 불빛 한 줄 없는 해당 아파트들의 사진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한여름날 숨을 하루 종일 몰아쉬고 있는 랄프가 안쓰러운 아빠는 결석 수술 후, 후속 치료차 문을 나선다.


엄마는 아빠의 등에 대고


“랄프가 지금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언제쯤 주사(안락사)를 주는 게 좋을지 의사선생님하고 날짜 받아봐요.” 한다.


아빠는


“그러지... 요 녀석 없으면 참 허전할 텐데........ 짜아식 좀 건강하지. 럭키는 열일곱 살인데, 랄프는 겨우 여덟 살에... 너무 영특하게 소변을 잘 가리더니... 산책 나갈 때까지 참지 말고 그냥 베란다에 싸지. 허, 참"


아주 어두운 낯빛으로 누나네 아빠는 랄프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누나네 엄마는 집의 전기가 나가는 일은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누나네 집에는 선풍기가 방마다 한 대씩, 부엌과 거실에도 한 대씩 놓여있다.


물론 에어컨 앞에는 날개가 조금 더 큰 영업용 선풍기를 놓았다. 에어컨 냉기가 빠르게 골고루 실내에 퍼질 수 있도록... 꽤 효과적이다.


저녁식사 전에는 거실의 '스탠드 에어컨과 각 방의 선풍기를 돌려 실내의 온도를 낮춘다. 그리고 밤 11시에는 안방 에어컨만 30분~1시간 정도 켠다. 작은 공간들은 금세 추워져서 '에어컨 켜기'는 사실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엄마는 '나는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로 시작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며 자란 세대이다. 따라서, 길거리를 지나면서 '껌은 입속으로, 껌 종이는 바닥에'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는 엄마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규범을 잘 지켜야 마음이 편하다.



* * *


“딩동“

엄마가 문을 열어주니 누나 아빠의 얼굴 표정이 환하다. '랄프의 방광암이 오진'이라는 소식이라도 얻어온 것처럼.

“랄프 안락사 날짜를 물으니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던데?? 랄프가 아직은 더 살 수 있데.......”

“네에?‘

“랄프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재. 아직은 랄프가 견딜만하다는데?.. 이 상태로 몇 년을 더 살 수도 있다 하네.”


“저렇게 '헉헉' 대는데?”,

"오줌은 바닥에 줄줄 흘리고...?"


“여름이라서 그럴 거래.. 올해 여름이 워낙 더워서 그렇대.

선풍기 좀 랄프에게 종일 돌려주고...,

에어컨 켤 때는 랄프를 꼭 그 방으로 옮겨줘. 아직 염증이 남아있어서 그러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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