닦고 또 닦고

매너벨트

by 윤혜경
2018.3.31_%EB%9F%AD%ED%82%A4%EC%99%80_%EB%9E%84%ED%94%84_(2).jpeg?type=w773 *천문대 근처 반려견 입장 숙소의 러키와 랄프



전력난으로 비상한 상황인 탓에, 올여름에는 관리실이 아침저녁으로 방송을 하는 날도 있다.

경비반장이 투박한 목소리로 급하게 반복해서 알리는, '가용 전력량이 적게 남아있어 위험하다'라는 긴급상황 방송도 여러 번 울렸다.

"입주민 여러분, 방마다 설치된 여러 대의 에어컨을 동시에 사용하지 마시고, 가구당 한 대만 켜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인 관계로 사용 가능 전력량이 적습니다. 일부 다른 아파트처럼 과다 수요로 인한 아파트 전체 정전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는 바로 앞의 다른 아파트 전체의 전기가 나가서 온통 암흑에 잠겼다. 전기가 나간다는 것은...


'냉장고 속의 음식... 어항... 신부전 환자 투석기... 화장실 물... 압력 밥솥... 전기오븐... T.V도 멈춰 서고... 엘리베이터... 비상계단을 걸어서 15층까지...' 연관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며 답답했다.


어둠을 걷어내려고 켜놓은 촛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켰던 케이크 위의 촛불과 달리,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T.V. 에서는 현재 소비전력 비축량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특보로 자막에 자주 올려준다. 으시으시하다.

방송에서는 불빛 하나 없는 아파트와 동네들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뉴스에 내보내며, 국민들이 전기를 아껴 쓸 것을 당부한다. 이 와중에 전력 발전소인 원전 2기(? )의 결함이 발견되어 2대나 멈춰 섰다는 뉴스도 이어진다.


이번 여름에는 누나네 아파트도 잠시이긴 했지만, 사용용량 초과로 발전실에서 비상전력을 돌려서 비상등만 켜지고, 엘리베이터까지 모두 정전으로 멈춰 선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에어컨 한 대만 켜기!


큰누나는 미안한 맘에 또 랄프에게 줄을 메어 편안한 소변을 위한 산책을 나갔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랄프야. 고통 느끼지 말고 잘 견디면 좋겠다.”


하며 슬픈 눈빛의 랄프 등을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다.


랄프 산책을 하루에 다섯 번쯤 하는 동안 3개월이 지났다. 수술 직후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현관 입구까지 소변을 줄줄 흘렸다. 나가다 멈춰서 주민들 눈치가 보여 큰 샤워타월을 다시 집에서 가지고 나왔다. 아파트 입구의 바닥을 샤워타월로 닦고, 유리세정제를 바닥에 뿌리고, 다시 락스를 조금 적신 걸레로 닦아서 지린내가 나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12kg의 랄프를 엘리베이터에서 안아 들고 아파트 현관을 나가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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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파트 입구의 경비아저씨가

"랄프한테 기저귀를 채우면 어떨까요? “ 했다.


랄프는 기저귀를 채우면 그걸 입으로 기어이 뜯어서 풀어내는 통에 기저귀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


랄프가 엘리베이터 안에 소변을 자주 흘렸단다. 엘리베이터 바닥에서 오줌을 발견한 7층과 12층 입주민이 불평을 몇 번 했다는...


랄프를 품에 안고 나갔지만 12kg의 덩치 큰 개라서 개를 지켜보느라 밑으로 새는 것을 못 보았다. 엄마랑 큰 누나는 랄프를 타월로 감싸서 품에 안고 나가는데....


아빠는 타월은 현관에 놓아두고 랄프만 그냥 안고 나가곤 했다. 엄마의 유난스러움이 귀찮은 아빠는 못 들은 척 아빠 방식으로 랄프를 안아서 데리고 나가곤 했다.


그래서 매너 벨트를 벗어나서 랄프의 소변이 엘리베이터 바닥이나 현관에 조금씩 새었나 보다. 개 소변 지린내가 풍겼을 테고...


img.jpg *핑크 카라 (출처: 꽃나무 애기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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