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법정에 세운 ‘The Little Brown dog affair’
*왼쪽 사진: 조지프 화이트 해드가 1906년Battersea 공원에 세운 갈색개 동상. 의대생들의 파괴로 1910년 극심한 갈등 끝에 철거됨
*오른쪽 사진: 1985년 Battersea 공원에 세워진 새 갈색 개 동상. 니콜라스 힉스 작품
(출처: 위키피디아)
17세기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반동물실험 목소리는 19세기 이후 본격적 반대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동물복지와 실험윤리에 대한 관심 확장으로 이어졌으며, 동물실험윤리 논쟁은 1903년 영국의 ‘Brown Dog Affair/ Trial’ (갈색 개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영국에서는 이미 1875년 전국반생체 실험집회가, 1898년영국생체실험퇴출조합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1875년 7월 여론에 밀린 영국 정부에 의해 왕립 심의회가 개설되어 “과학적 검증을 위해 살아있는 동물을 객체로 하는 실험의 시행”에 대해 "동물생체실험규제안"을 제시하였다. 반면에 '종합의료협회'와 '영국의학학회지'는 금지가 아닌 "보호 조치의 강화"를 제시하였다.
그 결과 1876년 동물학대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1937~1901년 빅토리아 여왕 재임기 여왕은 생체 실험에 강한 반감을 가졌고, 영국의회는 상하원 모두 생체실험 반대 입장이었다. 당시의 생체실험이란 '의대생의 살아있는 동물 해부'를 의미하고, 이 실험은 마취 없이 행해지기도 했다.1875년 영국 동물실험은 연간 약 300회에서 1903년 19,084회, 2012년 211만 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1876년 동물학대 방지법 핵심은 "마취 없이 생체 실험을 할 수 없다"이고, "동물 한 마리 당 단 한차례의 실험만 허용되며, 동일한 실험의 일부로 인정될 시에만 수 차례의 연장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또 실험이 끝나면 실험 성패에 상관없이 사용된 실험동물을 죽이도록 했다.
법률 위반에 대한 고발은 오직 내무성 장관만 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당시 장관이 반생체실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스웨덴 국왕의 시종이자 영국 첼튼헴 여대 교직원의 손녀이며, 스웨덴 대법원장의 딸인 Louise Lind-af-Hageby (루이스 린드 아프 하게비) 와 스웨덴 군 대위의 딸인 Leisa K. Schartau (라이자 샤르타우) 는 1900년 동물실험 중심지인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 방문에서 동물실험으로 상처받고 병든 동물들이 담긴 실험동물우리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스웨덴 반생체실험협회를 창립하였다.
여성주의 활동가이자 생체실험 반대론자 (Swedish anti-vivisectionists)로 생체실험 반대를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해 1902년 생체실험을 하지 않는 런던 여자 의예학교 (the London School of Medicine for Women)에 입학한 이두 스웨덴 여성은 생체실험 기록을 위해 등록하고 런던대학교 의대 실험실에 들어갔다.
영국 런던대학교 의대 (the medical school of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약 6Kg 체중의 짧은 모종으로 테리어 혼혈 (a terrier-type dog)인 갈색 개는 1902년 12월 이미 개복되어 췌장관을 결찰하고 관찰하는 생체실험 대상(repeated live surgery)이 된 뒤 우리에 넣어져 신음하다가, 1903년 2월에 또 생체실험을 당했다.
런던 여자 의예학교 학생인2명의 스웨덴 반생체실험운동가 (two Swedish anti-vivisectionists) 하게비와 샤르타우가 참여한 당일에도 실험동물 (experimental subject) 인 개는 생체실험 (vivisection)을 위해 강의실에 놓였다.
이후 개의 개복 (abdomen operation) 이 완료된 후 H. starling 등 실험 참여팀은 William Bayliss교수의 강의를 위해 겸자로 개의 복부를 닫아두었다 (clamped the wound with forceps).
W. Bayliss 교수는 신경에 전기 자극을 가해 '침샘의 작용이 혈관 작용과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짐'을 학생들에게 보이기 위해 개의 목을 새롭게 절개하고, 침샘과 연결되는 혀의 신경을 드러내 전극을 연결한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던 개는 강의실로 옮겨져 실험대 위에 놓여 다리가 묶이고 머리가 고정된 채 입에 재갈이 채워졌다.
훗날 노벨상을 받게 되는, 당시 W. Bayliss베일리스 교수의 학생 헨리 데일(Mr. Dale, an unlicensed research student. 193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이 개의 췌장(이자, pancreas) 제거 실험 후, 개의 심장에 칼(surgical means)을 찔러 넣어 죽였다.
20세기 초 런던대 생리학 교수 William Bayliss(윌리엄 베일리스, 1860~1924)와 Ernest H. Starling (어니스트 헨리 스탈링, 1866~1927) 은 개를 이용한 생체실험을 통해 신경계가 이자 (pancreas)의 분비물을 조절한다는 이반 파블로프의 가설을 검증하고, 마취된 개의 실험을 통해서 창자의 연동 운동 발견 등 생체실험을 통한 생리학 가설 검증에 공을 세웠다.
그들은 개 생체실험을 통해서 1902년 '신경계가 소화과정을 조절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순환계에서 소화기관으로 배출되는 물질인 secretin (세크레틴)을 발견하였다.
1905년 스털링은 세크레틴과 같이 아주 작은 양으로 생체기관 작용을 촉진시키는 물질의 이름을 그리스어 '촉진' 의미인 호르모에서 따와 '호르몬'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Two Swedish anti-vivisectionists, Leisa Schartau and Louise Lind-af-Hageby, who had enrolled as students at the London School of Medicine for Women so that they could learn first-hand about the work in such laboratories, attended that lecture demonstration.
They carefully noted the facts of this case in their diary, in which they were recording the details of the experiments they had witnessed during their studies at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그러나 런던대 의대 실험실 (London medical school)에서 개의 생체실험 (vivisection)을 주도한 저명 생리학자인 베일리스 교수의 수업에서 "마취하지 않고 (without anesthetizing the dog), 개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반복적으로 생체해부 (repeated live surgery)" 가 되고 있는 잔혹한 상황 (cruelty in vivisection)을 목격한 두 스웨덴 여성 하게비와 샤르타우는 이 사실을 신문사에 제보하였다. 그리고 이는 영국 전역에서 동물실험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확대되었다.
또 두 여성은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고통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하여 자유를 얻고자 시도하는 실험견의 끔찍한 목격담을 기록하여, 훗날 《The Shambles of Science: Extracts from the Diary of Two Students of Physiology과학의 도살장: 두 생리학도의 일기에서 발췌》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일기에는 "의대 실험실에서 생체해부 자격이 있는 베일리스 대신 생체해부자격을 갖추지 않은 학생인헨리 데일 (Mr. Dale, an unlicensed research student) 이 개를 죽였으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03년 5월 1일 영국 시인 Samuel T. Coleridge의 손자이자 영국 최고 법원전직 대법원장 John Coleridge의 아들이며, 반생체실험협회 변호사( A barrister)인Stephan Coleridge콜리지는 1896년 동물학대법을 위반한 동물실험 방법 2가지 (there had been two infringements of the law)인 '반복 실험'과 '불충분한 마취 금지"에 주목하였다.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There had been two infringements of the law - first that under the British legislation of 1876, the Cruelty to Animals Act, an animal may not be used for more that one experiment; second that for lecture demonstrations, which require a special certificate, anaesthesia was mand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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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3천 명 청중이 모인 "전국반생체 실험협회 (Britain’s National Anti-Vivisection Society)의 연례 모임"에서 이 사건을 "과학자들이 행한 고문"으로 비난하는 연설을 하였다.
다음날인 1903년 5월 2일에는 찰스 디킨스가 1846년 창립한 급진적 논조 언론인 < 더 데일리 뉴스>에 변호사 Coleridge 콜리지의 연설 전문이 실렸다.
1903년 5월 12일 명예훼손 소송 (a libel suit) 울 제기한 London University의 Dr. Bayliss의 변호인은 1903년 11월 11일 왕립재판소에서 대법원장 R. Webster가 진행한 재판에서 "두 여성의 주장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도 없이 변호사 콜리지가 대중 앞에서 공표하여 베일리스에게 피해를 입혔다."라고 주장한다.
1903년 11월 25일 명예훼손 소송에서 재판장 Webster는 배심원들에게 "이 사건이 국가적 이해관계에 중요한 사건임"을 강조하고 배심원들은 이를 기반으로 베일리스 교수의 피해를 인정하였다. 승소한 베일리스 교수는 변호사 콜리지가 지불한 피해 보상금 2,000 파운드와 법정비용 3,000 파운드까지 UniversityCollege London의 연구 자금으로 기부하였다.
《더 타임스》는 만족스러운 판결이었다고 평하면서도 의대생들의 훌리건 행위를 비난하였다. 부당한 판결이라고 평한《더 데일리 뉴스》는 4개월에 걸쳐 변호사 콜리지의 비용인 5,700 파운드를 모금하였다.
<톰 소여의 모험> 작가로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생체실험 끝에 죽임을 당하는 개의 입장에서 쓴 단편소설 <A Dog's Tale >을 1903년 12월 발표했으며, 국내에서는 <어느 개 이야기>로 2021년에 번역출간되었다(출처: 교보문고).
결과적으로 1903년의 <the Brown Dog Affair>는 1906년에 시작된 생체 실험 2차 심의회가 열리고,1912년 3월에 139쪽의 심의 보고서 공표로이어진다. 고통받은 동물에 대한 안락사 의무화, 척수 절개술의 확고한 정의 등 규정, 동물학대 방지법의 개선에 대한 세부 사항 등을 장관에게 조언하며, 이는 영국에서 1986년 ‘동물과학실험위원회’설치의 근간이 되었다.
재판 후 세계생체실험반대연맹 창립자 애너 루이사 우드워드(Anna Louisa Woodward)는 120 파운드의 기금을 모아서 2.29 미터 크기의 돌로 공공 기념비를 세우고, 조각가 조지프 화이트해드는 기념비 위에 청동으로 갈색 개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1906년 이 기념비는 사람, 개, 말 모두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샘물가에 세워졌다.
갈색 테리어를 기념하며
1903년 2월 유니버시티 칼리지 연구실에서 개는 죽음을 맞았다. 이미 한 차례 생체실험을 겪은 지 두 달 뒤 죽음이 그를 찾을 때까지 또다시 생체실험대에 올려졌구나.
또한 같은 자리에서 1902년 한 해 동안 232 마리의 개가 생체실험을 당했다. 영국의 남녀들이여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하게 두려는가?
— 갈색개 기념비의 명판
뉴욕타임스는 1910년 갈색개 기념비의 명판 문구를
"생체실험 반대론자들의 신경질적이고 상투적인 언어"
"모든 의료 종사자들을 모욕하는 것"
이라고 평하였다.
(1910년 3월 19일 트라팔가 광장의 갈색 개 동상 철거 반대 시위)
1907년 런던 의대 병원의 의대생들은 기념비의 명판에 적힌 문구에 격분하여 1907년 11월부터 갈색 개 동상 끌어내리기 시도를 지속하였다. 결국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일부 여성 참정권자들과의 충돌 후 1개월 이상을 Battersea의 동상설치 찬성그룹 (주로 노조 활동가, 사회주의자, 마르크스 주의자. 자유주의자, 소수의 여성 참정권자 등)과 쇠지렛대와 해머로 동상을 부수려 하는 동상설치 반대그룹Medical students, medical professionals, and their sympathizers의 대치를 시작으로 런던 여러 의과대학 의대생들의 시위 참여가 이어졌다.
생체실험을 위해 꼼짝없이 묶여 있는 갈색 개 사건은 교도소에 수감된 여성 참정권 운동가의 이미지와 겹치면서 '여성 히스테리 치료 명분의 난소, 자궁 적출'과 겹쳐 여성의 생체실험 반대운동 anti-vivisection movement 참여를 가져온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당시 이러한 부딪침은 남성 과학도들과 여성주의의 대결로 이해되었다.
즉 일반적으로 여성의 교육 수준이 아주 낮은 시대에 고등교육을 받아 의사를 꿈꾸는 스웨덴의 젊은 두 여성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은 구체제의 불평등을 공감하는 반체제적이고 진보적인 여성들이 생체실험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고, 이는 실험동물 복지운동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생체실험 반대운동과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 의대생들은 여성 참정권 모임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자주 책상과 의자가 날아다니는 아수라장의 모임으로 만들곤 했다. 트라팔가 광장 the Recreation Ground and on Trafalgar Square에선 런던,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의 의과, 수의과medical & veterinary students from London, Oxford, Cambridge 등 1,000여 명의 시위대가 400여 명의 경찰관과 15명의기마경찰과 대치하였다. (위 사진 참고)
Battersea 배터시에서는 최초 불법적 동물실험을 폭로한 리찌 하게비가 주최한 1906년 12월 생체실험 반대 집회에서 의대생들의 난입으로 참가자들의 옷이 찢기고 집회장 가구가 부서졌으며, 하게비와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이를 <여성주의와 마초의 대결>로 이해했다. 당시 전국반생체실험협회의 부위원장 4분의 3이 여성이었다.
틈만 나면 훼손되는 동상경호비용 증가와 질서유지를 위해 24시간 동원되는 경찰의 고단함에 지친 시의회는 1910년 3월 갈색개 동상 철수를 의결한다. 그리고 철수된 동상은 대장간에서 녹여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역사학자Coral Lansbury코럴 랜스베리도 갈색개 사건을 '여성의 생체 실험 반대운동 참여를 가져온 상징적 사건'으로 분석하며 이는 여성의 참정권 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보았다.
이후 1985년 12월 12일 조각가 니콜라스 힉스가 자신의 반려견 테리어를 모델로 하여 기단은 포틀랜드 석회암으로 제작한 새 갈색 개 동상이 Battersea Park배터시 공원의 펌프하우스 뒤에 세워졌다. 다시 생체실험 반대 캠페인이 활기를 뛰며 1994년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원 내의 우드랜드 워크로 이전하였다.
◾ 동물실험반대운동의 대표 NGO 단체들 (anti-vivisection societies)
*동물보호단체들의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사진출처: 한국동물보호연합)
20여 년 전만 해도 동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혹독한 실험을 통해서 안전과 효과를 확인 후 의약품, 화장품, 화학약품을 사람에게 시도하는 것을 실험실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무관심했다.
2000년대 들어서 PETA(미국 1980년 설립.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BUAV(영국 1898년 설립. 2015년부터 CFI로 개명), ENPA(이탈리아 1871년 설립) 등 동물실험 반대 NGO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동물실험 반대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언론을 통해서 동물학대에 대한 소식이 일반인들에게도 보다 가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 PETA
동물권리를 위한 비영리 국제단체(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로 1980년대 미국 버지니아에 본부를 두고 설립되어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인도, 호주, 홍콩의 아시아 지부 등 10개 지부를 운영하며 전 세계 2백만 명 회원이 가입함. 공장식 축산, 모피 농장, 동물실험, 오락용으로의 동물 이용에 반대한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는 동물실험이 주요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시기이다. BUAV(British Union for the Abolition of Vivisection)는 1898년영국에서 여성인권운동가이며 박애주의자인 Frances Power Cobbe가 유럽여행 중 목격한 실험동물 학대에 자극을 받아 사회정의 운동에 기반을 두고 비영리기관으로 설립하였다.
BUAV는 개의 생체실험반대 운동을 해온 동물생체실험폐지협회(anti-vivisection societies)로2015년 Cruelty Free International(CFI)로 개명했다. Cruelty Free International(CFI)은 *Leaping Bunny주1)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CFI는 미국 및 캐나다 이외의 회사들을 대상으로 화장품과 가정용 그리고 청소용 제품 중 Cruelty Free 기준에 대한 국제 표준 준수 여부를 심사 인증 후 'Leaping Bunny(리핑 버니)' logo로고를 부여하는 국제인증기관이다.,
심사를 통과한 제품생산기관은 CFI에 로고 사용 및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한다. 그리고 소비자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online list에 Brand Name 또는 회사명을 올려두고 있다.
1871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최대 국립동물보호기관으로 로마에 본사를 두고 이탈리아 전역에 160개 이상의 지점을 운영하며 유기되거나 학대 및 위험에 처한 동물을 연 3만 마리 이상 보호, 생명존중교육, 동물대상 범죄 예방 및 진압하며 동물 및 환경전문 경비 부대 'Guardie Zoofile' 보유
1996년 미국과 캐나다 중심 동물보호단체들인 the American Anti-Vivisection Society (AAVS, 1883년 설립. 2007년~ CCIC 의장), Animal Alliance of Canada (AAC,1990년 설립), Beauty without Cruelty(BWC), The Doris Day Animal League (DDAL, 1987년 설립), The 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 (HSUS), The National Anti-Vivisection Society (NAVS), Rise for Animals (1895년 설립)와 International Partners인 Cruelty Free International(CFI, 1898년 설립) 등이 연합한 'The Coalition for Consumer Information on Cosmetics (화장품 소비자 정보 연합, CCIC)'에 의해 만들어져 운영되며, 단일 종합 표준과 국제적 인정의 Leaping Bunny 로고 사용을 인증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물친화적 제품 쇼핑을 도운다.
아래 사진 속 "Leaping Bunny"(뛰어오르는 토끼)는 잔인한 동물실험에서 자유로운 상품임을 인증하는 로고(logo)로 동물실험으로 가장 많이 희생되는 동물인 토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
Leaping Bunny 상표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생산공정 전체에 동물실험이 없음을 의미한다.
현재는 영국, 벨기에, 오스트리아, 캐나다, 스웨덴, 프랑스, 핀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함께 참여해 동물실험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24년 현재 2399개 브랜드가 리핑 버니 인증을 받았다.
*대학원 교재 작업을 위해 동물복지 관련 자료를 검토하면서 동물복지가준의 준수 여부는 국제적인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와도 연결되었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브런치스토리가 학술지는 아니지만 작가님들께 더 많은 자료를 소개해드리고 싶어 2회분으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방문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