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거의 맨얼굴에 가까운 모습으로 집을 나선다. 머리카락은 늘 빗고 나서도 왜 항상 푸슬푸슬한지 모르겠다. 주머니 속에 핸드크림과 미스트를 꼭 챙기면서도 립스틱은 잊고 나서는 일이 잦다. 지하철을 타고서야 아, 립스틱 또 안 가지고 나왔네 하지만 이내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이제 정말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는 큰 관심이 없구나 생각한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변덕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매우 고요한 시간이다.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잠깐의 짬을 이용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간단히 식사를 하는 시간 같은- 틈틈이 책을 읽고 매월 문화가 있는 날이면 아무리 바빠도 영화를 한 편씩 본다. 사이사이 남겨두고 싶은 장면이 있을 때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밤이 되면 씻고 고양이와 나란히 침대에서 잠든다. 이건 어떤 감정이 끼어들 틈 없는 진공의 상태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다가도 바늘구멍 하나만 뚫려도 이내 상해버릴 것도 같은. 한 번도 바란 적 없는 형태의 그렇지만 행복. 응, 행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이대로 나이 들어 도서관 근처 작은 집에 살면서 일하고(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산책하고 책을 읽고 소박한 식사를 하고,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건 아주 작은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너무 큰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