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살 때 아파트 앞에 "엘리펀트"라는 작은 맥주집이 있었다.
베트남 음식도 팔고 이태리 음식도 함께 팔았는데 맛도 나쁘지 않았고 가격은 아주 저렴하여 외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곳이었다.
집사람과 나는 퇴근 후 맥주 한잔이 생각나면 늘 찾던 단골집이었고 그곳에서 보냈던 추억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지만 팬데믹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은 건 정말 많이 아쉬웠다.
주인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숫한 오십 중반의 독일 사람이었고 늘 코 끝이 빨간색이어서 나는 루돌프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였고 갈 때마다 늘 생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었고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여 언젠가는 나도 같은 가게를 열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꿈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연한 기회에 늘 찾던 단골집을 인수하게 되어 매일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걱정도 사라지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설렘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설렘은 잠깐이었고 돈과 관련된 개인 사업의 영역이라 시작도 하기 전에 불안감이 찾아오는 일이 많아졌다.
메뉴도 손을 봐야 하고...
가게의 내부 인테리어도 살짝 바꾸어야 하고...
나름 준비한다고 했지만 예전보다 더 맛이 없다거나 별로라는 반응이 손님들한테 나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초보 사장인 나에게는 당연한 의문이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도 생겼다.
무작정 전주인과의 차별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제일 먼저 음식에 대한 맛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여 가게 재오픈하기 전에 많은 테스트와 시식을 거쳐 맛에 대한 평가를 하나씩 정리해 나가면서 메뉴 선정을 하였다.
그래도 대기업이라는 곳에서의 업무 경력이 있으니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프로세스가 어쩌고... 피드백이 어쩌고... 소비자가 어쩌고.....
내겐 다 필요 없는 말장난일 뿐이었고 오직 관심사는 더 많은 손님이 찾아오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뿐이었다.
드디어 재 오픈 날.
내가 알고 보았던 개업하는 가게의 모습은 늘 이랬다.
많은 화환과 화분이 문 앞에 줄지어 서있고 대박 아니면 돈 세다가 잠들다 같은 문구로 치장된 분홍색 리본들 사이로 지인들의 방문으로 가게가 시끌벅쩍한 모습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난 좀 다르게 하고 싶었다.
어려운 경기에 화분과 화환을 보내는 것도 부담이 드는데 여기저기 알려서 괜한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냥 가족들에게만 알려서 조용히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편안한 자리로 앉으세요."
아르바이트생의 씩씩한 목소리와 함께 5시쯤 드디어 기대하던 첫 손님이 들어왔다.
당연히 나도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려야 하기에 덩달아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머... 사장님이 바뀌셨나 보네요?"
"네. 오늘이 첫날입니다. 자주 찾아 주세요."
중년 여성 4명이 들어오며 전사장과는 친분이 있고 단골이었다며 은근히 자기들한테 잘 보여라 하는 모습이 얼굴에 살짝 비쳤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무시하겠지만 이제는 입장이 바뀐 상황이니 마음에 없는 말이라도 표현을 해야 하는 게 손님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에 아주 큰 소리로 외쳤다.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굽신 거리며 응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몸에 익숙하도록 더욱더 큰 소리와 조금은 과장된 몸짓이 불편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다독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손님들과의 만남은 오랜 장사 경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일종의 쇼맨쉽 정도라 생각하며 일종의 비즈니스로 인식하면 크게 마음 상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손님은 착한 손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름 신경 써서 만든 음식에 대한 비교를 하기 시작하는 손님들이 의외로 많았다.
"어머... 예전엔 좀 달달한 맛이 있었는데... 좀 싱겁네요."
"맵기만 하고 많이 짜네요."
이런 얘기를 아르바이트생에게 할 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은 안절부절못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말을 전하는 표정이 밝지 않았고 그때마다 나는 그들이 앉은 테이블로 달려가 아주 공손한 말로 되묻곤 하였다.
"예전 하고 많이 다른가요?"
"그러게요. 예전에 먹던 맛이랑 좀 바뀐 것 같고... 간도 그렇고..."
"아... 네... 다음엔 좀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솔직히 맛에 대한 평가는 사람의 입맛이 다 다르기에 표준화하기가 정말 어려운 영역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계량화된 레시피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에 충실하면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맛을 찾을 수 있기에 손님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맛에 대한 평가는 보통 잔반을 보면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잔반이 많이 남으면 맛이 없는 것이고 잔반이 없으면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런 충고를 하는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 잔반을 남기지 않고 다 드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음식이 짜다 하더니 다 드셨네... 내가 보기엔 저분들은 전사장과 그리 친했던 단골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사장이 바뀌었으니 잔소리 겸 자기들한테 잘 보여라 하는 정도의 의사 표시로 생각하자고"
혹시라도 마음 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집사람을 위로하며 오는 손님들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 막내가 차린 호프집에 매상을 올려주려 셋째 형 식구들이 응원차 방문을 하였다.
"야... 앉을자리가 없네. 늦은 시간인데도... 하하하."
형은 늦은 시간임에도 북적대는 가게 안 모습에 크게 기뻐하며 웃어 보였다.
"막내야... 형수와 나는 걱정이 좀 되더라. 장사 경험이 전혀 없는데 손님이 없어서 제수씨와 앉아서 티브만 쳐다보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하하하. 그런데 이 시간까지 이렇게 손님 많을 걸 보니 좀 마음이 놓인다."
"경험은 없지만 여기 상권이 아파트 단지 주민들 상대하는 곳이어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에요. 다른 상업지구 상권은 불경기라 손님 없다고 난리더라고요."
"그래도 처음 시작한 가게가 잘 될 것 같아서 다행이다. 너무 오래 할 생각도 말고... 그리고 몸 상하지 않게 무리하지 말고..."
"네. 잘 알겠어요"
손님들이 거의 돌아가고 셋째 형님 식구들과 가볍게 한잔하면서 새롭게 시작한 작은 호프집이 별 탈없이 잘 굴러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건배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나는 끝이 아니었다.
호프집이던 음식점이던 항상 마감을 해야 하는 것이 남아있었다.
튀김기도 세척하고 기름도 갈아야 하고 바닥도 닦아야 하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한번 빼먹으면 위생과 직결된 문제가 반드시 발생하기에 몸이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막연하게 설레던 작은 호프집의 사장이 되었지만 매출이 안 오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손님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자영업자들을 늘 불안하게 만들고 불편한 생각을 하게 끔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편하게 먹고 마시며 그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원 없이 하고 가는 곳이 우리 가게가 된다면 동네의 사랑방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픈하기 전의 설렘과 마감할 때의 매출에 의한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 이것 또한 살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그리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고 오늘이 잘 안 됐으면 내일을 기대해 보는 것이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나의 첫 번째 행동강령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