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질병이 되리라던 코로나는 그저 그런 감기랑 비슷한 질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십이 넘은 퇴직자에겐 구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사람을 필요로 하는 기업보다는 일이 필요한 사람이 더 많은 상황이 계속되고 여기저기 구직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당자들에게 열심히 메일을 보내지만 아무도 회신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헛된 희망을 품기보다는 오래전 꿈이었던 고향 속초로 돌아가 작은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필요한 자격증을 갖추기 위해 학원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졌다.
바리스타 학원과 제빵 학원을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브런치 학원도 다니며 요리 실력도 늘어나는 느낌이 들면서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내 가게를 운영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은 늘었지만 같은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구인 사이트에 올렸던 내 경력을 보고 전화를 한다면서 화덕피자를 배워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올렸던 경력과는 아주 동떨어진 제안이어서 의아했지만 현직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에게 받은 제안이어서 솔깃해졌다.
제안을 수락한 후 최저 임금을 받으며 화덕 피자를 만드는 기술도 배우며 틈틈이 주방 보조 노릇을 하면서 요식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하나씩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함께 일하는 나이 어린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시간이었고 지금의 노동은 훗날 내가 가게를 운영할 때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을 응대하는 홀 업무도 맡게 되었고 예전에 시청 옆에 있는 오래된 이탈리아 식당의 나이 지긋한 매니저처럼 손님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점잖은 손님보다는 은근히 까탈스러운 손님이 많았고 늘 포커페이스를 해야 하는 상황은 요식업 종사자들의 현실이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일은 마치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 듯 기우제를 올리던 심정이었고 그나마 매출이 많은 날은 위안이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 하나하나 다 귀하게 여기지만 손님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었다.
오전 10시 문 여는 시간에 들어와 오후 브레이크 타임 4시까지 있다가 가는 손님들은 기피 대상이었지만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닌 요식업 종사들은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까지 계속 주문을 하면서 앉아 있으면 신이 나겠지만 4명이서 음식 2개를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도 처음엔 6시간 이상을 머물다 가는 손님들이 있다는 얘기에 설마 했지만 내가 주문받은 손님들이 실제로 6시간 이상을 앉아 기본 음식 외엔 물만 마시며 얘기를 이어가는 모습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점점 깊게 느끼며 요식업 종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동안 내가 요식업 종사자들에게 했던 행동들에 대해 반성도 하는 시간도 되었다.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저가 커피 판매점과 베이커리 카페들을 보며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하루 매출이 얼마나 될까?
남기는 할까?
하루에 커피와 빵을 얼마를 팔아야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은 한때 영업을 하러 다닐 때 BEP를 따져가며 손익에 민감하던 영업의 체질이 몸에 밴 것도 있지만 그건 그냥 회사의 몫이었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에 이익이 얼마 나되는 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6개월 가까이 일을 하면서 현장의 밑바닥 체험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이익은 술과 음식을 함께 팔아야 소위 돈이 되는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었다.
맛난 음식만 팔아서도 안되고 더욱이 커피와 빵은 더 돈이 안된다는 생각이 굳혀지면서 이탈리아 식당에서의 현장 체험도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을 즈음 주변의 지인을 통해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작은 호프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자주 다니던 단골집이기도 했지만 단지 내에서 그나마 매출이 유지되던 호프집이었기에 내가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사람과 고심 끝에 덜컥 인수를 결정하였다.
무모한 결정이었다.
몇 개월의 현장 경험 외에는 아무런 경력이 없는 초보가 호프집 사장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다들 만류하는 분위기였고 불투명한 경제 상황에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언과 충고를 가슴속 깊이 새기며 안 팔리고 남으면 집사람과 내가 마시고 먹으면 되니 나쁠 것 없지 하면서 초 긍정마인드로 동네 호프집을 시작하였고 새로운 메뉴 개발등을 하면서 1년여 넘게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우여곡절과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니 몸만 피곤하지 정신적으로는 아주 행복한 시간이 되었고 단골들과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 사랑방 주인이 되었다.
사랑방 주인이 되었으니 이제 우리 주변의 손님들이 주인공이 되는 얘기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