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와 떠나는 여행 1 "어쩌면"
어쩌면 이번이 엄마와 마지막 여행일 거 같다
어쩌면 : 확실하지 아니하지만 짐작하건대
베트남 나트랑의 해변길을 엄마와 걷고 있다
엄마와 손잡고 걸으려니 와이프 눈치가 보인다
멀리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엄마 칠순기념으로 온 여행인데 마음이 무겁다
엄마의 걸음걸이가 어째 현찮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힘겨워해 보인다
문뜩 이렇게 같이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건강하게 언제나 나를 응원해 줄 것 같은 엄마가
언제 이렇게 늙었지?
밤새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5시 반...
옆방에 자고 있던 엄마에게 갔다
"엄마!! 여긴 일출이 이뻐! 모래사장 같이 걷자"
둘이서 맨 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고운 모래 사이로 우리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엄마랑 언제 이렇게 걸었봤었지?
기억이 없다
나의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은 5살 때이다
지금도 그날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갑자기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려 해도 일어날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식탁을 두 손으로 잡고 일어나려 했는 데
다시 넘어지곤 했다
그리고 엄청 울었다
아직도 그날의 당황스러움이 생생하다
그리고 순천향대학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나는 안내데스크 위에 앉치고
내 무릎을 손망치로 툭툭 쳤다
나는 감각이 없었다
나의 진단은 영양부족으로 인한 소아마비였다
내가 왜 영양부족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 잘 안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병원치료로는 어려우니
민간요법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안에 살았던 우리는
온양으로 침을 맞으러 다녔다
어린 시절 버스 타고 현충사 근방을 지나갔던
기억이 살짝 난다
치료를 받기 위해 엄마 등에 업혀 약 6개월 동안
버스를 타고 천안에서 온양을 다녔던 것이다
엄마 등에 업혀 다녔었지 같이 걸어 다닌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그 당시는 국민학교) 이후로는
친구와 다니기 바빴고
대학 와서는 여자친구와 다니기 바빴고
지금은 와이프 눈치 때문에 같이 못 걷고
앞으로는 엄마 무릎 때문에 같이 못 걸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부터가 오류다
같이 걸어본 적도 없는데, 시작도 안 해 봤는데
마지막이라니...
확실한 적도 없고 짐작한 적도 없고
나만 알았고,
나를 위해 희생한 부모님은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고 온 여행인데
지난날의 기억과
앞으로의 두려움이 가득한 것은 왜일까?
"어쩌면"이라는 부사는 현실은 어둡게 만든다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을 예상할 때 쓰인다
보통 부사는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꾸며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쩌면"은 꾸며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이 단어를 제거해야겠다
나트랑의 모래 속에 "어쩌면"을 깊이 묻어주고
나는 여행을 마무리한다
엄마
너무 고맙고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