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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그렇게 아빠가 됐었다

그녀를 욕하지 말아 주세요

by cogito Feb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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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임신한 거 같아... 어떡하지?"


2000년 나는 21세기의 첫 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남중 남고만 나온 나에게 여자 친구들은 너무 낯설었다


OT때 알게 된 A는 상당한 미모와 쾌활한 성격이라

남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코드가 잘 맞았다. 똘기코드가...

진지할 필요도 없었고, 모든 것이 웃기고 재미있기만 했다

고등학교 친구 이상으로 붙어 다녔다

남자 선배들도 A와 친해지고 싶어서

나에게 호의를 베풀곤 했다


3월 입학 후 OT때부터 같은 조였던 B가

나에게 A를 좋아한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A는 1년 선배인 K를 관심 있어했다


K형은 그 당시 유일한 스포츠카인 티뷰론 터뷸런스를

타고 다니며, 노란 머리를 하고 다닌 튀는 형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K는 아주 자유로운 연애를 하고 다니는 쓰레기였다


벚꽃이 한 창이던 어느 날 A가 연락이 왔다

술이나 사달라고....

본인은 K를 진짜 좋아했다며,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위로도 해줄 겸 B를 불렀다

우리 셋은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20살 첫사랑의

아픔과 설렘의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그리고 B가 A를 집에 데려다준다며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B가 A를 이전부터 좋아한 것을 알았기에

잘해보라는 뜻으로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A와 B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빠른 환승과 열정의 순간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참 웃기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무조건 지원해 주는 것이 맞는지?

그 상대방의 의사는 고려 없이..

아니 잘 어울리는지 등의 판단도 없이..

그때는 20살이니깐..

뭐 그런 고민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한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로부터 얼마 후 A한테 연락이 왔다

한참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절대 비밀이라며...

어려운 말을 꺼냈다


"나 임신한 거 같아.. 그런데.. 누구인지 모르겠어"

그 짧은 기간 동안 K와 B와 관계를 가졌기에

선뜻 지금 만나고 있는 B에게 말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산부인과를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20살에 임신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 같았으면 손절 쳤겠지만

그때 친구는 무엇보다 소중했고

비밀을 나누며, 간직해 주고 도와줘야 한다고 믿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병원에 갔다

일부러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지만

초음파 사진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나왔다

낙태를 하려면 45만 원의 수술비와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며 나보고 서명을 하라고 했다


병원까지 같이 왔는데 차마 내가 아빠 아니라며

서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idiot!!


수술비는 엄마한테 자격증 따기 위해 학원 다녀야 한다며

받아서 마련했던


B는 그것도 모른 채 6개월 정도를 만나다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쉽긴 하다

순진해서 인가?

내가 A를 좋아했었나? 싶기도 하다

마음에 없진 않았지만 친구가 좋아하다고 하니

마음은 뜨겁지만 머리로 거부한 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생명을..

너무 큰 일이긴 한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무책임하긴 하지만... 다른 대안은 있었나?


25년의 흐른 지금

이 비밀은 나와 A만 알고 있다

그리고 각자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다


가끔은 진실을 먼 곳에 두고 오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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