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미친 듯이 일을 한 적이 세 번 있다. 한 번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고, 한 번은 상사의 요구와 내 의지(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가 합해서 이루어졌다. 마지막 한 번은 순전히 내 자발적인 의지만으로 진행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첫 번째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고, 두 번째는 필요하면 또 할 수 있겠다 싶은 시절이며, 세 번째는 한번 더 그런 시간을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절이다.
한때 게임 업계의 소위 '크런치 모드'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직원을 갈아 넣어 게임을 만들던 관행이, 언론에 의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 몇 해 전이다. 그 덕분에 전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에서 직원들을 게임에 갈아 넣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도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회사들에서도 버젓이 발생한다. 퇴근 기록을 찍고 비밀 문으로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도는 실정이다.
게임을 출시하기 직전에는 일이 몰려서 평소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할 수 있다. 나도 '옛날 사람'이어서 그런 정도는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크런치 모드가 일 년 내내 지속된다면, 그것은 크런치 모드가 아니다. 그냥 의사결정자의 잘못된 판단을 직원의 노동력으로 메우는 상황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구성원의 자발적 의지가 포함되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직원의 노동력을 잘 짜내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리더들이 여전히 종종 발견된다. 어쩌면 그런 역할을 해주는 리더를 아래에 두고 싶어 하는 상위 리더의 존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리더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왜 산업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업계를 구성하는 사람들, 특히 리더들의 나이가 젊은 편에 속하면,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력, 과감한 결단력들이 넘쳐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잘못된 성공 신화는 메두사의 눈과 같아서,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의 사고를 돌처럼 굳어지게 만든다. 그런 메두사의 흔적을 아직도 종종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한 업계에 오래 머무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느껴진다.